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고 있는 하늘의 존재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광경을 볼 때, 최대의 기쁨을 경험한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 1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하셨다. 요한계시록 5장 9절에서 하늘의 존재들을 환희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 “죽임을 당하사” 우리로 “땅에서 왕 노릇” 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피로 사신” 사건이었다. (153.8)
 천사들의 봉사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한다면 그만큼 마음에 은혜를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성경 전체에 걸쳐 천사들은 우리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진 존재로 나타나 있다. 예컨데, 야곱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들을 보았다(창 28:12). 천사들은 굶주린 엘리야에게 음식을 가져왔으며(왕상 19:5), 적군을 전멸시켰고(왕하 19:35),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의 입에서 건졌다(단 6:22). (153.9)
 한 천사는 스가랴에게 아들을 약속했다(눅 1:13).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노래했으며(눅 2:13),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예수님께 수종들었고(마 4:11), 그의 무덤에서 돌문을 굴러 옮겼다(마 28:2). 그들은 베드로가 갇혀 있던 옥문을 열었고(행 5:19), 바울이 항해 중에 태풍을 만났을 때 곁에서 힘이 되었다(행 27:23). 그들은 또 성경 시대에 비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여 복음을 찾아 구하게 하였다(행 10:1~7). (154.1)
 천사들은 지금도 우리를 수행하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시 34:7). (154.2)
 필자 자신도 자주 필자를 보살펴 주는 천사에 대해 망각할 때가 많다. 이는 얼마나 큰 손실인가? 그러나 때때로, 예컨데 자동차를 타고 갈 때 곁에 함께 타고가는 천사를 생 각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곁에 타고 있는 것을 더욱 실감 있게 느끼기 위해 천사에게 말을 걸기까지 한다. 가끔 혼자서 먼 거리로 자동차 여행을 할 경우에는 아예 손님석 차문을 열고 천사를 안으로 모시기까지 한다. (154.3)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특별히 보호할 의무를 천사들에게 맡기셨다.
(154.4)
 천사들에게 어린 소년 소녀들의 보호가 위탁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자. 하늘의 사정에 너무나 정확하신 예수님께서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그들의 천사가 하나님의 보좌에 직접 접근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면 언제나 열린 문을 통하여 날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들려 주라. (155.1)
 우주 통제소는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우리를 돕는 임무를 지시하실 때마다 뇌성을 발한다. 천사들이 우리의 필요에 응하여 날아올 때 번개가 인다. 또 천사들이 우리의 기도와 감사를 하나님께 고하러 귀환할 때도 섬광이 인다. (155.2)
 약속의 무지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위에 “녹보석” 빛깔이 찬란하게 물결치는 “무지개” 를 보았다. 성경을 보면 태고 시절에 노아가 대홍수로부터 가족과 함께 살아 남은 것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 무지개를 띄워 징조를 나타내셨다고 했다. 하나님은 설명하시기를, 이는 다시는 이 같은 대 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언약이라 하셨다(창 9장). (155.3)
 언약은 약속인 것이다(다니엘 연구 pp. 166, 167을 참고하라). 보좌 위에 걸쳐 있는 무지개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그분은 너무 바쁜 나머지 성경의 수백 곳에서 우리에게 다짐하신 약속을 이행 못 하는 일이 없으시다. (155.4)
 어린 양
 요한계시록 4장은 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5장으로 넘어오면 시선이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이며 “다윗의 뿌리”이기도 한 어린 양에게로 이동된다. (155.5)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후손이셨다(히 7:14). 사자(獅子)는 유다 지파의 상징이었다(창 49:9). “다윗의 뿌리”란 말은 “다윗의 어린 가지”로 이해하는 편이 더 좋다. 즉 예수님을 다윗 왕의 조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고대의 관용구이다. 예컨데 마카비전서 1장 10절에서는 에피파네스를 “죄된 뿌리”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그가 그의 부왕 안티오쿠스 3세 대왕의 “죄된(욕스러운) 자식”이란 말이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은 자주 다윗의 자손으로 일컬어졌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다윗의 뿌리로 기록된 것이다. (155.6)
 그러나, 어떻게 사자가 어린 양이 될 수 있는가? 꿈이나 계시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린 양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요한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목격했을 때를 기억해야 한다. 바로 침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서 전도하고 있을 때였다. 침례 요한이 갑자기 설교를 중단하고 방금 그 자리에 도착한 예수님을 가리키며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하였다. (155.7)
 당시 요단 강가에 섰던 예수님은 문자적인 의미의 어린 양은 아니셨다. 하늘에서도 그는 문자적인 의미에서는 어린 양도 사자도 아니시다. 그러나, 회개와 참회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지금도 우리의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이시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하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언젠가 사자로서 임하실 것이다. 여섯째 인을 떼실때 하나님의 자비를 배척한 사람들은 산과 바위에게 부르짖기를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앉으신 이의∙∙∙진도”로부터 우리를 숨겨달라고 할 것이다(계 6:16). (155.8)
 그러면, 어째서 어린 양만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열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인봉된 책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요한계시록 6장 1절에서 8장 1절에 소개되고 있는 일곱 인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155.9)
 그에 앞서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이를 찬양하는 하늘 합창단에 끼어 보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을 시켜 꾸준히 우리들을 돌보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다짐하신 약속들을 지키고 계시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는 대단히 값비싼 사명을 띠고 아들 곧 어린 양을 보내셨다. 오래지 않아 그는 우리와 우리 가족을 유리 바다로 맞아들이실 것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하늘 찬양대의 찬양을 직접 듣고 그의 얼굴을 직접 뵈올 것이다. (1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