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구약의 난해 문제 질문 26 엔돌의 무당이 참으로 사무엘을 불러왔는가?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삼상 28:13, 14). (141.1)
 사무엘상 28장에 나오는 기사는 사무엘이 죽은 후에 나타나 말했고, 따라서 모든 인간도 사후에 의식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영혼불멸설을 지지하는 자들에 의해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사무엘상 28장은 주로 두 가지 견해로 해석되어 왔다. (141.2)
 1. 선지자 사무엘이 진짜 나타남
 이 견해는 외경 시락(Sirach)의 책(46:16~20, BC 180년경)에 처음으로 나온다. 어떤 이들은 사무엘이 육체가 없는 영혼으로 나타났다고 보지만,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AD 354~430년) 같은 사람들은 부활 후 예수님의 모습이나 예수님이 변형하실 때 나타난 모세처럼 실제 육신을 가진 소생된 사람으로 나왔다고 생각했다.1 그러므로 사무엘이 진짜 나타났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가 육신이 없는 영혼에 불과했다거나 모든 사람은 사후에 육신이 없는 영혼으로 남게 된다고 믿을 필요가 없다. (141.3)
 그러나 사무엘이 진짜 나타났다는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된다. 무당의 행위 같은 것으로 과연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의 안식을 방해할 수 있는가? 특히 하나님께서 이미 공인된 방법으로 사울을 지도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도(삼상 28:6) 그분께서 성경이 정죄하는 수단(신 18:10; 레 20:6)인 무당을 통해 예언적 기별을 보내시겠는가? 어떤 이들은 이 무당을 “영적인 지도와 통찰을 제공하는”2 여성 봉사의 좋은 본보기로 생각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오늘날 무당을 통해 신성한 지혜를 구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참조 딤전 4:1, 2; 살후 2:8~11). (141.4)
 2. 귀신이 사무엘로 변장함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AD 155~220년) 같은 교부들은 귀신 혹은 사단이 사울을 속이기 위해 변신하여 나타났다고 가르쳤다. 이 견해가 본문의 문맥에 가장 잘 맞는다. (142.1)
 성경에 나타난 것과 같이, 사울은 귀신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삼상 16:14~16, 23:18:10:19:9). 사무엘은 “사술의 죄” 곧 마술(히브리어 케셈, 삼상 15:23)에 대해 사울에게 경고했으나, 그는 무당에게 “신접한 술법”을 하라(히브리어 카삼, 삼상 28:8)고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카삼이라는 단어는 이방의 복술자와 연관하여 사용된다(민 27:7; 수 13:22; 삼상 6:2). (142.2)
 에돌에서 있었던 이교적 행습들
 엔돌은 이스라엘의 거주지가 아니라 가나안인들의 거주지였던 것 같으며(수 17:11~13), 근자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가나안 종교는 엔돌의 무당이 사울에게 행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의식(儀式)을 사용한 조상숭배와 결부되었음이 드러났다. 한 우가릿어 토판은 최근에 죽은 왕을 포함한 죽은 조상들을 주술로 불러내 당시 살아있는 왕을 축복하도록 하였다.3 이 조상들 곧 “우가릿의 신격화된 죽은 왕들”4이 저승에서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믿었고. 따라서 그들은 엘로힘이라 불렸는데, 그것은 사울이 만난 무당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말한 “신”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것과 꼭 같은 말이다(삼상 28:13). (142.3)
 그런데 많은 주석자들은 무당이 히브리어로 엘로힘을 복수 용법(상응하는 분사도 복수임; “그들이 올라온다.”)으로 사용했음을 간과했다. 이런 복수 구문은 다신론자들이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참조 삼상 4:8; 17:43). 그리고 다양한 신들을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보여 준다. 사울은 무당이 말한 대로 복수를 언급하지 않고, 사무엘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그래서 무당도 사울을 따라 단수를 사용한다(“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단수 분사를 사용함[28:14]). 그녀는 사울이 그녀의 동료 복술자들을 제거했기 때문에(28:3) 두려워하며 그에게 무슨 말을 듣기 원하는지 묻는다. 무당이 불러 올린 망령은 여호와의 이름을 일곱 번이나 사용한다. 하지만 “주여, 주여”라고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신론자들은 혼합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참조 출 32:4, 5). (143.1)
