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5 장 예수와 포도 음료 5. 성만찬 포도 음료
 본 장에서 언급한 고대와 현대 유대인 증인들, 즉 ‘오직 발효된 포도주만 이 예수 당시의 유월절 식사 때에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충분하게 입증하였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 중에 자신들의 집에서 “발효된 것”을 없애라는 모세법에 관한 두 가지 다른 랍비적 해석에 영향을 받았다. (159.3)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대인 관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동이 무엇이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부패되지 않은 생명을 주는 보혈을 나타내는 데 적합할 수 없는 발효된 포도주로 유월절을 기념하시므로 발효(출 13:6, 7)에 관한 모세법을 무시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159.4)
 (3) 포도나무에서 난 발효되지 않은 것을 사용하신 예수
 유월절 포도 음료가 발효된 것이었다는 주장을 논함에 있어서 중요한 측면은 전 기독교사를 통하여 주의 만찬에서 발효된 포도주만 사용되었다는 추정이다. 이 측면을 본 장 후반부에서 다룰 것이고, 이 항목에서는 구세주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발효되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사용하셨다는 주장을 지지하여 주는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159.5)
 모세법에 순종하심
 예수께서는 유월절 축제 기간 동안에 모든 발효 된 것들을 사용치 말라고 명한 모세법을 이해하고 준수하셨기 때문에 마지막 만찬 때에 포도즙을 사용하셨다. 모세법은 누룩, 효모, 혹은 발효를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뜻하는 세오르(seor)를 집에서 사용하거나 놔두지 말라고 하였다(출 12:15).74 (160.1)
 쉽게 세오르—발효—되는 것은 다 금지되었다. 이것은 하메츠(hametz)라고 불리우고, “유교병(有资餅)”으로 번역되었다(출 12:15; 13:7). 그렇지만, “떡”이라는 단어가 원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좀더 정확한 번역은 “발효된 것들”이다. 유대인들은 칠일 동안 “무교병”이라고 일반적으로 번역되는 마초트(matzoth)를 먹었다(출 13:6~7). 떡이란 단어가 원문에는 하메츠에서 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욱 더 정확한 번역은 “발효되지 않은 것들”이다. (160.2)
 로버트 영도 이 번역이 옳음을 증명하여 주고 있다. 그는 출애굽기 12:15, 19을 ∙∙∙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어떤 발효된 것인지 먹는 자들은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 너희는 유교물(有1物:발효된 것)을 먹지 말고 너희 거하는 곳에서 너희는 유교물을 먹지 말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13:6, 7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번역되어질 수 있다. “칠일 동안 발효되지 않은 것(무교물)을 먹고, 제칠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칠일 동안에는 발효되지 않은 것을 먹고 발효된 것은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라.” (160.3)
 모세법에 의하면 발효된 포도주가 완전히 배제되어야만 한다. 랍비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대 논쟁을 벌였는데, 전기한 바와 같이 어떤 랍비들은 포도 음료와 같은 과실즙은 발효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법을 교묘히 회피하였다.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마 5:17)께서 “발효된 것”에 사용을 금하는 유월절 법을 범하실 이유가 없다. 특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 16:6)고 경고하시면서 발효가 도덕적으로 상징하는 바를 아셨는데도 그렇게 행하실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누룩은 후에 제자들이 이해하였듯이 부패한 성정과 교훈이었다(마 16:12). (160.4)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권고 할 때에도 똑같은 동일한 상징적 의미를 덧붙인다(고전 5:7, 8). (161.1)
 유월절 절기에서 발효된 것들을 제외시킨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 이 반죽에 누룩을 넣을 시간도 없이 애굽에서 급하게 떠난 것만을 단지 상기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반죽이 부풀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때에 애굽에서 떠나기 전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명령한 것이 기록된 출애굽기 12:8, 39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161.2)
