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22. 야훼 치드케누—우리의 의(義) 여호와 (성품 건설자)
 이사야는 하늘 농부가 심은 씨앗이 자라 열매맺을 때를 바라보고 이렇게 예언했다. “그 날에는 주의 ‘가지’가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땅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피난자들을 위해 훌륭하고 아름답게 되리라”(사 4:2). 이 평안과 풍요의 축복은 오직 “여호와 우리의 의”라 불리는 메시야 “가지”를 통해 믿음을 지키는 남은 무리에게 성취될 것이다(렘 23:6; 33:15, 16). 그리고 선지자는 죄인이 변화되는 방법을 설명했다. (326.1)
 결실은 가지가 원줄기에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함
 과수 재배인은 열매맺는 나무의 연한 가지를 잘라서 왕성한 뿌리를 가진 나무에 접을 부친다. 영국 호두나무의 접순을 토종 호두나무에 접을 부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무의 섬유질이 한데 연결되면서 토종 나무의 수액이 올라 새로 자란 가지에 질 좋은 영국 호두가 열리게 한다. 이런 접목은 나무가 스스로 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예수는 우리 인간의 악한 유전에 접목된 좋은 나무 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로 우리에게 붙여진 그의 새 생명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고,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행실을 장악하시게 하려면 우리가 그것을 선택을 해야 한다. 그 때야 비로소 가지인 그리스도는 능력을 주는 은혜의 선물을 추가적으로 주셔서 율법에 대한 순종이 우리 생애에 실현되게 함으로써 우리가 진정한 의의 열매를 맺게 만드신다(슥 3:4, 7, 8; 6:12, 13).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로 하여금 가지가 되게 하셨고, 그는 죄를 “알지도” 못했고 죄에 동참한 일도 없지만, 우리 대신 속죄 제물이 되게 “만드신” 때문이다. 그의 생애, 죽음, 부활 그리고 중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고후 5:21; 고전 1:30) 때문이었다. (326.2)
 다시 강조하거니와 이 거룩한 거래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를 통해 과거의 죄를 용서받고 성령의 힘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접목된 가지가 토종 나무의 원줄기로부터 수액과 에너지를 빨아 올려 원목에 훌륭한 성질을 부여하여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저열한 본성을 취하여 당신의 보혈로 정결케 하시고 좋은 열매 맺는 당신의 고귀하고 훌륭한 덕성과 의를 우리에게 부여하신다. 그가 “여호와 우리의 의”란 이름을 택하신 것은 그가 어떤 일을 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해설하기 위해서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든 우리 자신의 덕성을 결코 자랑할 수 없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주님의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면 그 옛 토종 나무는 그를 통해 쓸 만한 열매를 맺게 된다. (327.1)
 인간이 에덴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가 입었던 광채의 의상은 그들로부터 사라졌다. 그 옷은 창조주께서 그에게 선물로 주신 내적 순결과 의로운 생명이 겉으로 비쳐 나온 결과였다. 그 후 야훼 께서는 사람이 죽는 대신 대리 제물의 희생을 허락하시고 그 가죽을 그에게 주어 벗은 몸을 가릴 옷이 되게 하셨다(창 3:21). 고대 이스라엘 당시에는 이 의의 두루마기가 제사장들의 깨끗한 의상으로 상징되었다. 이 의상은 또한 신랑이 제공하는 신부의 결혼 예복인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했다(계 19:8). 이 의상은 그리스도의 순결한 성품을 상징하는 것으로 처음엔 입혀 주고[轉嫁], 궁극적으로는 그의 백성에게 나누어주는[分讓] 것이다. 그가 우리 속에 거하실 때 그는 야훼 치드케누, 즉 여호와 우리의 의로 거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의 의로운 성품이 우리 것이 된다. (327.2)
 그리스도의 의는 회개한 죄인에게 주어지는 선물
 하나님의 이 이름은 예수의 메시야적 봉사를 예상한 이름이다. 그 속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교리, 즉 죄인이 거룩하신 재판장 앞에서 의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다. 성경 전체에 차고 넘치는 이 위대한 진리는 셋째 천사의 기별의 일부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의 계시”“큰 외침의 시작”이다(SM 1:363). 이 진리는 “여기에 성도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義]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2; 18:1-3)고 말한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예언의 말씀에 요약되어 있다. 이 남은 자들은 성령의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 의를 소유하게 된다. (327.3)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의인들에게 약속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바울을 말했다(롬 1:17). 거룩하고 의로우신 야훼 는 창조와 구속을 통해 당신의 본성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나누어주시고 항상 당신의 백성에게 의를 요구하시며(레 11:44), 그 의를 당신의 독생자 속에 담아 제공하신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진심으로 마음에 영접하면 아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죄인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기의 죄를 깨닫고 자기가 죄인이란 사실에 동의한다. 그것이 그의 눈물과 진지한 회개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구주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주장하고 죄를 용서받고 거듭난다. (328.1)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여김을 받음[稱義]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거래는 성령의 감화로 죄인이 죄를 깨달을 때 시작된다. 죄인이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으면 성령께서 그의 구체적 죄들을 밝히 보여 주시고 그것을 구주께 고백하도록 도우신다. 그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을 지적하며 그것을 용서의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하신다. 그는 성령께서 마음에 넣어 준 믿음으로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받을 준비가 된다. 구세주는 그의 모든 과거의 죄를 용서하시고 정결한 마음을 그에게 허락하시고, 그는 이를 기쁜 마음으로 받는다. 그의 죄와 그로 인한 가책은 제거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입혀진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권위로 그를 의롭다 선언하시며,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 전혀 죄를 진 일이 없는 사람처럼 선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 일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구주께서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신 때문이다. (328.2)
