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조사심판과 성소 제20장 속죄일 그리고 죄의 문제
야훼가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사실로 미루어 아사셀도 역시 모종의 초자연적인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44.3)
∙∙∙야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의식을 거행하도록 명하는 권위 있는 분이므로(1-2절), 아사셀은 그분의 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아사셀은 일종의 마귀이며, 그의 거처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은∙∙∙ “지성소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머무는 것과는 정반대”를 나타내는 것이다.6)
(244.4)
비록 레위기에서 아사셀은 모습이 어렴풋한 존재이지만 그의 전체적인 윤곽은 명확하고, 거기에 들어맞는 존재는 온 우주에 단 하나, 사탄뿐이다.7)
(244.5)
 그리하여, 아사셀은 사탄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이며, 아사셀 염소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죄를 그에게로 전달하는 운송 수단이었다. 게인은 그 염소를 “처리된 유독성의 폐기물을 아사셀에게로 나르는 의식(儀式)상의 ‘쓰레기차’8)라고 부른다. 그는 “여호와의 염소는 여호와께 속하고 여호와께 바쳐졌으나, 그것은 또한 여호와를 대표하기도 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사셀에게 속하고 그에게로 보내진 염소 또한 아사셀을 대표하는 것이 틀림없다.9) 어떤 변호인이 누군가를 대표할 때 그는 그 사람을 대신하여 말을 하며 그를 대신하여 서명하고,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죄를 날라서 아사셀에게 가져가는 염소는 아사셀을 대표하고, 그런 의미에서 아사셀로 간주될 수 있다. (244.6)
 나는 앞에서 재림교회가 아사셀의 신원을 사탄으로 보는 것 때문에 신랄한 비판을 받아왔다고 언급하였다. 그에 대응하여 우리는 아사셀 염소가 잡혀서 희생으로 드려지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게인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희생 제물이 아니다.”10)라고 말한다. 산 염소는 “제물이 아니라 죄를 운반하는 수송 수단으로 여겨진다. 공동체가 아사셀에게 보내는 것은 염소보다는 그것이 지고 가는 죄이다.”11) 아사셀이 마귀적인 존재라고 하는 결론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마귀 숭배에 대하여 경고하는 레위기 17:7에도 시사되어 있다(이절의 <개역개정판>에 “숫염소”로 번역한 히브리어 사이르(sáiyr)를 〈제임스왕역〉에서는 “마귀들”(devils)라고 하였다-역자 주). (245.1)
 과거 1950년대에 복음주의 저술가인 월터 마틴(Walter R. Martin)은 재림교회의 교리들을 철저하게 검토하였다. 그는 우리의 조사심판 교리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아사셀 염소를 사탄으로 여기는 우리의 이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아사셀 염소에 대하여 독특한 개념을 가지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명료한 설명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주님의 속죄에 관한 한 어떠한 비평가도 정직하게 말해서 더 이상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수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 재림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죄를 위한 유일한 속죄제이시며, 사탄은 죄를 속하는 데 있어서 어느 모로든지 전혀 관여하는 것이 없음을 명백하게 진술해 놓았다.”12) (245.2)
 그러나 아사셀 염소가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개념은 어떠한가? 레위기는 분명히 말하기를 아사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레 16:10;강조는 첨가된 것임)라고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속죄라는 단어는 죄 많은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가 속죄의 과정에 한몫을 한다고 하면 심각한 이단으로 보인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속죄”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킵푸르의 의미가 “제거하다”이며, 아사셀 염소가 실제로 성소로부터 죄를 일소(一捕 ) 또는 제거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단 그 염소는 백성의 죄를 진영으로부터 멀리 떠나보내는 운반 수단이라는 의미에서만 그렇다. 이것은 분명히 죄를 일소 또는 제거하는 측면이 있으나, 죄의 값을 치르거나 죄인을 대체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게인은 “[킵푸르]를 ‘속죄하다’(atone)로 번역하는 관행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속죄’와 대체(substitution)를 연계시키는 행습의 막강한 영향력과 합쳐져서,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산 염소 의식의 의미를 혼동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킵푸르]는 죄의 제거를 가리키며, ‘속죄’의 한 가지 종류에 불과한 ‘대체’의 의미를 명시적으로 나타내지는 않는 것을 깨닫는다면, 아사셀 염소에 의한 정결 의식의 의미를 꽤 잘 이해할 수 있다.”13)라고 지적한다. (246.1)
 그러면 이제 나의 결론은, 아사셀 염소가 사탄 자신을 가리킨다고 하든지(우리의 전통적인 견해), 또는 “사탄을 위한”다고(더 근래의 이해) 하는 재림교회의 견해가, 우리의 비평가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신성모독의 절정”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표상적 ·원형적으로 공히, 속죄일에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죄를 제거하는 과정의 중요한 일부분을 나타낸다. (246.2)
 속죄일, 그리고 악의 문제
 로이 게인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레위기에 관하여 썼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그 주제에 관하여 세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14) 그 중 하나의 제목이 <제의와 성품: 정결 제사, 속죄일, 그리고 신정론>(Cult and Character:Purification Offerings, Day of Atonement, and Theodicy)이다. 나는 본 장과 이전 두 장에서 그 책을 여러 번 언급하기도 하고 인용하기도 하였다. 내가 여기서 그 제목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그 마지막 단어인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는 말에 주의를 모으기 위해서이다. (247.1)
