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1 부 진영 가운데 계신 예수님과 함께 (죄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2. 성막을 위한 목적 (나의 모든 통찰력은 그리스도의 것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사람들을 위하여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 분께서는 당신의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자녀들이 당신과 손상되지 않은 교제를 갖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이 평온한 장소에 사단은 반역을 주입시켰으며, 그리하여 하늘에서 있었던 것처럼 땅에서도 전쟁이 있었다. 마귀의 거짓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함으로, 아담과 하와는 그들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장벽을 쌓았다. 그러나 당신의 관습대로, 그들의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께서는 서늘할 때에 다시 동산으로 걸어 오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공포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들의 벌거벗음을 한 나무 뒤에 숨겼다(사 66:17). 그분의 질문에 답하면서 아담은 “내가 두려워하나이다”(창 3:1~19)라고 부르짖었다. (30.1)
 당신의 자라나는 아들과 딸들에게 진리를 계시하려던 하나님의 목적은 일시적으로 좌절되었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는 의사 소통을 재개했으며,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성소를 사용하였다. 회복을 위한 이같은 복합적인 계획의 기초로서, 그분께서는 뱀의 계략을 분쇄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시키고자 여자의 후손을 보내기로 약속하셨다(창 3:15). 여호와의 발표는 우주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슬픔과 은혜의 약속으로 가득 채웠다. (30.2)
 에덴의 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계획 중 첫째 교훈을 가르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아담에 의해 죽임을 당한 희생물에서 얻은 이 가죽옷들은 그들에게 언젠가 그들의 죄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그들의 죄로 인한 벌거벗음을 가려 주기 위하여 당신의 의를 제공하실 당신의 어린양의 “덮어 주심”을 가리켰다. (30.3)
 하나님께서 쉐키나를 계시하심
 역사가의 은밀한 문장은 휘장을 걷어 올려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첫 부모들이 당신의 계획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주께서 사용하신 더 나은 방법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이 ∙∙∙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두었다”는 말은 “쉐키나”라는 히브리어가 파생된 셈어의 어근(語根)에서 볼 때, “장막을 치다”는 뜻이다. (30.4)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낮에는 구름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창조시에 성령께서 수면 위에 운행하셨던 것처럼(창 1:2), 성막 위를 내리덮은 “여호와의 천사”의 임재에 대한 이같은 상징들은 그 광휘를 시은소 위에 있던 그룹들 사이에서 빛나는 광채와 연합시켰다. 백성들은 이것을 “장막 가운데 거하시는 분”을 묘사하기 위하여 “쉐키나”라고 불렀다. 타락 후 주께서는 당신의 최초의 가족들을 받아들이고 인도하심에 있어서 당신의 사랑과 항구여일하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에덴의 화염검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 (31.1)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불을 선택하셨다.(히 12:29). 그분께서는 노아와 그의 자손들과 맺은 당신의 사랑의 언약에 대한 표로서 짙은 폭풍의 구름을 가르는 다양한 색깔의 광채로 이루어진 무지개로서 나타나셨다.(창 9:8~17). 염열(炎熱)가운데 빛나는 광야의 덤불 가운데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육신의 목적을 모세에게 계시하셨다(출 3:3~6; 시대의 소망, 23). 갈멜산의 불붙는 제단의 불꽃 가운데서 그분께서 당신 자신의 이름과 당신의 선지자 엘리야를 옹호하셨다(왕상 18:24, 30~40). 그런 다음 옛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불 붙는 혀 가운데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당신의 교회를 사용하실 계획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다(행 2:1~4). 모든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비추고 그들의 심령을 순결케 하기 위하여 좌우에 날선 당신의 영감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과 교통하셨다(히 4:12; 시 119:105). (31.2)
 에스겔은 이 빛의 검을 스스로 점화되고, 스스로 방향을 찾으며, 흑암의 중심에 이르는 길을 차단하는 무제한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하면서, 모세가 사용했던 “두루 도는” 이라는 말과 비슷한 구절로 표현하였다(겔 1:4; 비교, 창 3:24) (31.3)
 이 빛의 신월도(新月刀)의 기능은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먼저 아담에게 하신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창 2:15)라는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서 “지키다”는 말을 만나게 된다. “지키다”는 말은 안식일 준수에서처럼(출 3:14) 보존하고, 관찰하며, 유지하는 것을 시사한다. 성막의 그룹 사이에 있는 영광은 또한 생명의 길을 보전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것이 희미하게 되지 않도록 지켜야 하였다. 이것은 생애의 안개와 신비 속을 터벅거리며 걷는 순례자들을 위한 “터널 끝의 빛”이 되어야 하였다. (31.4)
