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확실히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다반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 모든 사람이 그 고통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레위기 26장으로 돌아가 보면 하나님께서 출애굽 직후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의 사실을 약속하셨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그의 계명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번영과 건강과 평화를 계속하게 하시겠다 하셨다. 즉 하나님은 악한 세 기사들의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리라고 하셨다. 그분의 약속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78.6)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時候)에 주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2~ 12). (178.7)
 그러나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믿지 않는 사람의 생활 방식대로 산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모세는 말했다. (178.8)
감람산의 설교와 일곱 인 사이의 평행

 우리가 제2권인 요한계시록 연구를 시작할 때 요한계시록을 다루기 전에 먼저 감람산의 설교를 분석하였다. 감람산의 설교는 다니엘와 요한계시록 사이의 긴밀한 고리가 되며, 이 두 책에 관하여 많은 빛을 준다.

 그 설교의 윤곽과 일곱 인의 윤곽을 평행으로 놓을 때 그 설교와 요한계시록의 관계는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감람산의 설교
일곱 인
(마태복음 24, 25장)
(요한계시록 4:1~8:1)
일반적인 예언
계시의 네 기사
이 복음이 전파되리라 24:14
첫째 인, 백마의 기사가 기독교 를 전함 6:1, 2
전쟁과 전쟁의 소문:기근과 지진 아직 끝은 아님 24:6~8
둘째, 세째, 네째 인,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의 기사들이 전쟁과 기근과 염병을 쏟아 놓음 6:3~8.
환난의 기간
환난의 기간
큰 환난이 있으리라 24:21
다섯째 인, 제단 아래 영혼들이 핍박에 대하여 항의함 6:9~11
징조와 끝
징조와 끝
환난 후에 즉시 해, 달, 별의 징조가 나타남 24:29
인자가 돌아옴 24:30
천사들이 택하신 자들을 모음 24:31

여섯째 인, 큰 지진 해, 달, 별의 징조 6:12, 13
하늘이 떠나가고, 어린 양이 도착 함 6:14~17.
일곱째 인, 하늘이 반시 동안 고 요함(하늘 존재들이 택하신 자들을 모으려고, 그리스도를 따라 세상으로 옴) 8:1
(179.1)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로서는 악한 기사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근거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질병은 역병으로 악화되고 기근은 흉년으로 더 심해지며 패배는 전면적인 참화로 발전하게 될 것이었다(레 26:14~33). (180.1)
 백마를 탄 기사
 우리는 다시 백마를 탄 기사에게로 돌아가 보자. 이 불가사의한 기사는 누구인가? “흰” 색깔의 의의는 무엇인가? (180.2)
 조지 엘돈(라드(George Eldon Ladd)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80.3)
요한계시록에서는 흰색이 항상 그리스도를, 또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무엇을 또는 영적 승리를 상징하고 있다.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머리와 털은 희기가 흰 양털 같으며(계 1:14) 진실한 신앙인들은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받으며(계 2:17), 또 그들은 흰 옷을 입는다(계 3:4, 5, 18).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으며(계 4:4), 순교자들(계 6:11)과 셀수 없는 큰 무리들(계 7:9, 13)이 모두 흰옷을 입는다. 인자가 흰 구름 위에 앉아 계시며(계 14:14), 다시 올 때도 그는 흰 말을 타고 있으며 그를 수행하는 하늘의 군대도 흰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있다(계 19:11, 14).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은 흰 보좌에 앉아 계신다(계 20:11).2
(180.4)
 이와같이 흰색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의 색깔이다. (180.5)
 그렇다면, 백마를 타신 첫번째 기사는 예수님이신가? 라드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백마를 타신 모습으로 나타나고 계시다. 그분은 명백하게 왕의 왕으로서, 주의 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소개되고 있다(계 19:11~ 16).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와 있다. 요한계시록 14장에서는 예수님이 무기를 갖추어 전쟁을 하고 있다. 첫번째 인의 백마 탄 기사와 대단히 흡사하다. (180.6)
 성경은 이 점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성경을 다시 읽어보면 첫번째 인의 기사(騎士)가 예수님이신 것같지 않다. 예수님은 인을 떼시는 어린 양이시다. 그분은 인의 기사로 상징화되는 것같지 않다. 어떻든 다른 기사들도 실제의 인물들은 아니다. “죽음”“음부”는 확실히 인격체들이 아니다. (180.7)
 그런데도 요한계시록 19장의 기사와 유사점이 많은 것은 틀림없이 의도적이다. 인을 뗄 때 등장하는 다른 세 기사들이 모두 전쟁, 기근, 죽음같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백마 탄 기사도 예수님이 대표하는 어떤 개념을 나타내고 있음이 틀림없다. 물론 이 개념은 진정한 성서적 종교, 더 정확히 말해서 참된 그리스도교를 말한다. 낮이 밤과 연관되어 있듯이 밸마의 기사는 어떤 점에 있어서 다른 기사들과 연관되어 있다. 내적인 평화와 생명의 양식과 진정한 그리스도교는 전쟁과 기근과 죽음의 반대 개념이다. (180.8)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온 천하에 다니며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기별인 복음을 전파하라 하시었다(마 28:18~20). 그분은 그들과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물론 축어적인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분은 하늘로 가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을 대표하는 성령을 통해 그들과 동행하실 것이었다. (180.9)
 그리스도교는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다시 사마리아로, 또 세상 끝까지 이기고 또 이기며 확장되어 나갔다(행 1:8).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전에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복음을 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골 1:6, 23). 원수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행 17:6)고 질겁했다. (180.10)
 유감스럽게도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뒤집어 놓았다. 이교 로마는 그리스도의 일부 교리와 관습과 그 이름을 채택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교 세계의 권위주의와 정치적인 술책과 이교의 여러 가지 철학과 심지어는 로마라는 이교적 이름까지 채택했다. (181.1)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로마는 이교 로마처럼 사람들을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다. 그렇다. 그리스도교 로마는 사람들을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 (181.2)
 이교 로마는 도적질한 죄수들을 고문했다. 그리스도교 로마는 자신의 방식대로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했다. (181.3)
 도대체 교회가 세상을 정복했는가 세상이 교회를 정복했는가? (181.4)
 하나님은 복음 전파의 길을 미리 준비키 위하여 정치적인 일에 의도적으로 개입하시어 로마의 평화를 이룩하셨으니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 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 있어서 로마 세계는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가 그 후보다도 여행과 교통에 있어서 더 용이하고 안전했다. “로마 제국의 산하에 있는 국가들은 기원 후 1, 2세기의 기간보다도 전쟁의 공포에서 더 자유로왔던 때를 그 전에도 후에도 경험해보지 못했다.”3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