 누룩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의 주된 목적은 성경에서 누룩이 죄와 부패를 상징적으로 의미함에 기인한다. “유대인들 간에 누룩은 때때로 죄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었다. 유월절 때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에서 죄를 제거하면서 집에서 모든 누룩을 제거하도록 인도함을 받았다.”75 부패와 불성실함의 상징인 누룩이 유대인의 유월절에 제거되었다면 크리스챤이 행하는 주의 만찬에서 발효된 것을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가당하지 않다. (161.3)
 누룩이 소제물(레 2:11), 속죄제(레 6:17), 축성(祝聖)제물(출 29:2), 나실인 제물(민 6:15), 그리고 진설병(레 24:5-9)에서 배제된 사실은 누룩의 상징적, 도덕적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그러나 부패로부터 보존을 상징하는 소금은 희생 제물에 포함되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레 2:13). 만일 누룩이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보혈의 모형인 희생 제물에 넣어질 수 없다면 발효된 포도주는 그의 속죄하는 보혈을 나타낼 것이 결코 되지 못한다. (161.4)
 예수께서는 “발효되지 않은 것”들에 관한 모세법의 자구와 정신을 완전히 이해하셨다. 이 사실은 그의 가르침에 나타난다(마 16:6, 12). 이 가르침은 그 분이 제자들에게 “축복하시고” 주신 잔에 성경이 금하는 발효된 것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게 한다. 예수께서 여러 모든 희생제사의 원형인 자신의 희생 제물의 영원한 기념물로서 발효된 포도주를 택하심으로 성경의 명령을 무시하셨다고 상상하여 질 수도 없다. (161.5)
 상징의 일관성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마시었다는 것을 믿도록 하는 두번째 이유는 발효된 포도주가 적절하게 나타낼 수 없는 피라는 상징에 내재하는 일관성과 미(美)이다. 누룩은 바리새인들의 부패한 가르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고, 성경에서는 죄와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흘리신, 때묻지 않은 피를 상징하기 위하여 발효된 포도주 잔을 제자들에게 주실 있었겠는가? 그리스도의 구속하고 정결케 하는 피가 성경에서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는 취하게 하는 잔으로 적절히 나타내어질 수 있었겠는가? (162.1)
 그리스도께서 성경이 보지도 말라고(잠 23:31) 경고한 포도주가 담겨 있는 잔에 축도하셨다는 것은 억지 논리일 뿐이다. 취하게 하는 잔은 저주하는 잔이지 “축복의 잔”(고전 10:16)이 아니다. 그것은 “귀신의 잔”이지 “주의 잔”이 아니다(고전 10:21). (162.2)
 이 시기까지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는 염소와 황소의 피로 나타내어졌다(히 9:13~14). 이제부터 새로운 상징은 성만찬의 포도 음료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부정하거나 부패하지 않았다. 그 분의 피는 깨끗했다.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행 13:37). 살아 계셨을 때나 죽으셨을 때에 죄를 사하기 위하여 흘리신 자신의 피(생명)의 순전성을 상징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잔을 드시고 이것은 나의 피라고 선언하시었다(마 26:28). 잔의 내용물이 발효된 포도주가 절대로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발효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적절히 상징할 수 없기 때문이다(벧전 1:18~19). (162.3)
 발효된 포도주는 부패와 사망을 적절하게 상징한다. 왜냐하면, 발효는 포도즙에 함유된 대부분의 영양소들을 죽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발효 되지 않은 포도즙은 그 순전하고 영양가 있는 성질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과 불멸이라는 생명의 축복을 적절하게 상징한다. 그 분의 피는 우리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한다”(히 9:14). 그러나, 발효된 포도주는 도덕적으로 금지된 것에 대한 분별력을 약화시키고 우리들의 천한 격정을 일으켜 양심이 더럽혀지게 한다. 이러한 결과가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의 정결케 하는 능력을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면(放免)과 정결보다는 도덕적 질병과 죄를 나타내는 데 더 적합하다. (162.4)
 상징은 상징물이 나타내는 영적 실체를 깨닫고 경험하도록 하기에 중요하다.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은 인간의 몸에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영양소를 공급하여 주기에 그리스도의 피가 나타내는 구속의 확증을 깨닫고 경험하도록 하여 준다. 죄와 사망의 상징인 발효로 더럽혀지지 않은 것만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을 나타낼 수 있다(벧전 1:19).76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