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5 부 내 제사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죄와의 교제 관계로부터의 해방) 27. 열 두 지파 봉헌식 (나의 모든 목적은 그리스도의 것임)
 열 두 지파들은 그들 자신들을, 시내 산에서 성막을 완성하여 세우고, 봉헌하며, 제사장들을 성별하여 드린 영광스러운 사건 이후의 열 두 날 동안 여호와께 바치었다. 불이 떨어져 이스라엘이 제단에 바친 첫 희생이 가납되어 졌음을 알려준 사건은 모든 백성의 헌신을 고취시켰다. 이스라엘 족장들이 매일 한 사람씩 여호와께 스스로를 성별하였고, 그 족장은 한 지파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씨족들이 모본을 따르도록 고무하였다. 그러므로, 국가 전체가 유다로부터 시작하여 광야에 교회를 설립하는 책임을 다할 것을 서약하였다(민 7:1~89). 우리는 여기서 세기가 지나감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서서히 헌신하는 모습과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341.1)
 이 감동적인 장면을 넘어가기 전에, 성전에서 행하는 일상적인 봉사를 위하여 레위 지파 사람들을 성별하여 세운 사건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여호와께서는 다섯 번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면서 배도 행위를 하였을 때에, 레위 지파 사람들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특별히 레위 지파 사람들을 대제사장을 돕는자들로서 택하였다고 선포하셨다(민 3:3~51; 8:5~26; 18:1~32; 신 10:8~9; 18:1~8; 참조 출 32:25~29). 여기에는 레위 지파의 모든 후손들이 포함되었으며, 이들은 이따금 “레위 사람 제사장들” 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수 3:3; 겔 44:15). (341.2)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지파들 가운데 장자로 태어난 자들이 그들의 가족들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그들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민 3:14~39; 18:15). 그들의 수는 22,000명이었다. 모든 지파들의 장자들의 수는 22, 273명이었다(민 3:40~43). 여호와께서는 레위 사람에 의하여 속함을 받지 못한 273명의 각 사람들을 위하여(민 3:46~51) 속전(베카<beq’a>)을 지불하라고 요구하셨다(출 30:11~16). (341.3)
 시내산에서 행하여진 이 지상의 성별 예식은 메시야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늘 성소의 설립 및 봉헌과 우리의 대제사장의 취임식에 뒤이어, 성령의 불이 강림한 것은 열 두 사도들을 신약 성경 공동체의 족장들이며 그리스도교회의 기초로서 성별하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재건되어, 이 세상의 끝 날까지 지상에 그 증언을 계속하였다. (341.4)
 예수를 통하여 수행될 구원 계획의 모든 세부 사항들이 하나님의 생각과 목표 가운데서 수립되었고, 사실상 태초부터 그 기능이 이행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중재와 관련이 있는 대 계획의 각 세부 사항들은 실제적으로 십자가 처형 사건과 오순절 사건 사이에 수행 되었다. 예를 들자면, 예수께서는 “창세 때부터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구약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은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는 갈바리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하시었다. 그분은 또한 “영원히” 제사장이시다. 에녹과 엘리야와 모세는 낙원에 거할 자가 될만한 승리의 삶을 삶으로써 예수의 중보 사역을 입증하여 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신 사건은 실제적으로 오순절에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제사장과 희생으로써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별에 의하여 이러한 영원한 목표들을 때 맞추어 문자 그대로 수행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구약 성경와 신약 성경의 언급들을 연구하여 보면, 우리의 구주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눈 앞에 그려볼 수 있다. (342.1)
 각 지파 대표자인 족장들을 헌신시킴으로서 열 두 지파를 봉헌한 사건에 뒤 이어(민 7:1~89), 레위 지파 사람들의 봉헌도 곧바로 뒤따랐다. 22,000명의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리 앞에 운집하여, 머리를 깨끗이 깍이우고, 옷을 빤 후에,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림을 당하였다(민 8:7). 이 정결케 하는 물은 암소의 재와 함께 준비되었다(민 19:1 이하). 열 두 지파의 족장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대표하였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손을 레위 사람들의 머리에 얹어 안수하였고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요제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로 여호와를 봉사케 하기 위함”이었다(민 8:10, 11). 요제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도록 들어올렸다가 그분께로부터 다시 되돌려 받는 선물을 대표하였다. 그러므로,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려졌고, 하나님에 의하여 다시 백성에게 주어졌다. (342.2)
