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1 장 음주 문제에 관한 고찰 1. 크리스챤의 책임
 당사자 무과실 사회
 알코올 중독이 각 개인에게는 책임이 없는 질병 상태로 축소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현 사회가 “당사자 무과실 사회(no fault society)”—어느 누구도 그가 행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자 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한 실례일 뿐이다. 보험에도 가입자 무과실 보험이 있고 결혼 관계에도 당사자 무과실 이혼이 있으니, 당사자 무과실 알코올 중독도 성립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는가? (14.5)
 랄프 부에너(Ralph Woerner)는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게 관찰하였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처한 상태에 대하여 비난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천연두나 홍역, 혹은 이하선염(耳下腺炎)과 같은 질병에 걸렸다. 가엾은 이 친구는 목이 말랐다. 그래서 어느날 질병의 원인이 된 음료를 준 술집에 들어갔다. 이 음료가 그의 뇌를 파괴하였고, 그의 결혼을 파탄에 빠뜨렸으며, 가정에 말할 수 없는 고뇌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백하게 행하여졌다. 어느 누구도 발생한 일에 책임이 없다.” (15.1)
 “우리는 절대로 회사가 홍역이나 천연두, 혹은 소아마비를 걸리게 하는 음료를 팔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코올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알코올에 질병을 야기케 하는 매개체가 포함되어 있다고 실제로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을 팔 때에는 사람의 갈증을 해소하고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음료수를 팔 뿐이다. 소비자가 중독자가 되면 그는 질병에 걸린 것이다. 이러한 ‘정신 분열병’적 추론은 제조자로 책임을 지거나 혹은 비난당하는 일 없이 물품을 팔도록 허용한다. 또 소비자로 죄책감이나 수치감 없이 자신을 파괴하도록 허용한다. 소비자는 지진이나 홍수, 혹은 토네이도에 의하여 희생을 당한 어떤 사람과 같은 ‘피해자’일 뿐이다. 소비자가 어떻게 자신이 처한 상태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알코올 중독을 질병으로 간주함으로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모든 책임이나 죄책으로부터 면제하여 준다. 이것은 ‘당사자 무책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 하다.” (15.2)
 “알코올이 양조되었을 때에 그것은 ‘살아 있는 시내’와 같이 맑다. 소비자가 중독되었을 때에, 단지 무서운 질병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산자와 소비자는 그들이 야기한 고통의 모든 죄책과 책임으로부터 면제함을 받는다.”10 (15.3)
 도덕적 확신의 필요성
 크리스챤들에게 알코올 음료가 그들의 건강과 자아상,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적인 영향을 알려주는 일이 긴급히 필요하다. 하지만 알려만 주면 그들이 절대 금주자로 계속하여 잔류 하거나, 또는 절대 금주자가 되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 단순히 생명 윤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경 윤리가 필요하다. 크리스챤이 음주가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나쁜 습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건강과 성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주신 원칙을 범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될 때에만 취하게 하는 물질을 금하고자 할 것이다. (16.1)
 미국 내에서 전국적으로 흡연의 위험에 관하여 실시하고 있는 교육은 흡연자의 수를 급진적으로 감소시키지 못했다. 흡연 습관을 버리기보다 흡연하기를 원하는 4천만의 미국인들이 있다. 이 통계는 생명 윤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알코올의 생리적, 사회적 영향에 관하여 교육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교회 내부나 또는 사회 전체의 음주 문제를 감소시키지 못한다. (16.2)
 이런 실태의 이유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 것을 함이라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15, 24). 인류의 길고 긴 비참한 역사는 인간의 순간적 쾌락과 만족을 위하여 자신들의 행복 뿐만 아니라 결국은 사회의 안녕까지 파괴할 일을 고집스럽게 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16.3)
 크리스챤의 자유란?
 크리스챤이 자유로와지는 길은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 자기 자신을 만족시켜 주는 것을 찾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함에 있다. 하나님에게서 삶의 의미와 성취를 맛보기 전에는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경의 복된 소식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맛보는 방법을 제시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과거 죄악을 용서 받고,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따라 현 세상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 주는 능력을 받아들이므로 그것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설명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롬 8:3, 4). (16.4)
 이상은 음주에 관한 크리스챤의 입장이 단순하게 생명 윤리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경 윤리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논제에 관한 크리스챤의 확신은 음주가 삶의 신체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적극적인 원칙과 훈계에 근거하여야 만 한다. 크리스챤의 음주관은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청종하고, 그 다음에 알코올의 영향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살펴 봄으로써 형성되어야 한다.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