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5 장 바울과 율법 제 2 부 바울의 율법에 대한 견해
 율법에 대한 바울의 배경적인 견해에 대한 간략한 연구는 우리에게 율법에 대한 바울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점검하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다.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의 가르침을 다음의 일곱 제목 하에서 요약하고자 한다. (113.1)
 (1)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냄
 무엇보다 먼저,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고 또 하나님의 법으로 남아 있다(롬 7:22, 25)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법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고(롬 9:4; 3:2), 하나님에 의해 기록되었고(고전 9:9; 14:21; 14:34),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고(롬 2:17, 18),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고 있고(롬 3:21),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갈 3:21). 바울은 반복해서 분명하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롬 7:22), “내 자신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롬 8:7)다고 한다. 그밖에도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고전 7:19)을 그리스도인의 명령으로 말한다. (113.2)
 하나님께서 율법의 저자가 되신 이래,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롬 7:12)하다. 율법은 분명히 유대인들에게 위탁하신 “하나님의 말씀들” 가운데 포함된다(롬 3:2).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법을 맡는 특권(“advantage”라고도 함)이 주어졌다(롬 3:1, 2). 따라서 이스라엘에 “율법을 주신 것”은 영광스런 특권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롬 9:4). 이러한 진술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신적 기원과 권위에 대해 바울이 크게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113.3)
 바울은 구약의 율법에 포함된 도덕적인 원칙은 본래 선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한다. 율법은 그 자체의 윤리적인 요구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 의로우심, 그리고 선하심만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롬 7:12)다. 이것은 백성들이 율법과 관련을 맺고 있는 그 길은 그들이 하나님 자신과 관련을 맺고 있는 그 길을 가리킨다. 율법은 어떤 면에 있어서 “영적”(롬 7:14)이어서, 그것은 율법을 주신자의 영적인 본성을 반영하며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에 의해서 구체화되고 또 준수될 수 있다. 따라서, “영을 좇아 행하는 자들”만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롬 8:4). (113.4)
 율법은 인간의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표현한다. 그러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외형적인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사랑의 반응이다. 궁극적으로, 율법의 준수는 하나님과 동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를 요구한다(롬 13:8). “율법에 기초한 의의 법을 좇아간”(롬 9:31)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외형적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 백성들은 율법을 이루지 못했다(롬 9:31).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그 율법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반응에서 우러나와 계명을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외형적인 순종을 통해서 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롬 9:32). (113.5)
 하나님의 율법은 외형적인 규칙들에 순응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바울은 이점을 할례를 받을 수 있으나 여전히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하는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하면서 제시한다(롬 2:25). 피상적으로, 이것은 할례가 바로 율법에 순종하는 행위이므로 마치 모순되는 진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진정한 할례는 마음의 문제이지 단순히 어떤 외형적이거나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다(롬 2:28, 29). (113.6)
 바울에게는, 바르넷(C. K. Barrett)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단지 오경에 기록된 세세한 말씀들을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율법이 지적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최종적으로 법적인 순종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입증한다.”14) 바울이 율법에 대한 율법주의 적인 순종과 사랑의 순종 사이에 중요한 구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가 실제로는 율법의 비법적인 사용만을 거절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 사도가 율법의 유효성 자체를 거절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인도해 왔다. (114.1)
 (2)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이 율법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심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명의 기능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많은 사람들이 잘못 믿고 있는 것처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율법 자체가 할 수 없는 것을 행하시는 바, 즉 그분께서는 신자들이 “율법의 요구하는 것”에 조화롭게 살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 4). (114.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외형적인 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반응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하신다. 이것은 율법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사람의 행위의 외형적인 표준들은 곧 인간의 마음에 사랑의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의 도덕적인 원칙들에 조화로운 삶을 살므로 그분께 반응하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후 5:14).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반응은 율법을 이루는바, 그 이유는 사랑은 간음, 거짓말, 도적질, 탐심을 하거나, 또 이웃을 해롭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롬 13:8-10). (114.3)
 율법의 영속성은 바울이 특별한 율법을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대한 규범으로 말하고 있는데서 나타난다. 사랑의 원칙이 어떻게 율법을 이루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바울은 여러 자세한 법들을 인용한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9, 10). (114.4)
 “그 밖의 다른 계명들”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사랑이 동료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마지막 여섯 계명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를 정립하는 첫 네 계명까지도 성취하므로, 나머지 십계명들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예컨대, 사랑은 안식일 계명을 이루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안식일 계명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안식일 시간 동안에 그들의 생각과 삶에서 그분에게 우선권을 두므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도록 동기를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114.5)
 율법에 대한 바울의 이해의 중심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이 관점에서, 그는 율법을 부정하기도 하고 확증하기도 한다. 부정적으로, 사도는 율법을 칭의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114.6)
 긍정적으로, 바울은 율법이 “영적이고, 선하고, 거룩하고, 의로운”(롬 7:12, 14, 16; 딤전 1:8)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그 율법이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도덕적인 표준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역동적인 영의 능력을 통해서 “율법의 요구를 행하게 하려”(롬 8:4)고 오신 것으로 제시한다. (115.1)
 바울은 세 번이나: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라고 말하면서, 다른 구절에서 매 번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고전 7:19; 갈 5:6; 6:15)고 결론을 내린다. 평형대구형은 바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성령의 힘주시는 능력을 통해 가능하게 되는 역사하는 믿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통한 평형대구형으로 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115.2)
 (3) 율법은 성령의 봉사를 통해 세워짐
 그리스도의 봉사는 자신의 성령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하며(롬 8:2) 또 우리의 마음에 율법의 진정한 영적인 특성을 다시 세울 수 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죄에 의해서 훼손되고 남용된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그리스도께서 자신 스스로가 죄(롬 8:3)를 짊어지시므로 성공적으로 성취하여 오셨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것은 우리를 율법을 준수해야 할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키지 않고, 오히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115.3)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간섭과 자랑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셔서 우리의 마음에 그 율법을 세우신다(롬 2:23; 3:27; 4:2).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거듭 거듭 율법의 목표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지적하므로 그 율법을 세우신다(롬 19:4).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의 “아버지”(롬 8:5)로 자발적으로 순종하도록 하시므로 율법을 이루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그분의 자녀들을 위한 그분의 자애로우신 부성(夫性)적인 의지에 대한 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의 최종적인 수립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때”(롬 8:19)인 그리스도의 강림 때까지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115.4)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의 슬로건—율법 아래 있지 말고 사랑 안에—은 세상에서 참된 사랑을 증가시키지 못하고 있는바, 그 이유는 율법이 없는 사랑은 곧 현혹시키는 감정 가운데서 퇴보시키기 때문이다. 크랜필드(E. C. Cranfield)는 지각력 있게 관찰하기를 “우리는 한편으로 사랑하면서(율법 그 자체가 신명기 6:5; 레위기 19:18에서 마련하고 있는 것), 엄격하고도 문자적이며 또 현학적인 방법으로 특별한 계명을 이해하는데서 우리를 구하는 일반적인 명령을 필요로 하는 한편, 우리는 또한 율법이 사랑의 일반적인 의무를 벗어나 우리 모두가 빠지기 쉬운 감상적인 것과 자기 기만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특별한 계명들을 필요로 한다.”15)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