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도 하나님의 보좌를 본 묵시에서 이 스랍들을 보았다. 에스겔은 에스겔 1장에서 이들에 관해 쓸 때 요한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생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에스겔 10 장에서는 그들을 “그룹”이라고 표현했다(cherubim은 히브리어 cherub의 복수형이다). 에스겔의 눈에는 이 그룹들이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비쳤으며 네 얼굴은 사람, 사자, 소, 독수리였다(겔 1:6, 10). 각 그룹은 보좌에 가까이 있었으며 눈이 가득한 바퀴와 관련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이 어디로 가시고자 하든지 네 그룹이 그리로 행했는데 정연함이 화살과 같고 빠르기가 번개와 같았다. (151.8)
 요한은 그 스랍 혹은 그룹 또는 생물들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이사야처럼 각기 여섯 날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에스겔과는 달리 그들이 각기 한 얼굴씩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본 각기 다른 네 얼굴은 에스겔이 본 얼굴들과 동일한 것이었다. 즉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얼굴들이었다. 요한은 눈(目)이 가득한 바퀴를 보지 못했다. 요한에게는 네 생물 자체가 “눈이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151.9)
 어느 경우이건 생물들의 모양은 아마 상징적인 것이었을 것이다(이 동일한 묵시에서 예수님은 사자와 어린 양으로 나타나 있는데 각각 그의 능력과 온유함을 동시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151.10)
 사람의 얼굴은 생물의 지성을 상징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자의 얼굴은 그들의 힘을, 소의 얼굴은 그들의 봉사 정신을, 독수리의 얼굴은 그 민첩성과 통찰력을 상징했을 것이다. (152.1)
 요한도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네 생물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요한은 말하기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8)하였다. 이 생물들은 그 가득한 눈과 초자연적인 시력을 가지고 우주에 가득한 만물들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장면이 바뀌어질 때마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152.2)
 4중창단(四重唱團)에 끼어 노래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알 것이다. 생물들의 4중창단의 일원이 된다면 얼마나 큰 특권이겠는가! 만물들의 한 복판, 곧 하나님의 보좌 측근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예가 될 것인가! 찬송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152.3)
 여기에서 요한은 그들이 꼭 같은 찬송을 반복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두 장(章)에 걸쳐 요한계시록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 안에서도 그들의 찬송의 말들이 다르고 또 “아멘”이라고 말하고 있다. 6장에서는 그들이 일곱 인에 대한 요한의 이해를 돕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현상은 그 다음에도 계속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기쁨인 것이다. 그들이 볼 때 이 우주에는 찬송하고 노래할 아름다움과 자비가 너무나 많았다. (152.4)
 사단은 한때 “생물” 의 하나였다
 에스겔 28장에 보면 아주 오래 전에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던 그룹 또는 생물의 하나가 수치를 당해 그 자리에서 쫓겨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빛의 지참자인 루스벨이다(사 14:12, 흠정역). 루스벨은 사단으로 타락하기 전에 그룹 천사로서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겼었다. 에스겔 선지자의 설명은 영어 개역 표준 성경(R. S. V.)에서 보다는 N. I. V.(New Intermational Version)에서 더 잘 번역되었다. (152.5)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聖山)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땅에 던졌도다.
         (겔 28:14~17, N. I. V.)
(152.6)
 왜 그토록 특권을 입은 존재가 그 놀라운 행복의 특권을 헛되이 사용했는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152.7)
 그러나, 우리에게는 언젠가 하늘에서 한없는 행복을 누릴 특권이 제시되었다. 우리는 이 특권을 헛되이 하지 말도록 하자. (153.1)
 보좌에 앉으신 이
 요한은 이십 사 장로들과 네 생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 존재들의 생각의 일차적 대상이 보좌에 앉으신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요한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셨다. 그분은 궁극적인 중심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이셨다. (153.2)
 그리고, 그분이 관리자이셨다. 요한은 열 번 이상 하나님을 “보좌에 앉으신 이”라고 표현했다(4, 5, 6, 7, 20, 21장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그 보좌에라는 것이다. (153.3)
 요한의 뒤에 서서 그의 어깨 너머를 응시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백악관이나 크레믈린이나 버킹검 궁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우리는 TV를 통해 지상 지휘소가 우주선을 달로 향하게 하고 다시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대 우주의 지휘소인 하나님의 궁전에서는 수천억 개의 은하수들을, 그리고 그 하나 하나인 우주의 섬을 일일이 인도하고 있다. (153.4)
 천천 만만의 천사들
 요한은 하나님과 생물들의 말소리가 마치 우뢰소리 같다고 하였다(계 4:5; 6:1). 요한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요청에 응하기 위하여 발산하는 번개를 보았다(히 1:7을 비교하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 천사들을 어디로 보내는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 주변은 늘 이렇게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소심하고 소근거리는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될 것인가? 아니 우리가 소리치며 고뇌어린 소원을 아뢰어 본들 그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될 것인가? (153.5)
 죄가 진행중인 긴급 상황에서는 하늘의 모든 지원이 우리의 필요를 위해 집중되어 있다.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둘러싼 복잡한 활동은 하나님의 주의를 우리로부터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활동은 하나님에 의해 우리를 위해, 우리를 향해 지휘되고 있는 것이다. (153.6)
 하나님은 우주 안의 만물을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 부리고 계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롬 8:28, NASB). 하나님은 자신과 그 아들까지도 우리를 위한 봉사에 응하게 하고 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그리고, 하나님은 천사들도 우리를 위해 부리고 계시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 (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