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의 마지막 두 절에서는 환상 전체에 대한 가브리엘의 설명이 끝나고 그에 대한 다니엘의 반응이 나오는데, 그 안에 환상이라는 말이 세 번 언급된다. “ [가브리엘이 말하기를]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마르에 —2,300일과 성소에 관한 문답]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하존—환상 전체]을 간직 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이에 나 다니엘이 지쳐서 여러 날 앓다가 일어나서 왕의 일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 환상[마르에—2,300일과 성소에 관한 문답]으로 말미암아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285.3)
 특별히 이 주야에 대한 환상(2,300일과 성소에 대한)에 다니엘이 그렇게 충격을 받고 혼절하여 앓게 된 것에 유의하라. 다음 장에서 이 정보가 예레미야의 70년과 어떻게 관계가 되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85.4)
 끝으로 9:21, 23에 있는 환상이라는 낱말을 보자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하존—환상 전체]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마르에—2,300일과 성소에 관한 문답]을 깨달을지니라.’ 그러니까 8장에서 전체 하존에 대하여 다니엘에게 설명해 주었던 가브리엘이, 다니엘이 혼절하여 미처 설명을 끝내지 못했던 마르에(성소의 정결과 2,300 저녁과 아침)에 대하여 마저 설명해 주기 위하여 다시 온 것이다. (286.1)
 일흔 이레
 하지만 흥미롭게도, 9:24-27에 나오는 설명에서 가브리엘은 2,300일이나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다니엘의 최대 관심사인 유대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말한다. 다니엘은 그의 기도 중에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주여 들으소세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18, 19절; 강조는첨가된 것임). (286.2)
 이제 가브리엘의 설명 시작 부분을 주목해 보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24절; 강조는 첨가된 것임). 가브리엘은 다니엘이 가장 염려하는 문제로써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는 칠십주일이 유대인(“네 백성”)과 예루살렘(“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정하여졌다,” 즉 따로 떼어 놓였다고 말했다. 다니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의 백성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들의 성은 재건될 것이었다. 추측하건대, 이 대답을 듣고 난 후 그는 더 이상 2,300 저녁과 아침에 대하여 걱정하면서 잠을 설치지 않았을 것이다. (286.3)
 그러나 유대인의 귀환과 예루살렘의 재건이 우리에게는 고대의 역사일 뿐이다. 우리는 1762년과 1970년 사이의 208년 동안 그 2,300년은 언제 끝나게 되어있는지 알기를 원한다. 다니엘에게 한 가브리엘의 대답이 우리에게 그 정보도 알려주었는가? (287.1)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것은 히브리말 하타크(hatak) 안에 있다. 가브리엘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하타크]”(24절)라고 말하였다.

 
다니엘 9:24에 사용된 말은 네흐타크(nehtak)로서, 하타크의 수동형이다. (287.2)
 하타크는 무엇을 뜻하는가? 〈제임스왕역〉과 〈새제임스왕역〉은 그 말을 “정하여졌다”(determined)로 번역하는 한편,〈개정표준역〉, 〈새미국표준성경〉, 기타 대다수의 현대 번역본들은 “칙령이 내려지다”(decreed)고 말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여러 해 동안 상당히 일관되게 하타크“잘라내다”(to cut)를 의미한다고 말해왔다. 그것이 다니엘 9:24에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인가? (287.3)
 성경의 단어의 의미를 알아내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곳에서, 특히 성경 안에서 그것의 용례를 찾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하타크라는 단어는 구약의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른 고대 히브리어 자료인 미쉬나와 탈무드같은 곳에서 그 용례를 찾아보아야 한다. 고대의 히브리 문헌에 나오는 하타크에 대하여 윌리엄 셰이가 상세한 연구를 해놓았다. 재림교회가 2,300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단어의 정의가 매우 중요하므로, 좀 길지만 셰이의 결론을 인용하겠다.