 그 무당은 사울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많은 주석자들에게 친절하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사무엘서의 기자는 그녀가 식사를 위해 짐승을 “잡은” 것(히브리어 타바흐; 참조 삼상 25:11)이 아니라. “제사를 위해 잡았다.”(히브리어 자바흐; 참조 28:24)라고 묘사한다.5 말하자면, 그녀는 “제의적 도살”을 거행한 것이다.6 과거 이스라엘의 배도 사건에도 죽은 자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그들이 “먹고 그들의 신들(엘로힘)에게 절하므로”(민 25:103; 시 106:28) 비참한 결과가 이르러 왔다 그러므로 그녀의 외식적인 친절이 사실상 사울로 이교적 숭배에 빠지도록 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사울이 처음엔 먹길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28:23). (143.2)
 사울에 대한 징벌이 덧붙여짐
 사무엘로 나타난 이 존재가 이미 처리된 옛 죄들에 대한 징벌을 부가시킨다. 권한이 없는데도 사울이 드린 제사(삼상 13:10~14), 전리품을 취한 것(15:13~35) 등의 죄는 그에게서 왕권을 박탈함으로써 이미 징벌을 선고 받았지만, 지금 이 “사무엘”은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사울을 블레셋의 손에 붙일 것이며, 내일 그와 그의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 것(28:19)이라는 징벌을 덧붙였다. 새로운 죄는 언급되지도 않는데, 그렇다면 왜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징벌만 더하시는가? 그 기별은 사울에게 죄책감과 두려움의 짐을 지우고 일말의 희망과 회개의 가능성을 말살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날 사울은 자살했다(31:4, 5). 그 기별이 하나님의 품성과 어울리는가? 하나님의 질책이 아무리 혹독하다 해도 거기에는 회개를 통한 은혜와 희망의 복음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144.1)
 이 “사무엘”이 진짜 사무엘의 말을 인용했을 수도 있으나, 사울의 “사술의 죄”는 전혀 꾸짖지 않았다(삼상 15:23;참조 28:8). 그런데 결국 그것은 사울에게 치명적인 죄로 밝혀졌다(대상 10:13, 14). (144.2)
“하나님께서는 그 계책에 대응하기 위해 마귀가 사무엘의 모양으로 변장하여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지 않으려는 자들이 강력한 기만에 넘어가 거짓말을 믿도록 허용하셨다. ∙∙∙ 하나님의 허용으로 마귀가 사무엘로 변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이 경우에도 그렇게 하도록 허용을 받아 사울이 마귀에게 물음으로써 절망에 내몰리도록 한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위로를 얻기 위해 바른 방법으로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s Bible Commentary on 1 Samuel 28:7~14).
(144.3)
 정확하지 않은 예언
 무당의 예언에는 부정확한 점이 포함돼 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에게 잡힌 것이 아니라 자살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신이 그들의 손에 넘어갔으나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에 의해 수습되었다(삼상 31:12, 13). 또한 다음날 사울의 모든 아들이 죽진 않았다. 몇 장 더 넘어가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나타난다(삼하 2:8~10). 이와 반대로, 진짜 사무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했다(삼상 3:19~21). (145.1)
 게다가, 이 “사무엘”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삼상 28:19). 그렇다면 어디에서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인가? 과연 사후의 삶에 대한 어떤 견해가 불경한 왕과 경건한 선지자를 한 곳에 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늘과 지옥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도 아니고, 무덤과 하늘 및 지옥에 대한 신약의 일관된 가르침도 아니다. 무당은 모든 영혼이 가는 스올 곧 저승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성경적 세계관이 아니다. (145.2)
 사울과 무당이 본 자는 진짜 사무엘이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