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6 장 사도교회와 포도 음료 2. 고린도전서 11:21: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이 본문이 중요한 이유
 적당론자들은 고린도 교회 내에서 포도 음료가 집이나 공공 장소에서 열린 성만찬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밝혀 주는 요지부동의 증거로 고린도 교회가 성만찬 예식 시에 “취하였다”고 바울이 말한 것을 들고 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고전 11:20~21). (181.1)
 적당론자들은 고린도 교회의 술취함 문제는 그들이 포도주를 마셨기에 생긴 일이라고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즉, 발효되지 않은 포도 음료였다면 고린도인 들이 어떻게 성만찬에서 취할 수 있었겠는가?15 더구나, 그들이 취한 것을 알면서도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하여 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16 논거는 분명하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과도하게 마시는 것을 정죄하였으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정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점에서 이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181.2)
 ① 절기의 성격

 ② 동사 메투오(methuo)의 의미

 ③ 바울의 훈계가 시사하는 바 (181.3)
 (1) 절기의 성격
 이기적인 애찬(愛讚)
 고린도 교회에서 주의 만찬과 연관되어 발생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한다면 당시의 사회 관습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비종교적인 조직이나 또는 종교적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 식사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 특히, 참여하는 각 사람이 공동 축연을 갖고자 함께 음식들을 가져오는 에라노스(eranos)라고 부르는 친교의 식사가 있었다. 초기 교회는 이 관습을 받아들여 아가페 혹은 애찬(愛餐)으로 알려진 형태로 발전시켰다. 전 교인이 축연(演)에 자신들이 준비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나와 함께 앉아서 공동 식사를 하였다. 그것은 참된 크리스챤 친교를 형성하고 풍부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오늘날 구미(歐美)의 교회가 예배 후에 갖는 파트락(pot-luck)과 비슷한 관습이다. (181.4)
 고린도 교회에서는 애찬이 주의 만찬과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 축연(celebration)은 이기적인 잔치로 변질되어 버렸다. 나눔의 미학(美學)이 사라졌다. 부한 자는 자신들의 음식을 가난한 자와 나누지 않고 배타적인 소무리를 형성하여 자기들끼리만 먹었다. 그 결과로 식사 때에 어떤 이는 굶주렸으나, 어떤 이들은 포식하였다. 성만찬에서 제거된 계층간의 구별이 뚜렸하게 드러났다. 순조로움과 품위 있음이 사라졌고, 예식의 진지성도 상실되었다. (182.1)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이 실태를 엄하게 꾸짖었다. 먼저 그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함께 모이는 목적, 즉 주의 만찬을 먹는 목적을 상기시켜 주었다(고전 11:20~23). (182.2)
 사적인 식사인가? 주의 만찬인가?
 바울의 책망은 고린도 교회의 크리스챤들이 우둔하게도 주의 만찬을 사교적인 식사와 혼동하였다는 것을 제시하여 준다. 아마 그들이 주의 만찬을 당시 희랍인들이 행하였던 축제와 비슷한 사교적인 축연으로 축소시켰을 수도 있다. 이 말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이유는 주의 만찬 전에 친교의 식사를 먼저 하였다는 말이 이 귀절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182.3)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공동번역:고전 11:20)라는 바울의 말은 그 모임의 목적이 주의 만찬인 것을 확실하게 가리켜 준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주의 만찬을 일상적인 잔치로 변형시켰다. 아마도 우상에게 영광을 드리는 축제의 본(本)을 따라서 그렇게 한 것 같다. 이런 사항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여 낸다. 고린도 교회에서 행한 모든 것은 변칙적인 것이었고 타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크리스챤들은 주의 만찬이라는 성스러운 예식을 전적으로 잘못 생각하여 세속적인 잔치로 변질시키었고, 그 잔치에서는 방종이 판을 쳤다. (182.4)
 고린도 교회의 친교 식사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한 후에 제정하신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크리스챤들은 유월절을 주의 만찬에 곧 바로 뒤 이은 예비적인 친교 식사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보지 않았다. 대신 유월절은 주의 만찬이 대치하였다고 이해된 거룩한 절기였다. 주의 만찬이 친교 식사와 연관되어 지켜졌다는 것을 기록한 귀절은 고린도서나 또 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고린도 교회에서 행하여진 것은 변칙적인 것이고, 타당치 않은 것이고, 바울이 “주께 받아” 교회에게 “전한” 그 가르침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뜻이다(고전 11:23). (183.1)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고린도 교회의 성만찬 의식 때에 발생했다는 “취함”은 사도 교회가 주정 음료를 마셨다는 것을 절대로 입증하여 주지 못한다. 전체 크리스챤이 한 지역에서 전도(轉倒)된 것을 행하였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더구나, 만일 고린도의 교인들이 그들에게 ‘전하여진’ 지침에서 이탈하였다면, 그들의 실수는 우리들에게 경고이지 결코 모본이 아니다. (183.2)
 (2) 동사 메투오(methuo)의 의미
 포식함
 고린도 교회의 성만찬 예식에 술취함이 있었다고 일반적으로 추정한다. 이 추정이 사실인가? 이렇게 추정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결론을 동사 메투에이(methuei)의 일반적인 번역, 즉 “취한(is drunk)”에 둔다.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는 번역에 의거하여 만일 고린도 인들이 사도들의 책망 없이 취하게 하는 포도주를 마셨다면 오늘날의 크리 스챤들도 마실 수 있다고 추정한다. (183.3)
 이러한 추정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오류는 메투오가 오직 “술 취한”을 뜻한다고 추정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이미 살펴본 요한복음 2:11에서 이 동사 메투오가 취하게 함과 술 취함을 항상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문맥이 이 동사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한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 메투에이(methuei)는 “시장한”을 뜻하는 페이나(peina)에 대구적으로 사용되었고, 그래서 동사는 “취한”이라는 좁은 의미에서보다는 “포식한(배 부른 / satiated)”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하여야만 한다. 레온 C. 필드(Leon C. Field)는 이 점을 명확하고 결정적으로 밝혀 준다. 메투에이는 이 경우에 있어서 ‘시장한’이라고 정확하게 번역되는 페이나와 명백하게 대조된다. 그러므로 이 대조법은 메투에이‘술취한’이라는 좁은 의미로서가 아니라 ‘포식한’의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함을 요구하다. 넘치도록 가득히 먹은 사람과 적게 먹어 차지 않은 사람과 비교하고 있다. 고대와 현대의 많은 주해가(註解家)들이 해석을 지지한다.”17 (183.4)
 학자들의 지지
 레온 필드는 이 해석을 지지하는 많은 주해가들, 즉 크리소스톰(Chrisostom), 벵겔(Bengel), 그로티우스(Grotius), 위클립(Wycliff), 쿠이노엘(Kuinoel), 빌로스(Bilroth), 맥나이트(MacKnight), 뉴컴(Newcome), 브룸필드(Bloomfield), 클라크(Clarke), 라이트푸트(Lightfoot), 딘 스탠리(Dean Stanley), 훼돔(Whedom)을 열거하였다.18 그 외의 인물로는 바울보다 약 150년 후의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이다. 클레멘트는 그의 교사(2권 1)에서 취하게 하는 포도주가 이 귀절에서 사용되었다는 견해를 반박한다. 그는 바울이 말하는 것은 잔치의 음료가 아니라 음식이고, 그들이 영양분을 충족하는 것 이상을 먹음으로 진미에 사로잡힌 것을 책망하였다고 주장한다.19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