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6 장 사도교회와 포도 음료 4. 근신하라는 훈계
 사도들의 근신하라는 훈계를 정신적인 근신함이나 적당히 술을 마시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그 근거를 성경이 술을 마시는 것을 정죄하지 않고 과도하게 마시는 것을 정죄하고 있다는 추정에 두고 있다. 예를 들자면, 물톤과 밀리간(Moulton and Milligan)은 희랍 어 신약성경 어휘 사전에서 네팔리오스를 근신한, 절제한, 술을 완전히 삼가하거나(요세푸스, 고대사 3, 12, 2) 혹은 적어도 과도하게 마시는 것을 삼가는 것 둘 중의 하나(딤전 3:2, 11; 딛 2:2)”라고 정의를 내린다.76 그러나 이들이 언급한 본문은 술을 과도하게 마시지 말라는 것을 암시하여 주지 않는다. 대신 바울이 감독들, 여자들, 그리고 노인들에게 네팔리우스라고, 즉 금주하라고 훈계한 것 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204.2)
 만일 요세푸스, 필로,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저술가들이 네팔리오스“금주하는”이라고 기본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면 바울이 의도했던 뜻도 마찬가지 일 것임이 틀림없다.77 이미 언급한 사도 바울과 동시대인인 요세푸스와 필로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자명한 사실이다. 더구나 사도 시대가 지난지 오랜 후에 희랍 저술가들도 이 단어를 금주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일례로 철학자 포르피리(Porphyry:주후 232∼303)는 근신하면서(네팔리온 [nephalion])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하였다.78 (204.3)
 번역자들의 선입관
 독자들은 그렇다면 왜 네포네팔리오스가 신약성경에서 근본 의미인 “금주”로 번역되지 않고 대신 계속하여 부차적인 의미인 “절제한, 근신한, 안정된”으로 번역되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번역자들은 자신들이 음주를 선호하기에 이 용어들을 은유적으로 해석하면 “술 취함을 정죄하면서 술의 입장은 살려줄 수 있기”79 때문에 그리하였다. (204.4)
 술에 관한 선입관은 몇몇 희랍 어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언급한 물톤과 밀리간 외에 디델과 스코트(Liddell and Scott)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동사 네포“근신하고, 술을 마시지 않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이 정의를 지지하여 주는 일단의 전거(典據)를 열거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은유적인 의미가 “자제하고, 근신하고, 방심치 않는”이라고 정의를 내리면서 데살로니가전서 5:6베드로전서 4:7, 그리고 이교 문헌 몇몇을 그 지지 전거로 제시하고 있다. 아래에서 논할 것이지만, 이 두 신약성서의 귀절들은 후자보다 전자의 의미를 더 지지하여 준다. (205.1)
 리델과 스코트는 형용사 예물에 관하여 말하면서 네팔리오스“술 없이 ∙∙∙ 술에 섞지 않음, 헌수를 함”으로 정의를 내리면서 일단의 지지 귀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이 단어가 사람을 언급할 때에는 “근신함”으로 번역하며 그 예로서 디모데전서 3:2, 11, 디도서 2:2, 그리고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3, 12, 2를 지지 본문으로 열거하고 있다. 그렇지만, 디모데와 디도서의 본문은 근본적으로 금주를 뜻한다. 이 점은 곧 논할 것이다. 요세푸스의 진술도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네팔리오스“술을 마시도록 허용되지 않음”을 뜻함에 추호의 의문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그 어떤 본문도 이 단어가 정신적인 근신함이라는 은유적인 의미로 번역할 수 없음을 밝혀 주고 있다. 디모데와 디도서의 귀절들은 금주가 아니라 “근신한” 또는 절제한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들이 원래 이런 의미라는 증거로 이 번역이 인용된 것처럼 보인다. 성경 외의 문헌들에 있어서 네포네팔리오스의 의미를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베드로와 바울의 편지서에서 이 단어들이 뜻하는 바를 살펴보자. (205.2)
 (3) 신체적인 금주로서의 네포(nepho)
 바울이 네포를 첫번째로 사용한 것은 데살로니가에 보낸 편지에 나온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밤에 도적같이”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게 오실 것에 관하여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경고를 한 후에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네포멘 [nephomen])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네포멘)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206.1)
 바울은 이 귀절에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근신하라(네포멘)”고 두번씩 이나 훈계하였다. 이 문맥에서 네포멘은 무었을 뜻하는가?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정신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훈계하는가? 또는 신체적으로 금주하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둘 다를 말하는가? 문맥은 정신적인 경계와 신체적인 금주 둘 다를 뜻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206.2)
 이 귀절에는 여러 가지 대조되는 평행귀들이 나온다. 밤과 낮, 빛과 어두움, 깨어 있음과 잠을 잠, 근신함과 취함. 바울이 근신한 낮의 아들들과 한 밤의 아들들을 대조하고 있기에 이 문맥에서 “근신하라”고 한 훈계는 정신적인 경계성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금주도 뜻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성경에는 정신적인 경계성이 취하게 하는 음료를 신체적으로 금주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기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한 불성실 한 종은 “먹고 마시고 취하였다”(눅 12:45). (206.3)
