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환경에서 복음은 정치적인 장애를 받음이 없이 신속히 전파되었다. 제국 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181.6)
 만약 교회만이라도 순수성을 유지했던들 제국 전체가 그 감화를 받았을 것이다. 미움 대신에 사랑이, 탐욕 대신에 관용이, 배반 대신에 신뢰가 완전히 지배했다고 상상해보라. “하나님은 편벽됨이 없으시다”(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시지 아니하신다. 행 10:34). 하나님은 레위기 26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로마 제국과 로마 교회를 대우하셨을 것이다. 번영과 건강과 평화가 계속되고 또 증진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악한 세 기사들을 저지하셨을 것이다. (181.7)
 우리는 앞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때 만약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대로 로마인들을 상대하고 유대인 상호 간의 관계를 유지했던들 예루살렘이 결코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주목했다. (181.8)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설교하실 때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아셨다. 일곱 인을 떼실 때에도 서로마 제국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사랑이 전반적으로 배척될 때 통일과 평화가 파괴되었다. 야만인종들이 제국을 분할하고 조각 땅들을 놓고 또 싸웠다. 그들은 패망한 로마인들로부터 부패한 그리스도교의 개념들을 채택하고 싸움을 계속했다.. (181.9)
 중세 시대에 이른바 그리스도교 국가라고 하는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 전쟁”(1337~1453)을 치렀다. 역시 그리스도교 지역이라고 하는 중앙 유럽 또한 수천 개의 서로 질시하는 군소 군가로 분열되었다. 1340년 대는 임파선종의 역병인 흑사병이 창궐하여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상자들을 내었는데 이 역병은 그 후로도 여러 세기에 걸쳐 반복해서 창궐했다.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 이 악한 세 기사는 참으로 많은 일 거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181.10)
 그러나,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실은 그리스도교 자체가 전쟁과 기근과 황폐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30 년 전쟁”을 통해 유럽을 황폐시킨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했다(1260), 교회는 위그노(Huguenots) 교도들을 프랑스에서 내쫓아서 국가의 무한한 재원을 상실하게 했다. 주교(主敎)와 사제(司祭)들의 정치적·경제적 요구가 끔찍서러운 프랑스 혁명의 공포를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81.11)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그가 믿는 식대로 그리스도교를 믿도록 강요하고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섰다. 개신교 지도자들 중에도 자신들의 신앙을 강요하고자 같은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있었다.
(182.1)
 세계 제1차대전은 주로 자칭 그리스도교 국가들 끼리의 싸움이었다. 루터교의 독일, 성공회의 영국, 개신교의 미국, 정교회의 러시아, 가톨릭이 우세한 프랑스 등이 그들이 었다. 이 싸움으로 수백만이 죽었다. 베르당(Verdun)의 단일 전투에서만 수십만 명이 죽거나 부상했다. 전쟁의 끝에는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소련에서 기근과 역병으로 죽 었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한다고 말하는 백마의 기사는 전반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있던 반면, 악한 세 기사는 실로 바쁘게 지냈다. (182.2)
 실로 이 명목상의 그리스도교 집단들에 의해 현저히 자행된 이 땅의 끔찍스러운 재난들을 보면서 일부 사려 깊은 주석가들은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를 그리스도 교회와 일치시키게 되었다. 이 주석가들은 매력적으로 순결했던 초대 교회 시대를 백마의 기사에 일치시켰다. 중세의 도덕적인 쇠퇴를 붉은 말과 검은 말과 창백한 말의 기사들에 일치시켰다. 이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을 수 있다.*

* 네 기사를 네 개의 첫 상징적인 교회 즉 에베소·서머나·버가모·두아다라 교회에 일치시키려는 기도도 있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두번째의 기사처럼 칼을 사용해 사람을 죽이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이 극심한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일곱 인을 일곱 교회에 비교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오히려 감람산 설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일련의 사건과 비교하는 편이 더 낫다. 앞에서 소개한 도표를 참고하라.
(182.3)
 그것은 그렇다치고 백마의 기사는 아직도 주행(走行) 중이다. 사실 그는 이전의 그 어느 때 보다도 세계의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심령들을 정복하면서 마태복음 24장 14절의 분부를 성취시키고 있다. (182.4)
 그의 정복 사업 중 최대의 날은 미래에 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여러분은 여러분의 성경에서 그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 여러분의 집을 향해 오고 계시는 그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83.1)
 만약 그분이 오시는 모습이 보이거든 그분을 안으로 모시어 들이라, 악한 세 기사들은 대규모의 재난을 통해 자신들의 과업을 역사적일 만큼 성취해 왔지만 우리가 감각을 통해 날마다 그들을 경험하고 있다. 끊임없는 분쟁, 경제의 후퇴, 때 아닌 질병 등 가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교 즉 진정한 성서적 종교는 우리의 가정을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183.2)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가정의 불화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잠 15:1) 한다. 예수님이 우리 집에 계신다면 그분이 그랬으리라고 생각되는 그런 온유한 음성으로 친절히 말한다면 긴장을 해소하고 사랑을 회복하는 경이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183.3)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가정의 경제적 위기를 물리치는 데 힘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강조하시기를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음식과 의복과 피난처가 필요함을 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에 관해 조언해 주셨다. 하나님을 첫째로 하라!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먹을 것, 입을 것, 피할 곳)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다. (183.4)
 말라기 선지자는 구체적이다.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까지 하였다. 순수입의 10분의 1인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책임지시고 우주 통제소에 앉아 계신다. 여러분들은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그분이 당신을 부자로 만들지 않으심은 당신의 연약함을 고려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코 당신이 저녁거리가 없이 살도록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십일조를 풍성히 내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시험의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하나님은 경제적인 약속들도 지키고 계시다. (183.5)
 진정한 그리스도교, 진정한 성서적 종교는 여러분의 가족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근년에 이루어진 여러 조사 보고서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활의 습관을 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건강이 월등히 좋다는 사실들을 밝혀 주고 있다. 예컨데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일반인들보다 질병에 걸리는 율이 눈에 띄게 적고 수명도 여러 해가 더 길다는 것이다.4 (183.6)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다. 그분이 우리들의 건강과 우리들의 재정적인 문제와 우리 가정에 나타난 사랑의 질(質)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수천 가지의 그 방법으로 우리를 돕고 계신다. (183.7)
 이 세상에 수많은 고통을 안겨 온 악한 세 기사(騎士)는 우리의 가족들을 위협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기별의 하나는 백마의 기사, 곧 진정한 그리스도교가 모든 사정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