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5 부 내 제사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죄와의 교제 관계로부터의 해방) 22. 아론의 위임식 (나의 모든 활력은 그리스도의 것임)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 향기름을 가지고 첫번째로 성막을 성별하는 예식을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성령의 이 상징은 그 건물의 모든 부분과 모든 가구에 뿌렸어야만 하였다(출 30:26~29). 성령께서는 “태초에” 창조자 그리스도가 만든 각 식물들과 피조물들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능력을 입히시고자 “수면에 운행하”였다(창 1:2). 생기를 일으키는 그분의 에너지 없이 피조물 인생의 목적은 성취될 수 없었을 것이다. (273.6)
 드물고 값비싼 기름의 기분을 돋우는 향수는 그리스도의 간절한 부탁으로 “만들어진” 성소의 봉헌식에서(출 29:12; 레 8:10, 11; 히 9:20, 21을 보라) 성령의 능력 주시는 사역을 상징하였다. 이 기름 붓는 예식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막의 봉헌식에서와 하나님의 성직자 임명에서 행하시는 역할을 예견한다. (274.1)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출 30:26~29; 40:9~11; 레 8:10, 11) 모세는 신성의 대리인으로서 귀한 향기름의 금 대접을 취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그 안에 일곱번 담가(출 29:12), “일곱번” 건물에 뿌린다(출 29:44; 30:26; 민 7:1). 그는 후에 이 행위를 봉헌식 중에 피를 가지고 반복한다(출 29:12; 레 8:10, 11; 히 9:20, 21). “손가락”은 자주 관찰하였듯이 성령이 정확하게 일하심에 대한 또 다른 상징이다(필자의 책 금 비둘기<Dove of Gold>,’ 155쪽 이하를 보라). (274.2)
 계속되는 식에서 모세는 바깥 방을 통과하여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는 지성소에서 기름을 “증거궤” 위에 일곱 번 발랐다(출 30:26; 40:9~11; 레 8:10, 11). 그 곳으로부터 다시 성소로 와서, 그곳에 있는 각 가구들에 기름을 일곱 번씩 바르고, 뜰로 나와서 물두멍과 그 받침(출 40:11), 번제단(출 30:28; 40:10; 레 8:11; 민 7:10)을 기름으로 바름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결하였다. (274.3)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자주 반복하여 일곱 번 기름을 뿌리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지상의 성소 봉사의 모든 국면에 성령께서 온전하고 완전히 기여하는 것에 집중시킨다. 이 예식들은 지각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아버지와 성령이 하늘 성소를 준비하고 봉헌하는 활동의 완벽성을 보도록 도와주었다. 이 곳은 아들이 제사장과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죽음, 부활, 승천 후에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를 하는 “장소”가 되야만 하였다. 이 사건들의 순 서가 어떠한지를 말하여 주는 몇몇 성경절들을 숙고하여 보자. (274.4)
 각 시대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하신 “장소”에 세워진(렘 17:12; 비교 단 8:11)하늘의 “실재” 성소(히 8:1, 2, 5)의 모든 부분을 완성하시고자 일해 오셨다. 하나님께서 이 잃어버린 혹성의 구원을 위하여 세우신 계획은 영원부터 계획된 것이고, 서서히 그 완성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이 점은 성막이 명료하게 예증하여 준다. 이 계획은 “때가 차매”(갈 4:4) 한 시대의 끝과 다른 시대의 시작의 선을 긋는 중요한 한 단계에 다달았다. 아버지는 “사람 가운데서”(히 5:1; 2:14) 대제사장 임명자를 “부르시”기 위하고, 또 그 임명자가 희생자로서 더 온전한 봉사를 시작하도록 이 순간을 택하셨다. 엘렌 화잇은 이 임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안에서 인성을 취하시고, 그 인성을 취하신 채 가장 높은 하늘까지 가셨다. 우주의 보좌에 앉으시는 이는 ‘인자’이시다. ∙∙∙ 하늘은 인성속에 모셔지고, 인성은 무한한 사랑의 품 안에 안기었다”고 감동적으로 묘사하였다(시대의 소망, 25~26). (274.5)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치신” 하늘 성소에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역할을 시작할 수 있기 전에,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carreer)의 모든 단계에서 그를 도와준 성령께서(히 9:14) 이제 하늘 건물의 봉헌식을 집행하시었다. (274.6)
 아버지께서 이 일에 참가하시어, 두 분께서는 모든 부분이 완전하게 기능하도록 확인하셨다. 이 행위는 다니엘의 “지성소” 기름부음 예고를 실현시켰다. 선지자가 사용한 “지극히 거룩한(코데쉬 쿠오데심<qodesh quodeshim>, most holy)” 이란 표현은 성경에서 오직 장소를 뜻하는 데만, 사용되었다(역자주: 우리말 개역 성경에는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로 번역되었는데, 필자는 이것을 오역으로 보고 ‘지극히 거룩한 곳이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로 봄. 표준 새번역 성경은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번역하였음). 이 임무들이 완결지어졌을 때 하늘 성소는 그 성소에서 봉사할 제사장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이스라엘 제사장 직분 위임시기에로 돌아가도록 하자. (275.1)
