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6 장 사도교회와 포도 음료 2. 고린도전서 11:21: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아담 클라크(Adam Clarke)도 그의 주석에서 이 본문을 주해하며 똑같은 점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이 자신들 음식을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들은 많이 가져오고, 어떤 이들은 조금 가지고 왔다. 어떤 이들은 과식하였고, 어떤 이들은 신체적 욕구를 간신히 채웠다.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메투에이, 즉 가득찼다. 이것이 성경 여러 곳에서 사용된 이 단어의 의미이다.”20 (184.2)
 칠십역은 메투오가 가득히 채우다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 수많은 실례들을 제공하여 주고 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시편 23:5“내 잔이 넘치나이다(메투스콘:methuskon-가장자리까지 참)” 이다. 또 다른 예는 시편 65:10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메투손:methuson) 대사 그 이랑을 평평케 하시며”, 또 예레미야 31:14도 해당된다.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메투소:methuso—물릴 정도로 주다) 하며” 이와 같은 실례들은 메투오가 종종 성경에서 충족한 만족, 포식을 뜻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 준다. (184.3)
 (3) 바울의 훈계가 시사하는 바
 술 취함에 관한 암시가 아님
 바울의 책망과 훈계는 술 취함이 고린도 교회의 성만찬에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었음을 제시하여 준다. 바울은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22절)고 책망하였다. 만일 술 취함이 문제의 포인트였다면 바울은 아마도 먹고 술취할 집이 없느냐?”고 책망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책망한 말에 “술취함”이라는 암시가 없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포도주에 취함이기 보다는 먹고 마심에 있어서 과도한 방종이었다는 것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185.1)
 만일 고린도의 크리스챤들이 성만찬 중에 고주망태가 되는 무서운 죄를 범한 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은 그들의 신성 모독적인 행위를 더 단호한 다른 말로 정죄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바로 전 장(10장)에서 이교도의 종교적 식사에 참여하는 몇몇 고린도인들을 서슴없이 “귀신과 교제하는 자”(고전 10:20)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서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 덧붙인다(고전 10:21). 또 바울은 이미 “술 취하는 자는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하면서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술 취하면 ∙∙∙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훈계하였다(고전 6:10; 5:11). 이 훈계에 근거하여 만일 누구든지 성만찬 상에서 술 취하였다면 바울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와 사귀지 말라고 권고하였을 것이라고 당연히 추정하여 볼 수 있다. (185.2)
 이 훈계가 중요한 이유
 바울은 주의 만찬 중에 발생한 문제를 강한 언어로 정죄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고린도의 교인들에게 행하여진 무례함과 그들에게 드러내어진 정죄를 피하기 위하여 집에서 그들의 허기를 채우라고 훈계하는 것이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33~34). 이 훈계는 고린도 교회에서의 문제가 포도주를 마심으로 취한 것이라기 보다는 먹음에 방종한 것이었다는 것을 제시하여 준다. 고린도의 신자들이 성만찬 상에서 술 취하였다.면 바울이 같은 고린도전서에서 과거에 그들 중 어떤 이들이 술 취한 자가 있었으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고 말하였을 것 같지는 않게 보인다. (186.1)
 결론
 전술한 고려 사항들에 비추어서 우리는 고린도 교회의 성만찬 상에서 “취함”에 관한 바울의 언급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주의 만찬을 거행함에 있어서 포도주를 적당히 마시는 것에 대하여 지지하여 주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로, 고린도 교회에서 행하여진 것이 무었이든지 간에 바울이 교회에게 “전한” 지침에서 이탈한 것이고, 그러기에 그들의 행동은 우리들에게 모본이라기 보다는 경고이기 때문에 그렇다. 둘째로, 성만찬 상의 문제가 포도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의 방종이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러하다. (1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