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7 장 안식일의 재발견 제 3 부 쉼 없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쉼이 되는 안식일
 누가복음 4:16-21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1, 2의 한 구절을 인용하시고 또 그 구절에서 선언된 안식일의 해방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강조하여 주장하시므로 자신의 공중봉사를 시작하신 것이 안식일이었다. 그분의 이어지는 봉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주장을 자신의 구속의 사명 특히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고 가르치시는 봉사를 통해 나타내 보이시는 것으로 대치하셨다(눅 13:16; 마 12:5, 6; 요 5:17; 7:22, 23 참조). (188.5)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속의 사명(“다 이루었다”-요 19:30)을 무덤에서 쉬시므로 성취하신 것(눅 23:54-56)은 역사적인 거룩한 안식일이었다. 무덤에서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쉬신 것은 그분의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나타내 보인다. 그것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기꺼이 창조에서 인간의 시간의 한계뿐만 아니라 성육신 동안에 인간의 육체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죽음까지도 경험하셨다. (188.6)
 십자가의 빛에서는, 안식일은 해방된 사람의 주일마다의 축제와 환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한 그분의 구속의 성취를 기억하도록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아 있는 안식”(히 4:9)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창조를 기념하기 위해 육체적인 일로부터 중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구속을 통해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안식(히 4:10)으로 영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더 자유롭게 또 더 충만하게 일하시도록 허락하고, 또 우리의 생애에 그분의 용서와 구원의 쉼을 가져다주기 위해 안식일에 우리의 매일의 일을 중단한다. (188.7)
 (7) 봉사의 쉼
 안식일은 봉사를 위한 시간과 기회를 마련하므로 그리스도의 쉼을 우리의 생애에 날라다 준다. 내적인 평화와 쉼은 자기중심적인 쉼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타인 중심적인 봉사에서 발견된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시간과 이유를 마련한다. 이제 그 각각을 보도록 하겠다. (189.1)
 하나님께 봉사하는 안식일
 반복적으로 말한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일곱째 날이 여호와께 거룩하고도 엄숙한 안식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출 31:15; 16:23; 20:10; 레 23:3; 막 2:28 참조). 분명히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매일의 봉사는 안식일의 봉사와 다르다. 주일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께 마르다 형의 봉사(Martha type of service)라고 불려질 수 있는 봉사를 통해서 고용주를 섬기고 생애의 많은 요구들을 만나면서 우리의 구주를 승인한다. (189.2)
 그러나,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소위 마리아 형의 봉사(Mary type of service)로 불려지는 봉사를 통해서 우리의 구주께 완전히 그리고 총체적인 존경을 돌리기 위해 수입을 얻는 고용이나 또는 세속적인 추구를 단념한다. 하나님을 위해 안식일에 고의적으로 쉬는 행위가 예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반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배에 단 한 시간의 참여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24시간동안 계속되는 예배의 행위이다. (189.3)
 하나님께 예배하므로 안식일 쉼의 깊은 종교적인 의미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시간으로 측정되며, 우리가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우리의 우선권을 가리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관심한 자들을 위해서는 시간이 없으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시간을 찾는다. 조용한 우리의 영혼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일곱째 날에 세상의 일들을 기꺼이 멈추는 것은 우리의 사랑과 충성, 그리고 헌신을 하나님께 감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이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수많은 소리들과 시끄러운 소리들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려 기꺼이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즐거움이나 또는 이익을 구하는데 바치는 바쁜 한 날에 단순히 하나님을 위해 한 시간의 예배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 온 종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그것은 입술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 존재로 드리는 것을 뜻한다. (189.4)
 우리 자신에게 봉사하는 안식일
 안식일을 준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일에 쉬고 그분께 예배를 드리므로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는 하나님께 힘과 능력을 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개인적인 생애에 힘과 능력을 주실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189.5)
 하나님은 우리의 안식일의 쉼과 예배를 필요로 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우리의 한 주일 동안의 일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갈망을 유일하게 성취할 수 있는 그분의 평화와 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경험할 수 있는 수용적인 가슴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다. 안식일에 우리는 그날이 마련하는 고요하고도 자유로운 명상의 분위기에서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평화와 쉼을 경험할 수 있다. (189.6)
 어떤 사회학적인 분석에 의하면, 명상의 결여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쉼이 없는 문화에서 기인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참 자아를 알지 못한 채 지나치게 활동적이어서 쉼이 없는 생애를 살고 있으며, 그들은 내적인 공허감과 환멸감을 느끼기조차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내적인 긴장들을 잊어 버리므로 평화와 기쁨을 찾고자 이 활동에서 저 활동으로 빈번히 옮겨 다닌다. 그러나 내적인 평화와 조화는 끝없이 활동들을 하므로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함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있다. (190.1)
 시편기자는 이 진리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고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주일 동안에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은 우리를 매일의 일들로 인한 압박감으로부터 해방시키므로, 우리의 분산된 생활에 질서와 조화를 회복하기 위한 시간과 기회를 우리에게 마련해 준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육체와 영혼, 우리의 존재의 물질적인 요소와 영적인 요소 사이에 평형을 회복할 수 있게 한다. (190.2)
 주일 동안에 우리가 생산하고, 매매하며 구매하고, 사물들을 즐기기 위해 일할 때,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필요보다는 물질적인 결핍을 보는데 더욱 예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안식일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 사이의 평정을 회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190.3)
 아프리카의 내륙에 멀리 떨어져 있는 진지까지 중장비의 부품을 등으로 나르기 위해 고용된 일단의 아프리카 노무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여러 날의 행진을 한 후, 하루는 그들이 그 짐을 지고 가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책임자의 호소에 귀를 막고 도로변에 주저 않았다. 그 탐험대의 지도자는 격분하여 “너희들은 왜 가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 노무자 중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어르신,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육체와 보조를 맞추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190.4)
 이 이야기는 안식일의 기능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육체와 보조를 맞출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곧 우리의 영혼이 예배와 명상을 통해 변화를 가져다주고, 새로운 도덕적인 가치와 영적인 가치로 부유해 지도록 하는 것임을 잘 말해 준다. 안식일에 예배와 명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영적인 갱신은 신적인 지혜와 은혜의 신선한 준비로 새로운 한 주일을 시작할 때 우리로 하여금 생애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할 수 있다. (190.5)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안식일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한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얻은 후,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찾도록 돕는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사랑에 대한 신선한 이해와 경험으로 우리를 새롭게 한 이 후,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돕고 또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도전한다. (190.6)
 넷째 계명은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도록 우리를 돕기 위해 안식일에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포괄적인 목록을 제시한다. 그 목록은 남종과 여종들로부터 시작하여 객들과 동물들까지도 포함한다. 이러한 안식일의 박애적인 기능이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안식일을 우리 자신에 대한 봉사에서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생각하도록 한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안식일의 가르침과 봉사를 통해 안식일 계명의 이러한 기능을 보다 분명히 하고 또 강조하시기 위해서 고통을 감수하셨다.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