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1 부 진영 가운데 계신 예수님과 함께 (죄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2. 성막을 위한 목적 (나의 모든 통찰력은 그리스도의 것임)
 시간 속의 성소
 “성전”이라는 말은 “시간”“잠시의”라는 말과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다. 초창기 시대에 미신적인 이교도들은 돌들을 땅 위에 원형으로 배열하였다. 해와 달과 다른 천체들이 그 위로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거나 새들이 이 “에워싼” 공간 위로 나는 것을 관찰하게 될 때, 그들은 이같은 일들에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church)” 라는 용어는 이 원을 나타내는 불어인 cirque 와 거기서 유래한 kirk에서, 나온 것으로 이 개념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 에워싼 공간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템플룸(templum)이었으며, 이 성전에서 하늘은 인간과 교통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나중에 이 템플룸은 벽으로 둘러싸이고 지붕이 덮여졌다. 그리하여 돌로 된 원은 헬라인과 로마인의 신전으로 발전되었으며, 유럽의 교회당과 성당으로 변경되었다. 성전은 시간이 영원의 조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공간에서 잘라낸 일부를 암시한다. 이 둘의 주요한 사상은 예배자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홀로 있도록 하는 분리이다. (33.3)
 하나님의 참 성전
 성전이 하나님의 요구 사항에 대하여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그것이 나타내는 예수님의 순종을 가리킨다. 그분께서 땅 위에 “당신의 장막을 세우신” 때에, 시편 기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을) 행” 하도록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시 40:6~8; 히 10:5)라고 그분께서 확언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바울은 이 노래는 성육신하신 아들의 초림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설명하였다(히 10:5~10).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인간의 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품성과 사명을 우주에 드러 내시는 성막으로서 “만들어” 졌다(시대의 소망, 23). 당신의 설교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곧 십자가에 달리실 당신의 몸이 참 성전(요 2:19~21)이라는 사상에 초점을 맞추셨다. (33.4)
 그분의 주님을 모방하는 그리스도인은 성막에 의하여 표상된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인간의 영혼을 위한 당신의 목적을 읽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오랜 후에 사도 바울에 의하여 설명된 것과 동일한 목적이었는데,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6:19, 15~20, 3:16, 17). (33.5)
 이스라엘의 성막에서 비쳐 나왔으며, 성전에서 아른하게 빛났고 저 갈릴리 사람에서 찬란하게 빛났던 하나님의 영광은 각 제자들의 심령에서 불타올라야 하였다. 그들의 거룩한 모본이신 분의 형상대로 꼴 지워진 당신의 거듭난 자녀들을 통하여 그들의 구속주의 품성의 광채는 세상의 어둠을 비추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집”이 세워질 때, 그리스도인은 그의 생애를 통해 그 크신 빛이 비쳐나게 하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엡 2:20~22)가 될 것이다. (34.1)
 “유대인의 성막은 그리스도 교회의 표상이었다”(Signs 1900, 2. 14.). 한 무리로서 그리스도의 조직된 추종자들은 그분의 영광을 더욱더 충만하게 반사해야 한다. 당시의 구약 시대의 교회처럼, 오늘날 그분의 교회는 매일의 삶의 광야에서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실제로 “유대인의 경세(經世)제도는 숫자로 된 복음, 곧 사람들의 마음이 영적 빛을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빨리 계발되어야 했던 그리스도교의 표현이었다”(FE, 238).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이 같은 표징들을 올바르게 읽을 수 있도록 당신의 빛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34.2)
 물론 예수님의 생애와 죽으심은 성소가 설명하는 궁극적인 실체이다. “성막이 상징하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어야 할 것이었다. ∙∙∙ 이런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인간의 영혼을 위한 당신의 목적을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셨다”(교육, 36). 우리는 예수께서 당신의 생애에서 나타내셨던 바와 같이 될 수 있으며, 그분께서 행하셨던 바를 예증할 수 있으며, 그분의 영광으로부터 빛을 얻을 수 있다. 그의 마음에 거하시는 세상의 빛과 더불어 제자는 그가 거하는 세계의 빛이 된다. (34.3)
 에덴의 성소는 홍수 때까지 지상에 남아 있었음
