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22. 야훼 치드케누—우리의 의(義) 여호와 (성품 건설자)
 비록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기별이 구원의 역사 전반에 차고 넘치고 있지만, 야훼 치드케누 란 성호는 예레미야에 두 번 언급된 것이 그 전부이다(렘 23:6; 33:16).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메시야 예수의 사역을 예고하셨다. 오늘 우리 각 사람은 그 이름에 함축된 그의 약속을 주장해야 한다. 그 의미를 우리에게 성취하시기 위해 야훼 께서는 사랑하는 회개자들에게 당신의 의를 허락하신다. 그 의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이로부터 오는 회개의 선물과, 죄인을 이제 의롭다 선언하는 재판장의 판결, 그리고 끊임없이 주어지는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포함된다. (331.2)
 이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라 한다. 회개한 사람은 그 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의 계정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기재되고,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삶을 열심히 살 준비가 된다. 이 중생 과정에는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원칙을 매순간 이행하겠다는 갓 태어난 제자의 선서가 포함된다. 칭의(稱義) 이후의 이 생활 단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화라 하는데, 이것은 평생의 과업이다. (331.3)
 사람 속에는 의(義)가 전무(全無)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를 말할 때는 그것이 칭의든지 성화든지 언제나 예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칭의를 받는 순간부터 최종적 성화의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인은 그의 구주의 은혜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리스도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 92:15). 그러므로 그를 사랑하고 그가 자기 마음에 들어와 사시도록 선택하는 신자는 점점 더 그리스도의 성품과 습관을 깊이 닮는다. 이렇게 은혜로 들어온 의의 힘은 그의 옛 사상과 행실(히 1:9) 때문에 생긴 죄의 잠식(蠶食)을 역전시킨다. 사랑과 감사는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의 본을 따르도록 성도를 강권한다. 하나님은 의를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시므로 불의한 것은 무엇이나 그의 앞에 죄로 간주된다(요일 5:17).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는 순간마다 자기의 생애에 여기저기 숨어 있는 누추함을 발견하려고 하나님께 기도한다(시 139:23). 성령께서 그것을 보여 주시면 그는 은혜와 힘을 받아 또다시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극복한다. 그러므로 각 성도는 아이적 와츠(Isaac Watts)와 함께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놀라운 죄로 내 영혼이 괴로워 번민할 때, 나는 주의 의를 바라고 호소하리라.” (332.1)
 의는 야훼 치드케누 의 거듭난 자녀들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행위를 조종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원칙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의 신부에게 주는 고운 세마포 옷으로 비유되었다(계 19:8). 그것은 성도들의 유일한 참 의이며, 하늘에서 짠 옷이다. 그 옷만이 구주께 굴복하는 모든 사람의 벗은 수치를 가릴 수 있다. (332.2)
 사랑하는 구세주여, 이 의를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332.3)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추구하는 자들은 자기가 무죄하다는 방자한 생각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생애는 흠잡을 것이 없어지고 그들이 받아들인 진리가 진리임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품을 깊이 생각하는 훈련이 깊어질수록, 그래서 그들의 형상이 그의 거룩한 모습에 가까워질수록, 그만큼 더 그들은 그분의 흠없는 완전을 인식하고 자기의 불완전을 더 크게 느낄 것이다”(SL 7). 인생의 모든 국면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으면 중세기의 한 무명 시인이 남긴 글에 공감할 것이다: (332.4)
주여, 내 머리에 계셔서 내 깨달음을 도우소서.
주여, 내 눈에 계셔서 나의 보는 일을 도우소서.
주여, 내 입에 계셔서 내 말을 도우소서.
주여, 내 마음에 계셔서 나의 의지를 도우소서.
주여, 내 끝 날에 계셔서 나의 최후를 도우소서.
(3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