 
탈무드는 고대의 랍비들이 유대인의 율법, 관습과 역사에 대하여 주석한 것이다. 미쉬나는 탈무드의 일부이지만 별개의 문헌인 것처럼 자주 언급된다. (287.4)
하타크는 미쉬나 자료에서 “정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잘라내다”라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인다. 하타크는 미쉬나에서 적어도 열 구절 이상에 동사로 쓰이며, 거기서 그 단어는 음식물 율법에 따라 동물의 몸에서 부분들을 잘라내는 것을 언급한다. 그 단어는 또한 할례나, 등(燈)의 심지를 자르는 일, 광부가 광석을 절단하는 일 등과 관련하여 쓰인다. 그 외 두 번의 경우에는 입술이나 입이 말을 끊는 것과 성경의 한 절을 두 부분으로 끊어 읽는 것을 언급한다.
(288.1)
덜 자주 쓰이는 “결정하다 또는 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로서, 하타크는 재판관이 소송의 판결을 내리는 행위를 가리키는 데 두 번, 국가의 일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한 번 사용된다. 하타크는 미쉬나 자료에 명사로서, “잘라낸 것”이라는 의미로 적어도 18번 나오며, 결정의 형식으로 주어진 율법을 가리키는 경우로는 단 한 번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미쉬나 히브리어에서 하타크는, 동사적 의미로는 더 흔히, 명사적 의미로는 매우 흔히, 절단이라는 개념과 관계가 있다.4)
(288.2)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읽어보려고 했던 영어 사용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다니엘의 하타크도 수백 년이 지난 후 미쉬나가 기록된 때에 의미하던 것과는 다른 것을 의미하였을 수도 있다. 이것은 물론 하타크“칙령을 내리다”를 의미한다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잘라내다”를 의미한다고 보는 사람들에게와 똑같이 심각한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해서 셰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288.3)
셈어학(Semetic philology)의 원칙에서 볼 때, 어근의 의미가 확장될 때는 유형적인 개념에서 추상적인 개념의 방향으로 발전하므로, 우리는 “잘라내다”하타크의 본래 원시 셈어에서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잘라낸다는 동작에서 “딱 잘라 결정한다”(cutting a decision)라는 개념이 나욌고, 마침내 그냥 결정한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288.4)
 하타크는 본래 “잘라내다”라는 개념에서 파생되었고 그 개념이 미쉬나 히브리어의 용례에서도 여전히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미쉬나 시대보다 다니엘의 시대에는 “잘라내다”라는 개념이 훨씬 더 우세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다.5) (289.1)
 하타크의 본래 의미가 “잘라내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셰이뿐이 아니다. 브렘퐁 오우수-안트위(Brempong Owsu-Antwi)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다니엘 9:24-27의 연대기〉(The Chronology of Daniel 9:24-17)에서 동일한 사실을 확인하는 다수의 다른 학자들을 열거하였다.6) 그리고 데스먼드 포드도, “모든 사전 편찬자들은 [하타크]가 문자 그대로 ‘잘라내다’를 의미한다고 확언한다.”7)하타크‘자르다’ 또는 ‘칙령을 내리다’를 의미한다.”8)라고 말하였다. (289.2)
 70주일과 2,300일
 그러면 하타크는 어떻게 해서 다니엘 8:14에 나오는 2,300일의 출발점을 우리에게 알려주는가? 잘라내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다니엘 9:24을 어떻게 읽는지 유의하여 보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잘라냈다].” 윌리엄 밀러의 때로부터 현재까지 재림교회는 490일/년이 더 긴 기간인 2,300일/년에서 잘려났다고 말해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윌리엄 밀러는 2,300일에서 70이레가 “잘려 나왔다”고 이해하였다. 참조 P. Gerard Damsteegt, Foundations of the Seventh-day Adventist Messages and Mission, 36, 각주 178. (289.3)
 • 8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환상에서 가브리엘이 설명하지 않은 부분은 성소의 정결과 2,300일뿐이었다.

 • 9장 19절까지는 성소의 정결, 2,300일, 그리고 그것들과 예레미야의 70년의 관계가 다니엘의 크나큰 관심사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9장에서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왔을 때 2,300일을 언급한 것은 나오지 않지만, 그는 다니엘에게 마르에, 다시 말해서 8장의 환상 중 성소의 정결과 2,300일을 언급하는 부분을 설명해주러 왔다고 말한다.

 • 일흔 이레는 “잘려났다.” 그것은 더 큰 전체, 즉 가브리엘이 설명해주러 온 2,300일로부터 잘려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러므로 2,300일의 시작점은 일흔 이레의 시작점과 동일하다. (290.1)
 그것이 다니엘 8장9장, 2,300일, 그리고 칠십 이레에 대한 재림교 해석의 논리이다. 포드는 자신의 글래시어뷰 원고에서 “490이 2,300에서 잘려 나왔다는 의도를 입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하였다.9) 이는 물론 맞는 말이다. 다니엘은 글자 그대로 490년이 2,300년의 한 부분이었다든가, 그 기간에서 잘려 나올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자들은 성경이 제공하는 증거에서 나온 타당한 추론에 근거하여 많은 결론들을 성경에서 이끌어내며, 내가 보기에는 이것도 그러한 경우들 중의 하나라고 납득이 된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설명을수용한다. 첫째, 가브리엘은 8:14에서, 2,300일과 그 기간 끝에 있을 성소의 정결에 대하여 더 설명해 줄 목적으로 자신이 다니엘에게 왔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그리고 둘째, 칠십 이레를 2,300일에서 잘라내는 것은 2,300일 예언의 시작과 끝의 연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300일의 시작과 끝을 찾기 위한 대안은 모호한 208년의 기간뿐이다. (2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