 그리고 나서 레위인들은 성별의 번제물로 드려질 수소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게 되어 있었다. 이 예식 다음에 속죄 제물이 도살되었다(민 8:12). 여호와께서는 그런 다음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민 8:16~19). (342.3)
 그리하여 “레위인이 이에 죄에서 스스로 깨끗게 하고 그 옷을 빨매 아론이 그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드리고 그가 또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여 정결케 한 후에 레위인이 회막에 들어가서 아론과 그 아들들의 앞에서 봉사하니라”(민 8:21, 22). (342.4)
 “여호와께서는 구속의 경륜이 그분 자신의 사랑으로만 옷입고 있는 동안에는 그 구원의 계획을 완성시킬 생각을 안하셨다. 여호와께서는 [하늘 성전의 성소에 있는 영원한 중보의 제단에] 인간의 본성을 입고 있는 한 중보자를 두셨다. 이 중보자의 직분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로 하나님에게 입양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친구들을 그분의 친구들로 받아들이고 환영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신다. 그 분은 완결되어진 속죄에 만족해 하신다. 아들의 중보로 인하여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들은 사랑하시는 자 안에 가납되어진다”(Signs, 1902. 8. 13.; [ ]안은 필자가 추가한 것임). (342.5)
 제사장이 하늘 성전에서 행하는 기능
 “그렇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기도와 축복의 매개가 되셨다. 그분은 그분의 의가 지닌 모든 영향력을 탄원하는 자들의 편에 두셨다. 그분은 사람을 위하여 간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인간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친 분의 이름을 들어, 자신을 위하여 간구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때, 우리의 탄원에 향기가 주어진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의복을 입게 된다. 구주께서는 우리들을 자기 편에 가까이 끌어들여 자신의 인간 팔로 우리들을 끌어안는 한편, 자신의 신성한 팔로는 무한한 자의 왕관을 잡고 있다”(Signs, 1902. 8. 13.). 성경도, 예수의 제사장과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 이외에, 그리스도의 사역에 내포된 여러 국면들을 다섯 가지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여 기술한다. 대언자(Advocate), 중보자, 간구자, 변호자, 심판자. (343.1)
 성령에 대한 독특한 호칭인 “대언자”(희랍어로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단 한 번만 그리스도에게 사용되었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일체이다. 요한은 회개하는 자에게 죄지을 때마다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요일 2:1). 이러한 봉사는 제사장이 매일 행하는 봉사의 일부분으로서, 제사장이 성막의 뜰과 성소에서 행한 여러 가지 활동들이 예증하여 준다. 이 말은 희랍어로 계속하여 부르심을 받으며, 자녀들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들이 청하는 지극히 사소한 요청의 외침에 항상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를 묘사한다. (343.2)
 예수께서는 주와 구주로서 그분에게 합당한 모든 권능을 가지고, 그리고 왕으로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한다. 예수께서 비록 인간의 몸을 입었지만, 그분과 같은 다른 보혜사, 곧 그분을 대표하는 자이며 성령인 보혜사(요 14:15~18)를 그분의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어 줄 것을 약속하신다. 그분의 영께서 우리들을 도우러 오시면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 옆에 서 계신 것과 같다. (343.3)
 예수는 또한 천사들을 파송하는데, 천사들은 섬기는 영들로서 필요에 처한 모든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힘차게 달려간다(히 1:13, 14). 엘렌 화잇은 법률적인 은유를 사용하여 우리의 구주께서 어떻게 우리의 보혜사로 일하고 있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속죄소에 다가서자마자 그 사람은 위대한 보혜사의 변호 의뢰인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이 회개와 용서를 비는 간구를 하는 순간에, 그 사건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삼고, 아버지께 이 사건에 대한 탄원을 자기 자신의 간청으로서 상정하신다”(6T, 364). (343.4)
