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5 장 바울과 율법 제 4 부 율법과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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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에 대한 바울의 부정적인 언급들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그러한 언급들이 율법을, 특히 구원의 한 방편이었던 할례와 같은 것을 높이고 있었던 거짓 교사들로 말미암아 가해진 손상을 본래대로 다시 회복하기 위한 사도의 노력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것을 주목하였다. 율법에 대한 바울의 비평에 예리한 초점을 맞추므로, 우리는 이제 이방인들이 왜 할례와 같은 율법적인 관습을 받아들이려고 시도했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42.1)
 바울의 편지들은 대부분이 이방인 회심자들로 구성된 청중을 위해 기록되었으며, 그들의 대부분은 이 전에 “경건한 사람들”이었다(살전 1:9; 고전 12:2; 갈 4:8; 롬 11:13; 골 1:21; 엡 2:11).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었던 중요한 문제는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통해 언약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않고도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완전한 시민으로 즐기는 권리였다. (142.2)
 유대인의 문제
 이것은 하나의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비즈(W. D. Davies)는 이방 세계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계는 1세기에 유대교의 가장 첨예한 신학적인 문제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74)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문제는 이방인들이 앞으로 올 세상에서 그들이 함께 교제하기 위해서 준수해야 할 계명들이 무엇들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142.3)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바울 시대에는 없었다. 어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몇 개의 제한된 계명들(노아의 율법)만을 준수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샴마이 (Shammai)학파와 같은 다른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포함하여 모든 율법들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말로, 그들은 앞으로 올 세상의 축복을 나누기 위해서는 언약의 공동체에 완전히 성숙한 일원이 되어야만 했다.75) (142.4)
 로이드 가스톤(Lloyd Gaston)은 지각력 있게 주목하기를 “이러한 불명확성 때문에 율법주의, 곧 하나님의 은총을 얻고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 받기 위해 어떤 행위를 행하는 것이 이방인들에게 문제를 일으켰으나 유대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76) 구원은 언약의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경건한 사람들이 언약 아래 있지 않은 이 후, 그들은 그러한 구원의 보증을 얻기 위해 그들 자신의 의를 세워야만 했다. (142.5)
 마르크스 바르트(Marcus Barth)는 “율법의 행위”라는 구절이 유대인 본문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일부로서 구원을 확보하기 위해 선별된 유대인의 관습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77) 율법주의적인 이방인들의 태도에 대한 이해는 율법에 대한 바울의 신랄한 비평에 대한 이해에 중요하다. (142.6)
 그리스도인의 문제
 이방인들이 언약 안에서 구원을 받느냐 아니면 밖에서도 구원을 받느냐에 대한 유대인들의 문제는 곧 그리스도인의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회심과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명의 위임 이 전에, 그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포함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분명히 믿었다. 이 후자의 사실은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갈 5:11)이란 구절, 곧 그가 한때 할례를 구원에 기초하여 설교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이 구절에 의해서 암시되어 있다. (142.7)
 자신의 회심 후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위탁이 있은 후, 바울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통해서 언약의 공동체의 일부분이 되지 않고도 구원의 축복을 나눈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러한 확신을 옹호하기 위해서, 앞에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4장갈라디아서 3장에서 아브라함도 그가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된 것을 살펴보았다. (143.1)
 비 할례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바울은 이중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한편으로, 그는 유대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 대한 아브라함에게 한 자신의 언약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이 알지 못함” 롬 10:9).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언약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므로 자신들의 구원을 확보하려고 할례와 다른 관습들을 받아들이려고 시도했던 이방인들의 잘못된 노력들을 다루어야만 했다(갈 5:2-4). (143.2)
 선택의 문서로서의 율법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오는 이중적인 도전을 좌절시키기 위해, 바울은 율법을 선택의 문서(document of election)로 혹평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다수의 학자들은 최근에 언약의 개념이—구약에 중심을 둠—“율법”(torah—nomos)이라는 용어로 더 많이 표현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78) 하나님 앞에서 있는 사람의 상태는 특별한 계명을 순종함으로서가 아니라 선택의 문서인 율법에 대한 사람의 자세에 의해서 결정되어졌다. (143.3)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한 계시로 온 율법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그분의 언약에서 나타날 것이다. 분명하게, 이 견해는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하나의 문제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약에 의해서 마련된 구원의 보증으로부터 제외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자연적으로 이방인들을 “율법 아래 있고자”(갈 4:21)하는 갈망, 곧 할례를 받으므로 완전한 자격을 갖춘 언약의 사람들이 되도록 인도했다(갈 5:2). (143.4)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이방인들의 욕구를 누르기 위해, 바울은 율법(모세의 오경), 특별히 두 자녀, 곧 이스마엘과 이삭의 어머니가 두 언약을 나타내는 것으로 논증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호소하고 있다. 곧 그 첫 째는 행위로 말미암는 의이며, 둘째는 믿음에 기초한 의(갈 4:22-31)로서-첫 번째의 제사는 “노예 신분”이었고 두 번째는 “자유”의 결과를 가져 왔다(갈 4:24). (143.5)
 왜 바울은 결국 같은 하나님에 의해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그 시내산 언약을 거칠게 공격하고 있는가? 곁들여서, 행위의 원칙들 외에(출 20:23), 시내산 언약이 성소봉사(출 25-30)를 통해 은혜와 용서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방인으로서 이방인에 대한 구원의 합법성을 세우기 위한 바울의 관심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143.6)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바울은 율법(언약)을 배타적인 선택의 문서로 이해하는 것을 공격한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시내산 언약의 성취로 받아들인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는 분명하게 그가 “무 할례자에게 복음이 위탁된” 것과 같이, “베드로는 할례자에게도 복음을 전하도록 위탁받았다”는 것을 인정했다(갈 2:7). (143.7)
 바울은 두 복음 사이에 기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할례가 언약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 이 후, 할례를 받은 자에게 복음은 그분의 보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시내산 언약을 효력이 있게 만드시므로 그 언약을 비준하셨다는 것을 강조했다(마 26:28). 이 일은, 한편으로 그들의 신분을 언약의 백성으로 유지하면서, 유대인들을 구원받은 유대인이 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144.1)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할례의 가치를 결코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라. 그와는 반대로, 그는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 할례가 되었느니라”(롬 2:25)고 확증한다. 로마서 9장에서 11장에서 다시 바울은 유대인들을 그들의 생활 방식이 “유대인적”이었기 때문에 책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표가 되시기 때문에 동등하게 구원에 접근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책망했다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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