 이 행동화된 비유의 핵심을 주목하라 : 하나님께서는 구속자, 곧 죄인을 대신하여 그의 죄를 위하여 죽음의 형벌을 당하실 무죄한 대속주를 약속하셨다. 하늘은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일 것이며 의의 두루마기를 용서받은 죄인들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 왕같은 크신 제사장은 회개한 자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언약의 교제에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빛나는 “길”은 그 길을 따라 걷기로 선택하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항상 열려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뱀의 머리는 미가엘의 발꿈치에 의해 분쇄될 것이다. 이같은 복음의 진리는 구속의 드라마의 이 서막부터 떠오르는 태양의 광선처럼 흘러내렸다. 그 광채는 수세기를 통하여 강화되었으며, 의의 태양께서 갈바리와 부활날에 이 타락한 세상의 어둠을 물리쳤을 때, 정오의 영광에 도달하였다. (31.5)
 예수님은 생명에 이르는 참 길이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은 불멸을 누리기 위하여 그 열매를 먹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이 걸어가야 한다. 길 가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성령께서는 택함을 받은 사람들(히 1:1~3)을 통하여 영감의 빛으로 된 “검”을 제공해 주셨다. “때가 차매”(갈 4:4) 그분께서는 사랑과 자비로 타오르는 성육신한 말씀의 인격에서 그 검의 실체를 뽑으셨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요 1:14)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히 1:3)를 드러내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리스도의 영혼의 성소에서 빛나는 이 찬란한 칼날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을 목격하였다. (32.1)
 영감의 말씀(요 5:39)은 예수님을 통하여 실천된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한다. 전능자의 보좌에서 베들레헴의 구주로, 그리고 갈바리의 십자가로, 거기서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가신 그분의 움직임(빌 2:5~10)에 대한 기록을 연구한 모든 사람들은 사도와 더불어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 (요 1:14; 비교, 요일 1:1~4)고 기쁘게 외쳤다.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우리의 눈도 여시사 그분을 보게 하소서. (32.2)
 성막은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인 계시임
 그리스도께서는 성막을 당신의 생애와 사명을 나타내는 상징들을 담은 보석 상자로 설계하셨다. 생명의 길을 지적하는 성경 말씀(시 119:14, 27)은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성소에 있나이다”(시 77:13; 흠정역)고 선언한다. 랍비들은 모세에게 하신 여호와의 약속들을 기억한다. “만일 네가 위에 있는 것의 복제본을 아래에 만들 것 같으면, 나는 나의 하늘 총회를 떠날 것이며 나의 쉐키나로 아래에 있는 너희들 가운데 거하게 할 것이니라”(Midrash Erodus Rabbah, 35:6, 435). (32.3)
 주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백성들이 희생적으로 제공한 재료들을 가지고 성막을 만들도록 명령하셨다(출 35:4~29). 각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바치도록 요청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면직물과 모직물을 바쳤으며 다른 사람들은 수지와 향을,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보석들과 금을 바쳤다. 반면에 은이나 청동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은 즐겁게 그것들을 가져왔다. 숙련된 기능공들은 시간과 재능을 바쳤다. “크고 값비싼 준비들이 필요하였으며 귀하고 값비싼 재료들이 수집되어야 하였으나, 주께서는 자원해서 드리는 헌물만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헌신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희생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처소를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첫째 가는 필요 조건이다”(2BC, 1027; 비교, 1SP, 269; 부조와 선지자, 343). (32.4)
 참된 성막은 희생을 필요로 함
 여호와께서는 이같은 방식으로 성소의 핵심에 놓인 진리를 강조하셨다. 즉 “구속의 계획은 하나의 희생, 곧 하나의 선물을 통하여 세워졌다. ∙∙∙ 구속의 계획은 선물로 시작되어 마치는 것처럼 그렇게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를 위한 구원에 치러진 동일한 희생의 정신은 하늘 선물의 참여자가 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할 것이다”(교회증언 5권, 730; 비교, 3T, 387; 사도행적, 519). (32.5)
 주께서는 이스라엘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헌물을 요구하셨다. 그들은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 그들의 소유를 증식시킬 아무런 방법이 없었으나, “백 만 달러 이상”(Signs, 1875, 8.5.)의 가치가 있는 헌물들로 응답하였다. 그대는 1990년의 환율에 기초해서 이 탈출한 노예들의 관대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어떤 헌물도 너무 작은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모든 재능은 사용되기 위하여 드려졌다. 하나님께 바치기에 너무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33.1)
 회막을 위하여 사용된 썩을 나무와 부서지기 쉬운 천은 땅 위에 사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가르쳤다. 그 오랜 기간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던 성막의 위치뿐 아니라, 성막이 분해되도록 건축된 방법까지라도 삶의 순간적인 특성을 강조한다. 대조적으로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성전은 그 위치와 그 지어진 재료들에 의해서 영원성을 암시한다.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