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구약의 난해 문제 질문 21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자와 어린 아이를 포함한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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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신 20:16, 17). (112.1)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열국들을 진멸하는 것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첫 번째는 윤리적인 문제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가축과 호흡 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남녀노소 모두를 진멸하라고 지시하셨는가? 둘째는 하나님의 품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어떻게 이러한 행동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주목하시며 모든 인류를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 죽도록 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품성과 조화될 수 있는가? 구약의 하나님은 복수의 하나님을 묘사하는 반면, 신약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보여 주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용하여 가나안 사람들에게 이러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112.2)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우리가 이 본문을 읽을 때 몇 가지 일반적인 이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은 공의와 따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공의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공의롭지 못하다면 하나님은 주변 열국들이 만들어 섬기던 변덕스런 신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아신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공의가 더 요구되어 죄를 근절해야 할 때가 온다. 이러한 행위 곧 하나님의 공의가 홍수 때에 나타났고(창 6~9장), 악인이 파멸될 역사의 마지막(계 21~22장)에 있을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와 신실한 자들을 위한 사랑으로 악을 근절하여 인류가 함께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신다. (112.3)
 유예 기간
 신명기 20장에 나온 지시들은 이 장에 개략된 전쟁을 위한 법들의 일부이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 할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시들로 이뤄져 있다. 이 지시들은 역사에서 일어난 그 사건들의 상황 및 가나안 사람들의 더 광범위한 역사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로부터 야곱이 애굽에 들어갈 때까지 200년 넘게 부족장들과 그들의 족속들은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증거했으나 가나안의 거민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의 파멸은 하나님을 거절하기로 한 자신들의 선택과 온갖 종류의 죄악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데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들어가 400년 동안 유배되어 압제를 받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것이 아브라함을 통해 예언되었다. 그렇게 오래 지체한 이유가 창세기 15:13~16에 설명돼 있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다른 번역본에는 그들의 죄악이 “아직 충분한 분량에 이르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가나안 민족들이 자신들의 악한 행실로 멸망의 잔을 서서히 채우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수백 년을 참으셨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는 그들의 선택의 결과가 자기 파멸이 되어야 함을 요구했다. 가나안 족속들의 파멸은 황급한 복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길을 바꾸도록 온갖 기회를 제공했으나(민 22장의 발람을 참조하라) 결국엔 그들의 죄악을 참을 수 없었던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마지막 결정에서 나왔다.1 (113.1)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과 소위 신성한 매춘을 포함한 우상숭배의 행습을 묘사하는 가나안의 문서들을 보면 그들의 타락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분명해 진다.2 그들이 내린 결정들이 소위 무구한 삶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여자들과 아이들도 악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그러한 만행이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데려가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낸 것은 이스라엘이 더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함이었다(신 9:5). 바로 이런 이유로, 신명기 20장과 그와 유사한 내용의 성경 본문들은, 이스라엘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하여(신 20:18) 모든 제단과 주상들 및 아세라와 모든 새긴 우상들을 남김없이 파멸해야 했다고 분명히 말한다. (114.1)
 이스라엘의 역할
 하나님의 징벌이 그분의 계획이었다면, 그러면 왜 그분이 이스라엘을 사용하여 그들 앞에 있는 열국을 파멸하도록 하셨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성경의 더 넓은 문맥을 분석해 보면, 이스라엘을 파멸의 주요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가 결코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출애굽기 23장에서 정복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진술하셨다.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출 23:22, 23). (114.2)
 이 본문은 이스라엘이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행한다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곧 그분이 그들의 대적들을 멸할 것이었다. 그들의 책임은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을 쳐부수고, “그 주상을 타파”하는 것이었다(출 23:24). 신명기 1:30에서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재차 확언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루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에서 그에게 불평할 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했다(출 14:13, 14). 홍해의 경험을 말하고 있는 신명기 7:18~22은 정확하게 동일한 약속을 그대로 진술한다. “그들을 두려워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그와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행하실 것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점점” 쫓낼 것이었다(22절).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이상적인 계획이었다. (115.1)
 여호와의 전쟁
 그러나 이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진멸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진멸하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용어는 헤렘(herem)이다 이 말은 “저주”. “저주 아래 있는 것” 혹은 “파멸에 바쳐진 것” 등을 의미한다.3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열국들과 그들의 신들을 파멸에 바쳤다. 왜나하면 그들이 맹렬하고 고집스럽게 그분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파멸을 “거룩한 전쟁”으로 해석하지만, 더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시고 거룩한 징벌을 수행하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야훼의 전쟁”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민족들과 그들의 소유를 저주 아래 두어야 했는데, 이는 그들이 그것들을 심판을 위해 하나님께 바쳐야 했음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그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 했다. 이스라엘은 어떤 전리품도 취해서는 안 되었다. 이스라엘은 그들과 언약을 맺어서도 안 되었고. 하나님의 대적들의 악한 길에서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들과 통혼하지도 말아야 했다. 이스라엘은 신정통치에서 그들의 최고 지도자인 하나님과 협력하여 그분의 뜻을 이뤄야 했다. (115.2)
 이스라엘의 선택
 결국,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구원을 목도하기 위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상적인 계획이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협력하셨다. 그들은 정복자가 되어 그들이 몰아낼 자들을 군사력을 동원하여 살육하기로 택하였다. 그들이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았으나 완전히 정복하진 못했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이 여전히 많은 도성과 지경을 점령하고 있었다(수 13:2~5; 삿 1:19~3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택과 더불어 일하셨고, 그들이 일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때라도 그들과 함께하셨다. 여호수아는 그의 생애를 마칠 즈음에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여호와]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내[여호와]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 (116.1)
 Michael G. Hasel (116.2)
 미주
 1.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부조와 선지자. 492을 보라

 2. John Day; “Canaan, Religion of,” in The Anchor Bible Dictionary, ed. David N. Freedman, 6 vols. (New Tork, NY:Doubleday, 1992), 1:834, 835.

 3. 헤렘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Michael G. Hasel, Military Practice and Polemic: Israel’s Laws of Warfare in Near Eastern Perspective (Berrien Springs, MI: Andrews University Press. 2005), 26~28을 참조하라. (117.1)
 “영감으로 된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령에서 솟아나오는 하늘의 평화와 기쁨의 샘은 위대한 감화의 시내가 되어서, 그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끼쳐 준다.”(교육. 191). (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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