 일반인들에게는 신정론이라는 단어가 그리 친숙하지 않을 것 같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하나님이 악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 정당함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자연 신학의 한 체계”15)라고 그 말을 정의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가난한 사람은 다 먹여주고, 병든 사람은 다 고쳐주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제공하고, 악한 사람은 모두 없애고, 인류의 궁극적인 자선가로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살도록 도와줄 것 같다. 그렇게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시다면, 우리가 보기에 그토록 논리적인 악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왜 이행하지 않으시는 걸까? 왜 그분은 악이 계속 존재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일까? 신정론은 이렇게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신학적인 노력이다. (247.2)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그분이 참으로 사랑 많은 분이라면 우리와 우리 친구들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다 사랑하셔야 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분은 세상의 악한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셔야한다. 나아가서,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을 해소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기 원할 것이다. 참으로 사랑이 많은 하나님의 목표는 세상에서 악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일 터이다. 악이 존재하는 한 고통도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악이 바로 우리,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악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악하기 때문이다. 소위 나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만 악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악의 성향에 감염되어 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성향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이 나타내지만, 우리 모두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악을 제거하려면, 하나님은 인간 존재 안에서 악을 제거하셔야만 한다. (247.3)
 그리고 인간에게서 악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레위기의 전부이다. 나는 앞서,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죄 많은 백성으로부터 악을 제거하는 방법은 두 단계의 과정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첫째 단계는 매일의 희생인데, 거기서 죄는 죄인으로부터 제거되어 희생 제물에게 놓이고, 제물은 그 죄 때문에 죽어야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죄인의 죄를 떠맡으시고 그 죄인이 맡아야 했던 사형이라는 값을 치르셔서 죄인이 용서받을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그리고 죽음의 값을 치렀을 때 죄는 성소로 옮겨졌고, 이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계속 그 책임을 맡고 계심을 예증하였다. 이 시점에는 아직 하나님이 악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지 못한 것이었다. 그분이 하신 일은 그것을 스스로 떠맡으신 것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그래서 그분은 그 책임을 맡을 필요도 없었다. (248.1)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을 제거하시는 과정의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해마다 속죄일이면, 하나님이 열두 달 동안 그 책임을 떠맡고 계셨던 모든 죄들이 성소로부터 제거되어 산 염소에게 놓이고, 그 염소는 그것들을 광야로, 사탄을 나타내는 아사셀에게 가지고 갔다. 이 과정에 의하여 성소에서 백성의 죄가 “씻겨났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으로부터 죄를 제거하여 죄의 창시자에게 보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레위기 또한 말하기를 그 백성들도 그 날에 이 죄들로부터 완전히 정결하게 되었다고한다(30절 참조). (248.2)
 한 페이지쯤 앞에서 나는 신정론에 대한 웹스터 사전의 정의, 즉 “하나님이 악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 정당함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자연 신학의 한 체계”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하지만 궁극적인 신정론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악의 존재를 허용하신 것을 옹호하는 것일 수는 없다. 궁극적인 신정론은 악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 그래서 그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성경에 따르면 악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해결은 마지막 때 그분의 영원한 의의 나라가 세워짐으로써 실현된다는 사실을 내가 굳이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속죄일은 그 날에 악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날이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1년의 끝에 돌아온다는 점에서 강력한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속죄일은 또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대쟁투 주제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참으로 신정론-대쟁투 주제-은 이스라엘 성소 의식의 핵심이다. (248.3)
 4장에서 나는 조사심판 교리는 대쟁투 주제의 관점에서 볼 때에만 의미가 통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조사심판 또한 신정론과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조사심판이 레위기의 성소 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전혀 놀랄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다니엘로 돌아가야 한다. 본 장에서 우리는 히브리 성소 의식들에 나타난 신정론을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다니엘에 그려진 신정론을 검토할 것이다 그 다음에 신정론에 대한 그 두 예증을 종합할 것이다. (249.1)
 <미주〉-------------------------------------

 1)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s.v.“Sanctuary”

 2) Ibid.

 3)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s.v. “Edson, Hiram”; 강조는 원문에 있는 것임.

 4) Gane, Cult and Character, 254.

 5) Ratzlaff, “What Is the Meaning of the Cross?” 16.

 6) Gane, Cult and Character, 250, 251.

 7) Gane, Altar Call, 250.

 8) Gane, Cult and Character, 247.

 9) Gane, Altar Call, 250;강조는 원문에 있는 것임.

 10) Gane, Cult and Character, 251.

 11) Y. Kaufman, The Religion of Israel, tran. and abridge. M. Greenberg(Chicago:University of Chicago Press, I960), 114, Gane, Cult and Character, 247, 주 11에서 재인용

 12) Martin, The Truth About Seventh-day Adventism, 188.

 13) Gane, Cult and Character, 265.

 14) 이 책의 끝 부분에 있는 참고문헌 목록을 보라.

 15) Webster’s New World Dictionary of the American Language, 2nd college ed.,s.v.“Theodicy.” (2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