 회개한 죄인이 의롭다는 판정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보실 때 아들의 성품인 의의 두루마기가 그를 둘러싼 것을 보시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났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로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상속받게 된다. 당신의 조건을 비준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죄인이 의롭게 되었음을 선언하신다. 그러나 그는 아직 유아에 불과하므로 그의 맏형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는 연약하고 경험이 부족한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은혜로 돌보신다. (329.1)
 다시 요점을 정리한다: 이 그리스도의 의는 두 단계를 거쳐 우리의 성품의 일부가 된다. 그 첫 단계는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그에게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받으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 것이다. 그는 우리로부터 죄를 받아 죄인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신 예수께 맡기신다. 그래서 믿는 자는 이제 자기의 하나님 앞에 전혀 죄진 일이 없는 사람으로 서게 된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 대신 거듭 난 그리스도인에게 당신의 완전한 의를 겉옷으로 입혀 주신다. 이 과정을 성서적 개념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轉嫁)로 설명한다. 이것은 법적 판결로 판사에 의해 잠깐만에 공포되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께서 회개한 자를 보시면, 보이는 것은 당신의 의를 옷 입듯한 예수뿐이고 회개한 하나님의 자녀는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329.2)
 그래서 믿는 자는 율법의 정죄, 즉 사망을 벗어나 “이제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한 상태가 된다(롬 8:1). 그는 하늘에 들어갈 권리 증서를 손에 쥔 것이다. 은혜는 그로 하여금 예수의 본으로 제시된 그 이상적 성품을 계발할 길에 들어서게 한다. 이 전가된 의는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법적으로 가납(嘉納)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만든다. 그는 하늘 가족의 일원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유아에 불과하므로 그의 맏형님의 성품으로 자라나야 한다. (329.3)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화
 죄인이 칭의를 받으면 동시에 성화가 시작된다. 성화란 그리스도의 본으로 제시된 이상적인 삶이 칭의 받은 사람의 성격과 행위에 내재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재연되는 과정을 말한다. 크루든(Cruden)이 오래 전에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칭의 받은 사람만 성화시키신다. 매순간 하나님의 성령은 새로 난 당신의 자녀를 도와 전에 보지 못했던 죄를 자기 생활에서 보게 하시고, 옛 습관들을 끊을 힘을 주신다. 이와 같이 그는 한 걸음씩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성장하면서 자기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더 깊이 깨닫게 된다. (330.1)
 죄인의 성화는 이렇게 되는 것이다. “순간적 성화란 없다. 참된 성화는 평생 계속되는 매일의 과업이다. 매일 유혹과 싸우며 자기의 타락한 성향을 극복하며 마음과 생활이 거룩해지려고 힘쓰는 자들은 스스로 거룩하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 죄는 그들의 눈에 심히 가증해 보인다”(SL 9). (330.2)
 이미 살펴본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둘째 단계는 제자가 새로 날 때 시작되어 그가 사는 날 동안 계속된다. 이것이 자라나는 성도가 예수의 성품을 받는 단계이다. 성령의 지배 아래 마음과 몸을 구원자요 주이신 주님께 복종시킨 자는 성장하며 자기의 맏형 되시는 예수님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날마다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성화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며, 이로써 그는 하늘에 살 적성을 구비하게 된다. (330.3)
 이 과정에서 제자가 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며, 믿었으면 전심으로 구주를 사랑하고 그의 율법을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성경 공부를 통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실 때 그는 항상 능력 주시는 은혜에 의지하여 마음을 굳게 정하고 주의 뜻을 행하려고 힘쓴다. 의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정의되며, 그리스도의 생애에 본이 나타난 생활의 질이며, 항상 믿음으로 그 목표에 접근할 것을 잊지 않는다. 거룩함, 즉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함”은 성도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끌리게 만드는 자력(磁力)이다. 그 자력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독생자를 통해 이루신 모든 것을 내가 깨닫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때 내 마음에 생겨난다. (330.4)
 이미 인용한 말씀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만일 우리가 동의하면 그는 우리의 사상과 의지에 공감해 주시고, 우리의 정신과 사상이 당신의 뜻과 혼합되어 거기에 완전히 동화되게 만들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충동을 따르면 그것이 그를 순종한 것이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 세련되고 성화된 의지는 그를 섬기는 일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특권을 진실로 누릴 만큼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의 생애는 계속적인 순종의 생애가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의 가치를 깨달을 때 죄는 우리 눈에 가증스러워 보일 것이다”(DA 668). (331.1)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야훼 치드케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