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7 장 안식일의 재발견 제 3 부 쉼 없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쉼이 되는 안식일
 그분의 거룩한 임재로 첫 부부를 축복하시기 위해 첫 안식일에 “끝내시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들을 위해 그 스스로가 유용하게 되도록 허락하셨다. 말틴(A.Martin)에 의해 적절하게 표현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통해서 그 자신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인류를 위한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로 모든 창조물을 보증하시는 인격체이시다. 안식일은 이 약속의 표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식일 시간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빵이 차지하는 공간에 국한되어 있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원성을 인류에게 기억하도록 한다.”41) (186.2)
 이 하나님의 위탁은 언약관계에서 분명하게 되며 그 안에서 안식일은 마치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그분의 거룩하게 하시는 임재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으로서 제시된다(출 31:13; 겔 20:12).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본래의 위탁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죄에 의해 야기된 이간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전적인 위탁을 보증하셨다. (186.3)
 인간적인 위탁
 안식일은 신적인 위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위탁도 나타낸다. 그것은 나는(I)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너는(you)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출 31:13)는 것 역시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그분의 영원하신 교제에로 궁극적인 회복을 성취하기 위해 “이제까지 일하시므로”(요 5:17), 안식일은 그 자신이 하나님께 필요 되도록 하므로 믿는 자가 그의 책임을 인정하도록 초청한다. 그분과 함께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므로, 신자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들어간다. (186.4)
 하나님께 자유롭게 시간을 바치는 것은 예배의 최고의 행위가 되는바,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생명의 본질, 곧 시간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시간이다. “시간이 멈추는 것”은 생명이 정지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들의 전 생애가 칠일 중의 하루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신자들이 시인하도록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그리스도인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모든 통상적인 일을 하루 동안 멈추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을 나타낸다. (186.5)
 따라서, 한편으로는 안식일이 그분의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탁을 상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신자들이 그들의 생애에 대한 창조주와 구속주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안식일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충성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기억하기 위한 하나님의 요구를 새긴 깃발의 일종인 신자의 기장이다. 그것은 우리가 견지하고 또 우리가 섬기는 분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 나르는 하나의 현수막이다. (186.6)
 그 주일 동안 사람은 익명성에 의해서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가 군중들 가운데서 살아가고 이동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빈번히 들려오는 대답은 “너는 기계 안에 있는 하나의 이에 불과하며 컴퓨터 안에 있는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다”고 메아리쳐 온다. 그리스도인은 “나는 너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로 알게 하려 함이라”(출 31:13)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다. (187.1)
 하나님의 소유권과 거룩하게 하심에 대한 상징으로서, 안식일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것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확신시킨다. 우리의 창조주-구속주께 대한 소속감을 새롭게 하므로, 안식일은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 평화, 그리고 우리의 생애의 쉼을 회복한다. (187.2)
 (5) 사회적인 긴장으로부터의 쉼
 진실 되게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인종적, 그리고 문화적인 장벽을 헐고 그리스도의 쉼을 경험하도록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피부 색깔, 문화, 언어, 또는 사회적인 신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무력하거나 또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은 우리의 현대 사회에서 많은 불안과 증오, 그리고 긴장의 주요 원인이 된다. (187.3)
 타락 후에, 안식일의 중요한 기능은 인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하고 또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매 칠일, 매 칠 년(안식년), 그리고 매 일곱 안식년(희년)에, 모든 사람들과 모든 짐승들, 그리고 모든 재물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했다. 진정한 해방은 평등으로 인도한다. (187.4)
 히브리 사회의 변덕스러운 지류들은 안식일이 시작될 때 평탄하게 된다. 사무엘 드레스너(Samuel H. Dresner)가 안식일의 평등 기능이 좀처럼 이해되고 있지 않았던 것에 대해 올바로 주목하고 있다. “비록 한 유대인은 양파를 팔고 다른 사람은 큰 숲을 소유하고 있을 지라도, 안식일에는 모두가 동등하며 모두가 왕이다: 모두가 안식일 여왕을 환영하며, 모두가 키두쉬(Kiddush)를 노래했고, 모두가 일곱째 날의 영광 가운데 빛을 쬔다. . . 안식일에는 은행장도 은행원도 없고, 농장 주인도 고용인도 아니고,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다. 거기에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유대인들만 있을 따름이다.”42) (187.5)
 이사야가 이스라엘에서 추방된 사람들, 특히 앗수르와 바벨론의 전쟁에서 발생된 많은 내시들과 외국인들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사 56:1-7) 곳에서 안식일을 준수하므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의 축복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187.6)
 만일 안식일(이와 같은 자매 제도들)에 의해 표현된 인간의 권리가 언제나 이해되고 실천되었더라면 많은 사회적인 부당함을 고대나 현대 사회로부터 피하게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들, 즉 우리의 자녀로부터 종에 이르기까지 그들에 대한 자유와 박애 적인 관심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출 20:10; 23:12; 신 5:14). 예배의 순간, 곧 우리 자신에 대해 가장 진실 된 순간에 우리 앞에 그런 문제들을 놓으므로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이나 또는 사회적인 부당함에 대해 냉담하도록 버려 둘 수 없다. (187.7)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분의 아들을 통해서 구속을 받은 사람들을 증오하면서도 여전히 창조와 구속을 축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안식일 준수는 우리가 인류의 형제 됨을 받아들이고 강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부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187.8)
 안식일이 그날의 예배, 교제, 그리고 박애 적인 봉사를 통해서 이룩하는 교제의 결속은 그 주일 동안의 우리의 사회적인 관계를 반영하므로 영향을 준다. 안식일에 소수 민족에 속한 자들이나 사회적인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그들을 주일 동안에도 그렇게 대하도록 요구한다. 만일 사람이 주일 동안에 안식일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존경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친 자들을 착취하고 혐오했다면 안식일의 인간적인 가치와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188.1)
 모든 사람들을,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흑인이거나 백인이거나 간에 주님에 의해서 창조되고 구속된 사람들로서 받아들이고 존경하도록 가르치므로, 안식일은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은 긴장과 불화의 원인이 되었던 그러한 사회적, 인종적, 그리고 문화적인 장벽들을 허물어 평등하게 하며, 결국은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깃들 수 있도록 한다. (188.2)
 (6) 구속의 쉼
 안식일 준수가 우리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쉼을 날라다주는 여섯 번째의 길은 우리가 신체적인 쉼을 통해서 하나님의 쉼과 구원의 평화의 더 큰 축복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쉼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쉼 사이의 관계는 제4장에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거기서 인간의 시간 속으로 하나님께서 처음에 들어오신 것에 대한 상징에서, 안식일이 타락 후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 인간의 육체로 들어오시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을 보았다. (188.3)
 히브리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주었던 고된 일과 사회적인 불평등으로부터 주일마다의 안식일과 년마다의 안식년의 쉼과 해방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출애굽의 구원에 대한 하나의 기념일뿐만 아니라(신 5:15), 메시야에 의해서 미래에 날라다 줄 구속의 쉼의 한 예표로 이해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의해서 표상된 이러한 구약의 메시야의 기대감을 자신의 구속적인 사명을 안식일의 해방과 구속으로 동일시하시고, 또 그분의 구원의 쉼을 경험하는데 더 없이 적절한 날이 되게 하시므로 성취하셨다. (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