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6 장 사도교회와 포도 음료 3.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 본문이 중요한 이유
 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부도덕과 추잡한 행위를 멀리하라고 훈계한 다음에 특별한 훈계를 하나 더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적당론자들은 이 귀절을 성경이 적당한 음주를 승인하는 것으로써 여긴다. 그들은 바울이 여기서 정죄하는 것은 포도주를 과도하게 마시는 것이지 적당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루쿠스 발트는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것에 관한 정죄는 주정 음료를 적당히 마시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21 (187.1)
 적당론자들은 만일 바울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완전히 금하려고 하였다면 그는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22고 말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대신에 그냥 술 취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 다음 문구인 “이는 방탕한 것이니 혹은 방탕한 생활이 거기서 옵니다”도 마찬가지로 술취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졌지, 술이 방탕함의 능동적 행동 원리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되었다. 한 예로 호레이스 범스테드는 “몇몇 학자들의 주장처럼 엔 호(en ho)를 메투스케테 오이노스(술 취한:methuskethe oios]) 대신에 오이노스(술)와 연결시키는 것은 메투스케테(취한:methuskethe)와 같은 강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 것과는 조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23 (187.2)
 우리는 이 주장을 다음의 다섯 가지 점에서 검토할 것이다. (187.3)
 (1) 이 귀절의 구조

 (2) 관계절

 (3) 고대와 현대의 번역들

 (4) 아소티아(Asotia)의 의미

 (5) 랍비들의 증언 (187.4)
 (1) 이 귀절의 구조
 두 가지 대조적인 진술
 이 귀절은 서로 댓구를 이루는 두 가지 문구, 즉 “술 취하지 말라”“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반제(反題)는 적당한 것과 과도한 것을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로 꽉 참과 성령의 충만을 대조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켜 준다. 이 두 진술에는 이러한 충만, 혹은 꽉 참, 즉 고주망태가 되게 하는 포도주와 성령의 근원 간의 성질과 작용이 내적으로 양립될 수 없음을 가리키고 있다. 어느 누구도 고주망태가 되게 하는 술과 도취하는 성령이 반반씩 채워질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배타적이라는 사실은 취하게 하는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것을 승인하지 않는다. (188.1)
 이 점은 그 이전 절을 보면 더 명확하여진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즉, 우리가 독한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취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귀절의 구조는 바울이 이른바 안전하게, 적당하게 술을 마시라는 것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꽉 차라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여 준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취하게 하는 술을 간절히 원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88.2)
 두 가지 비슷한 귀절
 스스로 금주자가 아닌 수많은 주석가들이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두 가지 비슷한 본문을 언급하여 설명한다. 첫번째 귀절은 천사가 스가랴에게 침례 요한에 관하여 말한 누가복음 1:15이다. “이는 저가 ∙∙∙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두번째 귀절은 오순절 이야기에 속한 본문의 두 절이다.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2:15, 4). (188.3)
 이 두 귀절에서 성령의 충만은 취하게 하는 음료를 금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이 두 귀절과 에베소서 5:18이 놀랍도록 비슷한 사실은 에베소서 5:18에서도 성령의 충만에는 주정 음료를 마시는 것이 배제된다는 것을 제시하여 준다. (188.4)
 술을 아예 마시지 마라
 누가복음 1:15사도행전 2:15, 4에서 볼 수 있는 술과 성령 간의 대조 관계는 예베소서 5:18을 바울이 기록하면서 비슷한 사실을 말하고자 차용하여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이 “술을 아예 마시지 마라.”고 말하지 않고 “술 취하지 마라”고 말한 점에서 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바울은 누가와 마찬가지로 포도주로 차버리는 것과 성령의 충만 사이의 대조성을 강조하기를 바랬을 것이다. (189.1)
 바울이 “술을 아예 마시지 마라.”고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병을 치료하는(medical) 목적, 즉,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 음료를 조금씩(개역성경) 마시라”고 권고한 디모데전서 5:23에 나온다(본서 7장에서 디모데전서 5:23은 검토할 것이다). 바울이 제한된 양이지만 합법적으로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다고 믿은 사실은 논리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로 모든 종류의 포도주를 금할 수 없게 한다.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포도 음료”를 뜻하는 오이노스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발효된 포도주나 또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칭할 수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만일 바울이 서술적 형용사 없이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고 말하였다면 거기에는 건강에 좋고 영양분이 있는 포도즙을 마시는 것도 포함 되었을 것이다. (189.2)
 (2) 관계절
 관계 대명사의 선행사
 “술 취하지 말라”고 한 바울의 훈계 바로 뒤에는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는 경고가 뒤따라 나온다. 그렇다면 방탕한 것이란 무었인가? 방탕의 원인 매체는 포도주인가? 아니면 방탕한 상태의 술 취함인가? 이 질문의 해답은 희랍 어 원문상의 관계절, 엔 호(en ho)”의 선행사를 둘 중의 어떤 것으로 여기는가에 달려 있다. 희랍 어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엔 호) 방탕함(아소티아 [asotia]: 문자적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unsavableness]’을 뜻한다)이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번역한 개역성경은 특히 “술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라고 번역한 공동 번역은 둘 다 술보다는 술취함 자체를 방탕한 것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이런 실태는 레온 필드가 지적한 바와 같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신약성경 어디서나 허용된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 번역이지, 이 본문을 주석 할 필요성이 없다는 추정에 근거한 번역이 아니다.”24 (189.3)
 문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관계절의 주어는 선행절이 될 수 있다. “거기에서(en ho, in which)란 관계절은 포도주에 취한 상태나 취하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서 사용된 포도주를 칭할 수 있다”고 말한 렌스키와 같은 주석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25 영의 성경 단어 분석 용어 색인의 저자인 로버트 영은 거기에서란 이 관계절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술에 취하지 말라. 거기에(in which) 방탕함이 있다. 그러므로 성령에 충만하라.”26 (190.1)
 술을 선행사로 여기길 선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