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4부 거룩한 열성 제21장 성소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여준다
 1979년 여름에 나는 캘리포니아 앨비언(Albion)에서 생물학 실험실로 사용할 건물들을 짓는 일을 도왔다. 건축 작업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그 실험실은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책임자가 내 친구였다. 하지만 외로웠다. 여름이 끝나고 버클리(Berkeley)의 대학원 공부를 위해 막 돌아가려는 중에 퍼시픽 유니언 대학(Pacfic Union College) 체육관에서 있는 친목도모 파티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2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동창생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대를 했다. 어쩌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도... (152.1)
 내 예감이 적중했다. 지난해 말에 만났던 케빈이라는 친구가 그 자리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152.2)
 “어이, 로이!” (152.3)
 “오, 케빈!” (152.4)
 “잘 지냈어? 참, 여기 내 여동생 코니야. 서로 인사들 해.” (152.5)
 “코니라구요? 안녕하세요?” (152.6)
 “예. 안녕하세요.” (152.7)
 그녀의 그 인사말이 내 마음을 녹였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맞다. 나는 첫눈에 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152.8)
 틀림없이 사랑의 열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사랑의 시작이었다. (153.1)
 체육관에서 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나와 코니는 함께 앉아 있었다. 당시 코니는 열여덟 살의 대학에 신입생이었고 나는 버클리 대학원 2학년인 스물네 살의 학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둘 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클래식 음악, 야외 활동,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좋아했다. (153.2)
 우리는 데이트를 시작했다. 초기에 여러 명의 경쟁자들이 있었다. 대학생활 첫 주부터 많은 남학생들이 코니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수했으며 그녀도 나의 이런 노력에 화답했다. (153.3)
 처음 데이트를 한 것이 9월 20일이었고 진지한 만남을 시작하게 된 것은 10월 16일부터였다. 그리고 12월 17일 우린 약혼을 했다. 둘다 공부를 마치고 결혼하려면 7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 3년은 빨리 지나갔지만 우리는 더 이상 서로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해 6월 15일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관계는 서로가 좀 더 가까워지는 만큼 조금씩 자랐다. (153.4)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처럼 조금씩 자랄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변화된 때에 관해 말하는 고린도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153.5)
 “너희가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다”는 말은 “너희가 거룩해졌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성도로(라) 부르심”으로 즉 “거룩한 사람으로 불린”(고전 1:2 저자 역)이라고 부른 이유이다. (153.6)
 영어 번역에서는 “성도가 되도록 부르심”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되도록”이 헬라어 원문에는 없다. 바울은 명확하게 고린도 사람들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다. (154.1)
 고린도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의미에서 거룩했지만 그들은 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는 그들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 간의 말다툼으로는 편이 갈라져 있었다. 그들이 기본적인 의미에서 거룩하였지만 성화라고 불리어지는 거룩함 안에서의 성장이 필요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덕적인 품성에서 더욱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필요했다. (154.2)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람들도 역시 거룩함 안에서의 성장이 필요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썼다. (154.3)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2~13).
(154.4)
 사람에게 있어 거룩함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 사랑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라는 것에 주목하길 바란다. “(거룩함 안에서)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라는 말은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를 나타낸다. (154.5)
 거룩한 하나님의 도덕적 품성이 사랑이기 때문에 거룩함 안에서의 성장이 사랑 안에서의 성장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요일 4:8). 우리가 그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그분을 더욱 닮아갈 때 우리는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거룩하게 될 것이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거룩하게 구별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모방하도록 우리를 초청한다(벧전 1:14-16, 인용 레 11:45절) 레위기 19장 2절은 같은 개념을 표현한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될 수 있을까? 레위기 19:2 이후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율법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칙인 율법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18절은 모든 율법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 품성의 기본 원칙을 언급한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