 영원하신 성령님이시여, 우리들을 가르쳐 이것을 믿도록 하옵소서. (344.1)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성육신에 관한 자신의 논의를 매듭지었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였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 18). 그가 사용한, 도와주러 가다를 뜻하는 용어 “도우시느니라”(보에테오<boetheo>)는 파라클레토스 즉 대언자(보혜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제사장께서는 신속하게 우리에게 와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돕는 한편, 그분 자신은 “영원히 살아서”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계속적인 대표자로서 봉사하신다. (344.2)
 “중보자(Mediator)” 란 단어는 예수를 표현하는 데 네 번 사용되었다(딤전 2:5; 히 8:6; 9:15; 12:24). 이러한 절들에서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메시테스<mesites>)의 중보자로 묘사되었다. 예수께서는 소외된 인간을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와 화해시키는 매개자, 중재자, 인권 옹호자, 절충자 혹은 중보자이시다(갈 3:19, 20). 구주께서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려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비준하였다. 구주께서는 죽임을 당하기 이전에도 사람의 중보자이었다. 그는 인간의 고엘, 즉 혈족 구주(血族 救主)이었다. (344.3)
 “본 장<요 17장>에는 그리스도께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아버지에게 드린 중보 기도가 나온다. 이 기도는 구주께서, 인간을 위한 자신의 크신 희생, 곧 자기 자신을 제물로서 드리는 일이 완결되어질 때, 휘장 안에서 행할 중보에 관한 교훈이다. 우리들의 중보자는 온유와 겸손으로 자기에게 와서, 모든 이기심을 비우고, 또 구원하는 자신의 능력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늘 성소에서 자신이 하시는 봉사에 대한 이러한 실례를 보여 주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함께 드린 마지막 기도이었다.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기 직전에 이 기도를 드렸다”(5BC, 1145). 예수께서는 이 기도에서 인간의 중보자로서 행동하였고(요 17장), 그분은 그 이후로 우리의 간원자이어 왔다. (344.4)
 “간원자”(엔투그카노<entugchano>)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위하여 종종 사용되었다(롬 8:34; 히 7:25; 참조 히 9:24; 10:12~14; 요 11:42). 이 단어(Intercessor)는 탄원자, 간원자, 혹은 갈등의 시기에 다른 사람들 대신하여 간섭하는 자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모든 사람들과 동일시하여 왔고, 지금은 인간을 대표하는 자로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이 일을 성취하실 수 있다. 우리는 거듭날 때에 그분 안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흠없는 생애와 그의 순종과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된 인류를 위하여 중보하셨다. 그리고 우리 구원의 대장은 지금 다만 탄원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는 승리자로서 당신의 승리를 주장하신다. 그의 드린 제물은 완전하였으니 그는 우리의 간구자로서 당신이 스스로 정하신 사업을 행사하신다. 즉 당신의 흠없는 공로와, 당신의 백성의 기도와, 고백과, 감사를 표현한 향연(香藥)을 하나님 앞에 올린다. 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온전히 합당한 것이 되고 용서는 모든 범죄에 미치게 된다”(실물교훈, 156). (344.5)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롭다 하는 자(justifier)”로서(롬 3:26) 행하는 사역을 예고하였다(사 50:5, 6).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디케<dike>)고 최종 선언하신다. 이 메시야 예언에 구주께서 받을 고통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선지자는 그런 후에 자신을 개인적으로 비난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신다”고 확신하는 바를 자신있게 증거하였다(사 50:7, 8). 이러한 용어의 배후에는 사법적인 개념이 깔려있다. 사악한 “동족의 고소인”이 거짓된 죄목들로 성도들을 고발할 때, 재판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의롭다 선포하실 것이다. (3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