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음주 문제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기독교회에 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기관이나 제도보다도 더 강력하게 그들이 믿고, 가르치는 바, 그리고 설교하는 바로 사회의 도덕적 가치와 행태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내용과, 주일 학교 교사가 음주에 관하여 가르치는 내용이, 신자들이 알코올 음료를 마시는 것에 관한 입장의 상당 부분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12.1)
적당한 음주가 성경이 승인한 크리스챤의 자유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적당한 음주가 과도한 음주의 첫번째 발걸음인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첫째로, 알코올은 습관적이 되어 버리는 마약이고 두번째로, 적당한 음주도 인간의 판단력과 자제력을 감소케 하기 때문이다. (12.2)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은 ‘성경이 술을 마셔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가? 신부님들도 마시지 않습니까? 성만찬에서 조금이지만 실제로 마시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술 마시지 말라고 한 곳을 찾아보라!’고 큰소리까지 친다. (12.3)
절제 운동
미국 절제 운동사를 살펴보면 절대 금주를 침례교, 감리교, 회중교, 구세군, 신파 장로교, 성결 운동파들, 그리고 재림교회가 강력하게 후원하고 증진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열심은 성경이 취하게 하는 음료를 적당히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금하라고 가르친다는 확신에서 우러나왔다. 이와는 다른 견해를 취하였던 성공회, 루터교, 독일 개혁 교회, 구파 장로교는 “절제 운동”에 덜 열심이었다.3(12.4)
금주령이 실시되었던 당시 매해 1인당 평균 1.5 갈론의 술 소비량이 오늘날에는 3 갈론으로 증가한 것은4 역으로 절제 운동의 쇠퇴와 연관된 현상이다. 이러한 쇠퇴는 절대 금주가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믿음을 많은 교회가 서서히 포기한 경향에 영향을 받았다. (12.5)
성경 비판
많은 교회들이 성경의 절대 금주 원칙을 포기한 중요한 한가지 요인은 성경 비판으로 인하여 확장되어진 충격이다. 성경 비판은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인격에 내재된 권위를 약화시켰다. 성경은 “성경이 집필된 당시의 문화적 환경의 소산물”이라고 여겨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음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현대의 도덕적 진전과 인식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5(13.1)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도 인간이었기에 그의 지식이 제한적인 것이였다고 여겨지게 되면서, 그의 인격에 관한 개념도 약화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발효된 술의 해로운 영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효된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가진 한 저작자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알았던 지식에 한계가 있었기에 알코올 성분이 내포된 모든 음료가 절대적으로 또 극도로 해악한 것(우리가 알고 있는 바)을 알지 못했다. 이러하기에 우리는 예수를 정신적으로 따르지, 문자적으로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6(13.2)
성경 비판이 끼친 충격은 절대 금주 개념을 포기하고 적당한 음주로 옮기어 간, 사회의 조류에서 볼 수 있다. 이 흐름은 한 때 절대 금주를 가장 강력하게 옹호하였던 교회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자면, 감리교는 절제 개혁에 있어서 단연 최고의 지도적인 교단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감리교회는 목회자들이 적당히 음주하도록 허용하고 있기까지 한다. (13.4)
빌리 그래함 같은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도 성경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를 들어 음주를 자제하여 줄 것을 당부하고 있을 정도이다. (13.5)
생명 윤리인가? 성경 윤리인가?
빌리 그래함 같은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절대 금주를 옹호하고 있지만, 그들이 성경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음주가 옳지 않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술이 개인과 공중의 건강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들어서 반대한다. 성경 윤리가 아니라 생명 윤리가 이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생명 윤리란 성경이 알코올 음료를 불허한다는 확신이 아니라, 알코올이 인간의 생명(생물학[Bio-logy]이란 생명에 관한 연구이다)에 끼치는 위협으로 인하여 갖게 되는 염려로 이 생명 윤리가 그들의 생각을 지배한다. (14.1)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런 영향을 받아서 알코올 중독을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의 문제로 여기어 다룬다. 알코올 중독이 본질적으로 “고의(故意)의 죄” 즉,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의 문제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14.2)
도덕적인 문제인가? 의학적인 이슈인가?
알코올 중독을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질병으로 축소화 한 작업은 1930 년경에 시작되었고, 널리 받아들여졌다. 심리학자인 폴 굳(Paul Good)이 말한 대로, 그 이유는 “만일 알코올 중독을 도덕적 문제로 간주한다면 치료 산업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7 그는 “십억불대의 산업이 질병으로서의 알코올 중독을 도와준다”고 덧붙여 말한다.8(14.3)
알코올 중독을 질병 형태로 간주한 것은 알코올 남용의 도덕적 측면을 대부분 제거하여, 유전적인 질환 또는 생리학적 질환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하지만 중독 전문가인 남가주 주립 대학교의 허버트 핀가레트(Herbert Fingarette)는 이 일반적인 견해를 반박하였다. 그는 자신의 근저(近著)인 「과음:질병으로서의 알코올 중독」9에서 거의 대부분 간과되었던 의학적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과음이 대부분의 경우 의학적인 문제이기보다는 행동적인 문제라고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