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V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 (18-20) 제 14 장 예수의 체포, 심문, 그리고 죽음 (18, 19)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수난에 관한 내용은 동산에서 시작하여 동산에서 끝나는데(18:1; 19:41, Talbert, Reading John, 232), 자연스럽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예수께서 배신, 체포, 그리고 고발당하심을 묘사한 부분이다(18:1-27). 빌라도가 한 심문은 예수 사건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18:28-19:16a에서 다루고 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과 이어지는 장사지내는 것은 19:16b-42에 묘사되어 있다.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에 대한 논의도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310.1)
 요한복음의 모든 내용 중에 18-19장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공통점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이 장에서의 논의는 폭넓게 요한복음과 다른 세 복음서의 사건 사이의 차이점과 이런 차이들이 십자가 이야기와 그 주변의 사건들을 가지고 제시하려는 요한의 핵심적인 신학적 견해에 어떻게 독자들을 주목하게 만드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십자가 사건은 한 편에는 베드로와 빌라도, 또 다른 한 편에는 예수 사이의 역설적인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신앙고백, 교육, 그리고 직업이 매우 달랐지만, 베드로와 빌라도는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이 있었다. 둘 다 오랜 기간 뒤에 누릴 결과를 희생시키고, 단기간 동안 고통과 당혹감을 피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반대로 예수께서는 그의 영적인 왕권의 영원한 결과로 지키기 위해 단기간 동안 극도의 고통과 거절을 기꺼이 견디셨다. (310.2)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18:1-27을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311.1)
 1. 마태복음(26:36-27:10), 마가복음(14:32-72), 그리고 누가복음(22:39-71)에 나오는 평행 기사들을 읽으라.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사항은 모두 열거해 보라. 또한 요한복음에 빠져 있는 사항을 모두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이 사건들에 대한 요한의 독특한 접근 방식에 대해 짧게 논술해 보라. 18:1-27에서 이 복음서 앞부분에서 다룬 내용을 상기시켜 주는 독특한 신학적 주제는 없었는가? (311.2)
 2. 종이 위에 본문을 여러 단락으로 스스로 나누어 보라. 각 단락의 핵심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 (311.3)
 3. 한두 단락으로 예수, 베드로, 다른 제자들, 그리고 안나스를 포함하여 본문에 나타나는 핵심 인물의 감정 상태를 묘사해 보라. 그들의 감정이 그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 (311.4)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와 배경
 요한복음 18:1-27은 자연스럽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예루살렘에서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동산에서 예수께서 체포되시는 장면이다(1-11절). 이를 이어 현직 대제사장의 저택의 심문실과(12-14절), 베드로가 처음으로 부인하는 장면이 이 사건에 삽입된다(15-18절). 그런 후 중심장면이 대제사장의 저택의 심문 실과(19-24절), 베드로가 예수를 두 번 더 부인하게 되는 바깥뜰로 오가게 된다(25-27절). (312.1)
 안나스 앞의 심문은 요한복음에서만 나타나는 장면이다. 안나스는 다른 곳에서는 누가의 저술에만 언급되어 있으나 십자가 그 자체의 주변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눅 3:2; 참고 행 4:6). 반면에 가야바 앞에서의 심문은 마태복음(26:57-68), 마가복음(14:53-65), 그리고 누가복음(22:63-71)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했다고는 했지만 상세히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18:24, 28). (312.2)
 문단의 세부 사항
 고별 강론을 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예루살렘에서 이끌고 나와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감람나무 숲(원문에는 단지 “동산”이라고 했다)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장한 군사들과 종교 관헌으로 구성된 많은 무리와 함께 나타난 유다를 만났다(18:1-3). 예수께서 담대히 앞으로 나가 자신을 밝히자, 그를 체포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대경실색(大驚失色)하였다(4-6절). 그들이 정신을 되찾자, 그는 그들에게 자신을 잡아가고 제자들은 가게 내버려두라고 요청하셨다(7-9절). 베드로가 예수를 지키려고 하자, 그를 꾸짖으셨다(10, 11절). (312.3)
 이 문단(1-11절)을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과 비교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요한만이 그 지점이 동산이었다고 말하고 있다(1절). 마태복음(26:36)과 마가복음(14:32)은 “겟세마네라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누가는 그들이 감람산에 갔다고만 한다(22:39). 요한은 그들이 그곳에 “가끔” 갔었고,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2절). 또한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것은 무리와 함께 온 한 떼의 군사들과 바리새인의 개입이다(3절). 놀라운 것은 이 장면에서 겟세마네의 예수의 고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12:27을 참고하라). (313.1)
 다른 여러 요소들이 요한복음에만 고유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께서는 폭도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들 앞으로 나아가셨다(4절). 그는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고, 또다시 “내로라”(“I am he”)는 힘있는 말을 하실 때 그들은 땅 위에 엎드러졌다(4-6절; 참고 8:58). 유다가 입맞추는 장면도 없다. 베드로와 말고의 이름이 일컬어졌고(10절), 예수께서 하신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언급도 있다(9절).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이 가는 것을 허용하라고 하셨는데, 이 기사는 마태복음(26:56)과 마가복음(14:50)에서 말한 것처럼 제자들이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같은 요청이 받아들여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 몇 사람은 제사장들 앞에서 그가 심문받는 곳까지 따라갔다(요 18:15, 16). (313.2)
 이 문단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10:18에서 하신 “이[내 생명—10:17]를 내게서 빼앗을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고 하신 말씀을 성취시키면서 그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관복음서에서 유다는 배신의 입맞춤으로 예수의 죽음을 초래한 자이다. 예수는 피해자이다(마 26:45-56; 막 14:41-52; 눅 22:47-54). 그러나 요한에게 있어 예수는 그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분이다. (313.3)
 요한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그 동산에 자주 갔었고, 유다도 그곳을 잘 알고 있었다고 지적한다(18:2). 예수께서 체포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셨다면, 그는 쉽게 그밖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아시면서 제자들을 동산으로 이끄셨다(4절). 이 사건 속에서 예수께서는 분노한 상태에 있지 않으셨다. 그는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는 배신자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폭도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그의 목적을 이루는 것인 양 그들을 완전히 두려움에 떨게 하는 권능을 보여 주셨다(4-6절). 그의 죽음은 자원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가 허락지 않았다면 결코 그를 체포할 수 없었을 것이다. (313.4)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운명도 똑같이 주관하고 계신다(7-9절).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를 구하기 위해 그 틈새에 끼어 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예수께서 그 상황을 장악하고 계셨지만, 베드로는 그 일을 전혀 수습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검을 휘둘러 예수를 위한 검객(劍客)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검을 거두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선한 의도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도를 드러낼 사건을 방해하는 것이었다(11절). 예수께서는 십자가로 가야 함을 아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실패할 것이었다. 베드로는 이를 알지 못했으나,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하여 의도한 그의 행위는 그 일을 전혀 수습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 뿐이었다. 요한복음에서 항상 그러하듯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일을 행하셨다(15:10). (314.1)
 체포되신 후에 예수께서는 비공식적인 예비 심의를 받기 위해 안나스에게 끌려가셨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안나스는 제4 복음에서만 예수를 심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18:12-14, 19-24). 안나스는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이었고(11:49, 51), 전임 대제사장이었다. 비록 안나스가 현직에 있지 않는데도 요한복음에서 그를 “대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흥미롭다(18:19, 22). 그렇게 해서 대제사장 안나스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예수를 보내었다는 매력적인 진술(24절)을 가지게 된 것이다. (3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