 바울이 네포멘을 문자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사용한 것을 가리켜 주는 또 다른 점은 근신함과 깨어 있음 간의 연관성이다.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6절). 첫번째 동사 그레고로멘(gregoromen)은 정신적인 경계성을, 두번째 동사인 네포멘은 신체적인 금주를 뜻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반복일 뿐이다. 즉, “오직 깨어 있고 또 깨어 있는 자”일 것이다. 바울이 정신적인 경계성을 신체적인 금주와 연관시킨 것은 이 둘이 짝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정신적인 경계성은 신체적인 금주와 자주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은 다른 귀절들을 살펴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206.4)
 데살로니가전서 5:6~8에 덧붙여 동사 네포는 베드로전서에 세 번 나온다(1:13; 4:7; 5:8). 이 세 경우에서 이 단어는 “근신하여”로 번역되었다. 무심결에 성경을 읽은 이들은 베드로가 “근신하라”고 한 훈계가 술과는 상관없이 신중하고, 경계하고 혹은 절제하고를 뜻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면밀히 검토하여 보면 데살로니가전서에서와 같이 이 동사가 이 귀절에서 정신적인 경계성과 신체적인 금주를 언급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세 본문에서 베드로가 “근신하라”고 한 훈계는 그리스도의 임박한 귀환에 준비하라는 문맥에 나온다. 이 말은 베드로가 바울처럼 자신의 독자들에게 금주와 성결의 삶을 살라는 호소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확실하고 임박한 재림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206.5)
 베드로전서 1:13네포를 첫번째로 사용한 예가 나온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네폰테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여기서 베드로는 바울처럼 정신적인 경계성(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과 신체적인 금주(근신 하여)를 서로 관련시킨다. 우리는 이미 희랍 어 사전과 문학이 동사 네포의 근본적인 의미가 “금주하는 술을 마시지 않는”이라고 똑같이 정의 내린 것에 주목하였다. 정신적인 경계성을 신체적인 금주와 관련시키는 패턴은 베드로전서에서 동사 네포가 사용된 세 경우에 일관되어 나타난다. (207.1)
 “금주하라”는 훈계는 베드로전서 1:13에서는 급진적인 의미로 제시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단어 바로 다음에 “완전하게” 또는 “온전하게”를 뜻하는 부사 텔레이오스(teleios)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완전하게 또는 온전하게 금주하라”이다. 대부분의 번역자들은 금주에 관한 선입견으로 인하여 텔레이오스가 그 다음에 나오는 동사 엘피사테(바랄지어다:elpisate)를 수식하는 것으로 보아, 온전히 바랄지어다(개역 성경)로, 또는 “끝까지 바랄지어다(공동번역)”로 번역을 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여러 다른 곳에서 “끝까지”를 뜻하는 데 사용된 관용구는 텔레이오스가 아니라 메크리 텔루스(mechri telous)나 또는 헤오스 텔루스(heos telous)란 합성어이다(히 3:6, 14; 고전 1:8; 고후 1:13). (207.2)
 문법적으로 부사 텔레이오스는 희랍 어에 부사를 동사로부터 분리시키는 구두점이 없기에 선행 동사인 네폰테스나 후행 동사인 엘피사테를 수식하는 데 사용되어질 수 있다. 이 점을 보여 주는 극명한 한 실례는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하신 말씀이다. 대부분의 번역자들과 주석가들은 “오늘” 뒤에다 구두점을 찍지 않고 그 앞에다 찍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죽는 순간 영혼이 몸에서 떠나 살아 남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에서도 이와 유 사하게 대부분의 번역자들은 텔레이오스 후에다 구두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찍기를 원하였다. 이유는 성경이 절대 금주가 아니라 적당한 음주를 가르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207.3)
 수백년 동안 로마 천주교의 공식 성경이었던 벌게이트(라틴역)에서 제롬은 텔레이오스네폰테스를 수식하는 단어로 여기어 “sobrii perfecte”, 즉 “온전하게 근신한”이라고 번역을 하였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제롬의 번역은 자신의 편지에서 근신하라고 세번씩이나 반복한 베드로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정확히 번역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온전하게 금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바랄지어다.” (208.1)
 동사 네포베드로전서 4:7에서 두번째로 사용되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소프로네사테 [sophronsate]), 근신하여(네프사테) 기도하라”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베드로는 정신적으로 깨어 있고 신체적으로 금주하라고 훈계함에 소프론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베드로가 과거의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라고 과거 생활 양식을 절제와 금주의 새로운 생활 양식과 대조한 문맥은 네포가 술을 마시지 않는 의미라는 점을 제시하여 준다. (2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