 제사장에 기름 부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함께 “이끌고” 오라(레 8:1, 2; 출 28:1~3)하셨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아론과 그 네 아들들이 “잡혀” 온 것으로 혹은 하늘의 포로들이 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 다섯 레위인들은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 이고, 하나님이 이 직무를 위하여 부르신 인간들이다. 바울은 예수께서도 “취하여”졌다고 선언하였으며, 이 선언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이나 성육신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선결 조항이었다고 주장하였다(히 5:1~5, 8; 비교 2:16~18; 비교 사 7:14; 49:1). 히브리인들은 “취하여졌다”라는 단어를 양(volume)으로 이해하였다. 이 단어가 사용된 문맥에서 하나님은 행동(act)을 시작하시는 분으로서 묘사되어 있다(비교 수 7:14; 삼상 14:42, 제비 뽑히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나옴) (275.2)
 사도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실 수 없었다고 올바르게 단언하였다. 그리고 지상 성막의 봉헌식과 아론 자손의 제사장직 위임을 위하여 희생 동물의 피가 필요 되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히 9:23)이 하늘 성소의 낙성식과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위임식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였다. 구주께서 갈바리에 피를 흘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까지 이 두 예식은 행하여질 수 없었다. (275.3)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하나님이 정하신 랑데뷰를 위하여 “회막 문”에 데리고 갔다(출 29:4; 40:12; 레 8:6). 그들은 하나님의 포로로서 온순하게 협력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제사장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선언한 복종의 겟세마네 동산을 가리켰다(마 26:39; 막 14:36; 눅 22:42). (275.4)
 제사장될 사람은 자아를 제거하여야함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뜰에 설치된 간막이 시설에서 옷을 벗었다. 이 “옷을 벗는” 것은 그들의 이전 삶, 즉 더러운 누더기를 버리는 것을 제시한다(비교 골 3:8~14). (275.5)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향긋한 안식처에서 하늘에 대항하여 반역하기로 선택하였고, 그 결과 창조자가 입혀 주신 그 영광을 빼앗기었다. “이 빛의 두루마기는 하늘의 순결한 영적인 옷의 표상이 된다”(실물교훈, 311). (275.6)
 그들이 “성결의 옷을 잃었을 경우에 본성을 비추던 그 빛을 잃었다”(8T, 324). 그리고 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그것은 곧 말라 버려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한 행동은 심오하고 영원한 진리를 나타내 주었다. 인간이 자기의 벌거벗음을 가리려고 하는 시도는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행하는 자기 자신의 행함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항상 쓸모없는 은폐 수단일 뿐이다(마 21:19, 20). “무화과나무 잎은 불순종을 덮기 위하여 사용된 논증을 나타낸다”(1BC, 1084). 우리 인간의 첫번째 부모들이 자신들을 가리려고 행한 이 쓸데없는 시도는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의 가죽으로 그들을 덮으신 사건의 전조이었다(창 3:21). (276.1)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행한 “옷을 벗”는 이 상징적 행위는 우리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복과 왕관을 벗으시고, 하나님으로서의 몇몇 능력과 특권의 독자적인 행사를 “비우실” 것을 예증하여 주었다(빌 2:5~12; 비교 요 13:1~17). 예수께서는 인류와 의사 소통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성 가운데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자 한 인간이 되셨다. 이 스스로 복종함은 갈바리 사건이 보여주는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정신으로 이끈 선언에서 그 극에 달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왕같은 제사장들”“이 마음,”“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자 노력하여야만 한다고 권고한다. (276.2)
 철저히 씻어야 했던 제사장 후보자
 모세는 그런 다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하여 “물로 씻”겼다(출 29:4; 레 8:6). 사용된 히브리 용어는 완전히 목욕하는 것을 뜻한다(출 30:18~20; 40:28, 29). 손과 발을 닦는다는 또 다른 히브리어 단어가 있는데, 칠십인역은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사용하신 용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 물에 잠기는 이 예식은 몇몇 유대 소종파 내에서 행하게 된 침례로 발전되었으며,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의식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인으로서 스스로 목욕을 자주 하였으나, 이 정결식은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야훼의 대표자인 모세가 그들을 위하여 행하여야만 하였다(출 4:16; 7:1; 18:19). 성경은 이 정결을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고 칭한다(딛 3:5). 제사장들은 이 물에 잠기는 식을 통하여 자신들이 이 지상의 것들에는 죽고, 자신들의 옛 삶이 장사지내었다는 것을 알린다. 또 그들이 부정하지 않고, 새로운 책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276.3)
 하나님께서는 이 예식을 위하여 사용된 물이 흐르는 샘을 직접 여시었다. 친 반석은 예수님의 상징이었고, 물은 정결케 하는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는 새롭게 하는 성령의 상징이다(요 7:37~39; 비교 엡 5:26, 27). 이 고대의 제사장들 침례식은 예수의 침례와, 하늘 성소에서의 예수의 사업을 위하여 예수를 준비시키는 성령의 사역에서 그 실체에 다달았다. (2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