 우리가 아는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부모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계획을 설명하기 위하여 에덴의 문에 축소판 성소 봉사를 제시하셨다. 가인과 아벨은 거기로 가서 그들의 희생 제물을 드렸으며, 1600년 동안 그들의 많은 후손들이 그 모본을 따랐다. 홍수 직전에 에덴을 창설하신 손이 그것을 지상으로 부터 거두어 가셨다. 갈릴리의 정원사께서는 언젠가 그것을 “태초 때보다 더 영광스럽게 단장된 상태”(부조와 선지자, 62)로 회복하실 것이다. 그 때 둘째 아담은 아담과 하와와 우주 세계에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드러내실 것이다. (34.4)
 홍수 후 노아와 그의 아들들은 성소 예배를 회복시키고 주께 감사의 희생을 드렸다. 에덴의 문에서 했던 것처럼(창 8:20, 21), 불꽃은 희생물을 재로 변화시킴으로써(비교, 시 20:3)하나님의 인정 또는 “받으심”(살아남는 이들, 69)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수 세기를 통하여 이같은 개념들은 무디어졌으며 결국은 절망적으로 왜곡되었다(롬 1:21~24). (34.5)
 아브라함은 희생 제도를 이해하였음
 셈이 죽기 25년 전에 태어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충성되었으며, 배도한 세계에서 당신의 대표자로 부름을 받았다(부조와 선지자, 125). (34.6)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의 독자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린 행위는 하늘의 한 대속물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인정을 받았다. 이 극은 갈바리를 예기하였다(창 22:1~19). 구약 시대를 통한 인간의 외침은 모리아산에서 이삭이 “내 아버지여 ∙∙∙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한 말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성경에서 “어린 양”이란 말이 최초로 사용된 경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운명지어진 아이의 부르짖음은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36)라고 메시야임을 확증하는 침례 요한의 외침에 의하여 응답되었다. 그것은 신약에서 어린 양이란 말이 최초로 사용된 경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이 가시에 걸린 어린 양을 보았을 때(창 22:13), 그가 참으로 그분의 날을 보았다고 확증하셨다. 십자가에서 예수께서는 패배한 아담의 “저주”(창 3:18)를 승리하신 왕 중 왕(마 27:29)의 표지로 바꾸셨다.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어린양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바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35.1)
 시내산 성소 이전의 예배의 중심
 모세의 성막이 성경에 묘사된 유일한 성소인 반면에, 이미 예배를 위한 어떤 구조물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암시가 있다. 주께서는 만나를 허락하셨을 때, 모세에게 하늘로부터 내린 이 선물을 가득 담은 금 항아리를 “증거판 앞”(출 16:34)에 두도록 요구하셨다. 금송아지에게 절함으로 이스라엘이 반역하였을 때, 이 대형 장막이 목격된다.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임시 예배 장소로 사용하던 성막이 옮겨져 ‘진과 멀리 떠나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27).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충성된 히브리인들을 위한 예배 장소였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35.2)
 하늘 성소를 모형으로 한, 지상 성막은 하나님의 구속의 활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교과서였다. 당신의 교훈과 예증을 통하여,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로 이 지상에 있는 예배의 형태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참 장막을 바라보도록 이 끌었다. 그 표상과 상징에 대한 연구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히 8:2)닌 하늘 성소에서 예수께서 수행하셔야 했던 기능들을 계시하였다. (35.3)
 그것들이 “모세의 복음”에 기록으로 남게 된 후에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소와 그 봉사에 대하여 주의 깊이 연구함으로 사고(思考)의 자료와 헌신과 예배를 위한 대로를 계속해서 발견해야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의 영감적인 의식(儀式)의 전개되는 드라마를 이해하게 될 때, 그들도 역시 그들의 대제사장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하여 더욱더 분명한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소 문제 ∙∙∙ 를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을 활용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차지 하기를 바라시는 그 위치를 채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충분히 연구하 ∙∙∙ 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각 시대의 대쟁투, 488). (35.4)
 광야에 있던 성소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
 거룩하신 고안자께서는 당신의 장안(匠人)들에게 정밀함과 정확함을 요구하셨다.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