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7 장 안식일의 재발견 제 3 부 쉼 없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쉼이 되는 안식일
 오늘날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 사람들에게지지 않기 위해서 옛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수입과 물건들을 더 얻기를 바라며 안식일에 “부업을 하기를” 선택하기도 한다(출 16:27). 그것은 안식일에 과외의 활동을 하므로 물질적인 만나와 영적인 만나 모두를 얻는데 실패하므로, 결국은 쉼도 없고 만족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83.5)
 안식일과 감사함
 안식일은 우리의 욕심스런 마음이 감사하게 되도록 가르치며-많은 것들을 바라는 것에서 하루 동안 쉬면서 받은 축복들을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감사한 마음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평화가 거하는 것처럼, 감사를 아는 사람은 진정한 내적인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183.6)
 안식일은 생애의 주요 목적이,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옹호 받는 것처럼, 본질을 바꾸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와 창조를 즐기기 위해 쉬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안식일의 쉼은 또한 사물로부터 자유를 가르쳐준다. 배우기 가장 어려운 공과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그것들에 몰두되지 않으면서 사물들을 가질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서로의 독립성을 잃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우리는 상품들의 생산과 구입을 중단하므로 물질로부터 떨어져 독립하고 그리고 영으로 이끌려 의존하는 것을 배운다. (183.7)
 안식일은 우리가 일로부터 자유롭게되므로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그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휴가를 보내는 날”(as vacandum divinis)이라는 아퀴나스의 행복의 표현법을 사용하도록 초청한다.40) 나의 형제들이여, 안식일의 휴식이 없다면 주일의 날들이 얼마나 불쾌할까요! 안식일이 없는 주일의 날들은 소스 없는 스파게티나 소금 없는 음식과 같다. 스파게티에 맛을 더하는 향긋한 소스처럼, 즐거운 안식일은 주일 동안의 매일을 기쁨의 빛으로 빛나게 한다. (184.1)
 우리의 생산성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므로, 안식일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하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동료들을 양적으로 보지 않고 질적으로, 즉 그들의 수입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가치를 보도록 가르쳐준다. 만일 죤스라는 형제가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고 산다면, 주일 동안에 우리는 그를 작은 수입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보도록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우리가 죤스 형제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므로 그가 버는 작은 것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의 그리스도인 증거와 본을 통해서 교회와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많은 것을 인해서 감사하게 된다. (184.2)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경쟁과 생산 활동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므로, 사람들의 인간적인 가치와 사물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충분히 인정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과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에 대한 자유롭고도 더욱 충분한 이해는 우리의 생애에 기쁨과 조화, 그리고 쉼을 가져다준다. (184.3)
 (4) 소속되어 쉼
 진정한 안식일 준수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재 확신시켜 줌으로 우리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쉼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많은 불안들은 고독과 방황감을 갖게 한다.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은 사람을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하며, 쉼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와는 반대로, 상호 소속간의 관계에서, 사람은 사랑, 정체성, 안전감, 그리고 쉼을 경험한다. 인간이 그분과의 소속 관계를 파악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할례, 유월절 어린양과 피, 떡과 포도즙, 그리고 안식일과 같은 도움이 될만한 징표와 상징들을 주셨다. (184.4)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다양한 표징들과 상징들 가운데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적인 선택과 사명에 있어서 탁월한 상징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출발에 있어서 독특한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주어진 첫 번째 표징이었기 때문이다. 그 안식일은 보존에 있어서도 독특한 것은, 타락 뿐만 아니라 홍수, 애굽의 노예생활, 바벨론 유수, 로마의 반 안식일 법령의 제정, 불란서와 러시아의 일시적인 10일 주일제도의 소개, 요일이 없는 날의 제안(주일 주기를 혼란스럽게 함), 율법폐기론, 그리고 근대의 세속주의에서도 보존되어왔기 때문이다. 그 날은 여전히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구원의 준비와 그분께 속한 것에 대한 표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서 있다. (184.5)
 하나님의 소유권
 안식일은 신자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도록 하는바, 그 이유는 그 날이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표징이기 때문이다. 소유권에 대한 의미는 넷째 계명과 또 그것과 관련된 다른 제도들, 즉 안식년과 희년에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안식일 계명에서, 신자들은 “엿새 동안에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출 20:11; 31:17)는 것을 “기억하라”는 초청을 받고 있다. 창조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유일한 합법적인 소유권자이시다. 안식년과 희년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호와께서만이 땅의 정당한 소유자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땅을 경작하는 것을 중단하고 그들의 동료들을 가난과 속박에서 해방시키는데(레 25; 신 15:1-18) 가담했다. (184.6)
 하나님의 소유권의 상징으로서, 안식일은 신자들로 하여금 지속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이 땅과 그들의 생명 자체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인정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소속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관계에서도 사실이다. 남편과 아내는 그들이 기꺼이 서로에게 “나는 당신의 것이며 당신은 나의 것이다”라고 말할 때 이는 진실로 서로에게 속해있는 것이다. (185.1)
 남편과 아내들, 그리고 자녀들이 독립리된 수입을 얻기 위해서 일하므로(종종 필요성과는 상관없이) 야기되는 생활 양상의 함정 하나는 잘못된 독립 의식과 양육에 있어서 별개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빈번히 가족들로 하여금: “이것은 내 돈, 내 차, 내 집이다. 내가 바로 그것을 위해서 일했으므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그것을 사용할 자유가 있다”라고 말하도록 인도한다. 이러한 기만적인 소유권 의식은 종종 긴장을 유발시키고 심지어는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며, 더 나아가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있는 기본적인 관계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 사람이 열심히 일한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부와 풍요로운 물질들에 하나님으로부터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얻어졌다는 잘못된 의식을 쉽게 삽입시켜 넣을 수 있다. (185.2)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 표징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자율성과 독립성은 본질적으로 죄악 적인 생활인가? 하나님의 창조권과 소유권의 상징인 안식일은 신자들로 하여금 자만심을 초기에 극복하도록 돕는다. 첫 부부가 그들이 전적으로 빚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빈손으로 창조주 앞에 서서 첫 온 종일을 안식일로 준수한 것처럼, 신자들이 그들 자신의 일을 안식일에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빚지고 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185.3)
 안식일을 준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와 생명과 부의 소유권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주장이 하나님께 안식일의 시간을 바치므로 표현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유권은 범해서는 안 되는 경계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역의 경계를 시간 속에서 설정해 놓으셨다. 주일 중 마지막 날 곧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신자들은 그들의 전 생애와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서 일하시도록 하기 위해 안식일에 그들의 일을 중단하므로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특별한 표징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속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또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185.4)
 신적인 위탁
 안식일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는바, 그 이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를 묶고 있는 상호간의 위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상호간의 소속관계는 마치 양편이 그들의 관련 책임들을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는 것처럼 인내할 수 있다. (185.5)
 안식일은 무엇보다도 신적인 위탁을 표방한다.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의 행위는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쉼을 창조하신 것이다(창 2:2, 3). 그러한 하나님의 쉼은 특별하게는 인간에게, 전체로서는 피조물에 대한 기별을 가지고 계신다. 창조에 대하여는 이미 제2장에서 주목한 것처럼, 하나님의 쉼은 자신의 창조의 완성과 완전하심에 대한 그분의 만족을 의미한다. 인간성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쉼이 그분의 피조물에 대한 자신의 책임성을 상징한다. (1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