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5 장 바울과 율법 제 1 부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의 배경
 “율법”의 다용한 용례
 바울은 “율법[law]-노모스[nomos]”이라는 용어를 자신의 편지서에서 적어도 110회나 사용하고 있지만 획일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같은 “율법”이라는 용어가 바울에 의해서 모세의 율법(갈 4:21; 롬 7:22, 25; 고전 9:9), 모든 구약(고전 14:21; 롬 3:19, 21), 이방인의 가슴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롬 2:14, 15), 행위를 통제하는 원칙(행위 또는 믿음, 롬 3:27), 악의 성향(롬 7:21), 그리고 성령의 안내(롬 8:2) 등을 언급하는데 사용된다. (110.1)
 종종 “율법”이라는 용어는 바울에 의해서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롬 3:19)이라며 마치 하나님 자신인 것처럼 개인적인 형태로 사용된다. 여기서 “율법”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대치할 수 있다(참조: 롬 4:15; 고전 9:8). (110.2)
 우리의 직접적인 관심은 바울의 글에 나타나는 “율법”이라는 용어에 대한 용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적으로 구약의 율법에 대한 사도의 견해를 지지하는데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특별하게는 모세의 율법을,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구약의 율법을 폐지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그런 법들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고 가르치셨는가? 이런 견해는 오랜 기독교 역사에서 편만 해 왔으며 여전히 많은 학자들과8) 교회들에 의해서 오늘날도 끈질기게 옹호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편만한 견해는 그러한 해석을 반대하는 다른 중요한 구절들을 배제한 채 주로 선별된 바울의 구절들에 대한 편향적인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110.3)
 따라서 우리들의 연구 과정은 먼저,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말하는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진술들을 점검하고, 그 후 어떤 분명한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본 연구를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살펴보므로 시작하려는 바, 그 이유는 이것이 왜 바울이 율법을 폐지된 것(엡 2:15)과 또 세우는 것(롬 3:31)으로, 그리고 불필요한 것(롬 3:28)과 또 필요한 것(고전 7:19; 엡 6:2, 3; 딤전 1:8-10)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110.4)
 율법에 대한 구약의 견해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세 관점, 즉 구약과 유대교 그리고 그 자신의 경험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전망들 각각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으며, 이것은 율법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자신의 논의에서 반영되고 있다. (110.5)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구약은 율법을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속에 대해 반응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을 그들의 하나님께 묶는 방법으로 본다. 옛 언약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은혜가 아니라 율법에 대한 순종에 의해서라는 보편적인 견해는 구원은 인간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경시한다. (110.6)
 율법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바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인도하심으로 이미 성취하신 것에 대해 그들이 반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십계명의 문맥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은혜로우신 행위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은 그들이 율법을 순종하므로 얻은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7, 8). (110.7)
 율법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존하기 위한 기회를 마련하였다. 바로 이것인 레위기 18:5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본문에서 약속된 생애는 장차 올 시대의 생애가 아니라(단 12:2에서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오는 현재의 평화와 번영의 생애이다. 그런 생애는 그분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으며, 그 선물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원칙에 조화로운 삶을 살므로 즐기고 보존될 수 있는 선물이다. (111.1)
 신명기 30:15-20에 있는 백성들 앞에 놓여져 있는 생명과 사망 사이의 선택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느냐 아니하느냐의 여부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은 당신의 백성들이 실제로 하나님께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율법이 요구하는 순종은 할례와 같은 외적인 요구에 대한 율법주의 적인 준수로 만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내적인 사랑의 반응에 의해서 될 수 있다.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신 6:5; 10:12)과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레 19:18)이었다. 생명은 하나님께 믿음의 반응으로 얻어지는 선물로 이해되었다. 폰 라드(Gerhard von Rad)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단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 구원의 하나님께 나아가므로 의인들은 생명을 얻게될 것이다(참조. 합 2:4; 암 5:4, 14; 렘 38:20). 생명은 분명히 여기서 선물로 이해되고 있다.”9) (111.2)
 바울은 자신의 대화 바로 직후에 율법에 대한 구약의 견해는 생명과 구원의 선물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었지, 결코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하나의 수단이 아니었다고 이해하였다. 앞으로 볼 것이지만, 자신의 대화에 앞서서, 바울은 율법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의 일종인 구원의 방편으로 보는 바리새인 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바울은 자신의 신학을 재점검하도록 강요를 받았다. 점차, 그는 구원의 길로서의 율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구약은 구원이 율법이 시내산에서 주어지기 430년 전에, 장차 오실 씨(Seed)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갈 3:17). (111.3)
 율법에 대한 유대인의 견해
 이러한 생각들은 바울로 하여금 구약에서의 구원은 율법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시는 메시야의 약속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인도했다.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갈 3:18). 이것은 율법에 대한 구약의 의미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으로, 바울로 하여금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도전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111.4)
 율법의 준수는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라는 견해는 신구약 중간 기 후반, 즉 구약의 마지막 책들을 신약의 첫 책들로부터 분리한 4세기 동안에 발전했다. 이 기간 동안에 근본적인 변화가 백성들의 삶에 있어서 율법의 역할에 대한 이해 가운데서 일어났다.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 과거의 고통과 유배로 옮겨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재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그들은 백성들은 율법의 모든 세세한 것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시키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들은 율법을 해석하여 매우 세세한 생활의 상황에 적용하였다. 그리스도 당시에, 엄청나게 증가한 법규들은 “장로들의 유전”(마 15:2)으로 알려졌다. (112.1)
 이 기간 동안에, 엘돈 래드(Eldon Ladd)가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율법의 준수는 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의 기초가 된다. 부활은 율법(2 Mac 7:9)에 몸바쳐 온 자들에게 보상이 될 것이다. 율법은 신실한 자(Test of Jud 26:1)의 소망의 기초가 될 것이며, 칭의(Apoc Bar 51:3), 구원(Apoc Bar 51:7), 의(Apoc Bar 57:6), 생명(4 Ezra 7:21; 9:31)의 기초가 될 것이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할 것이며 모든 죄로 저주받은 세계(Jub 23)를 변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의 위치에 도달한다.”10) (112.2)
 율법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견해는 바울 당시에 편만 했던 랍비 유대주의의 특징이 되었다. 그 결과는 율법에 대한 구약의 견해는 “특성상으로 바뀌어져 결국은 무효화되었다.”11) 인간의 행위의 도덕적인 원칙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된 것이다. 앞으로 올 세상의 의와 생명은 율법을 신실하게 연구하고 준수함으로써만 확보될 수 있다. “율법에 대해서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생명을 얻게 된다. . . ”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율법의 말씀을 얻었다면, 그는 스스로 앞으로 올 세상에서 생명을 얻은 것이다.”12) (112.3)
 회심전의 율법에 대한 바울의 견해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보는 편만한 이해는 바울의 초기의 생애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열성적인 바리새인, 율법의 준수에 관한 한 책망할 것이 없는 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빌 3:5, 6; 갈 1:14). 분명히 율법에 대한 열심과 헌신이 바울로 하여금 그것을 자랑하게 만들었으며(빌 3:4, 7), 거만하게 하였고(롬 2:13, 23), 행위에 기초한 자신의 의를 세우도록 했다(롬 3:27). (112.4)
 그는 자신의 회심의 결과로, 자신의 교만과 거만함이 오로지 찬양과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한 하나님의 품성을 모독하는 것이었음을 발견했다(고전 1:29-31; 고후 10:17). “유대인으로서 그가 생각했던 것은 의(義)였으며, 이제 그는 죄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의에 대한 그의 교만(빌 3:9)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에 자신을 눈멀게 하였었기 때문이다. 다메섹 도성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만이 자신의 교만과 자만심을 흩어 버렸고, 그리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겸손히 받아들이도록 인도했다.”13)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