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4장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과 슬픔이 많은 이 세상이 제 아무리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인다 해도 “높은 데 계신 누군가”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이가 계시다는 인식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150.1)
 우리는 다니엘를 읽을 때도 동일한 기별을 듣게 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단 4:25) 신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단 2:28). (150.2)
 다니엘은 사나운 짐승과 심판의 이상(異像)을 볼 때 옛적부터 계신 이가 좌정하신 보좌를 보았다(단 7:9, 10). 이제는 그 보좌를 사도 요한이 볼 차례이다.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고 그 열린 문 안에 보니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계 4:1, 2)다” 하였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요한에게 그 본 것을 우리에게 전하라 하셨으니 참으로 기쁜 일이다(계 1:11). 하나님은 요한과 우리를 격려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150.3)
 하나님의 보좌를 본 다른 사람들
 다니엘과 요한 말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를 본 사람들이 또 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로는 이사야, 미가, 에스겔이 있고 신약 시대에는 스데반과 바울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이사야는 묵시를 보고 쓰기를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스랍 천사들이 하나님을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었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하고 창화하였다고 했다. 이사야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이 죄 많음을 깊이 회개하게 되었다(사 6:1~5). (150.4)
 이사야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보좌가 너무나 거룩한 곳이었다. (150.5)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인 하나님의 보좌는 매우 역동적인 곳이었다. 그는 그 곳의 번쩍거리는 숯불과 횃불, 여러 겹으로 된 초자연적인 바퀴, 높이 날아다니는 생물들, 광채가 특이한 무지개,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에 완전히 압도되었다(겔 1장). (150.6)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에게는 하나님의 보좌가 매우 친근한 곳으로 보였다. 스데반은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기 직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를 볼 수 있었다. 보좌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본 그는 크게 기쁘고 용기를 얻은 나머지 핍박자들을 향해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고 소리질렀다. 요한이 본 보좌의 광경도 이와 유사하였다. 교회의 시련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 옆에 서 계셨다. (150.7)
 유리 바다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유리 바다가 있는 것을 보았다(계 4:6). 이 바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유리로 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유리와 다르지만 유리처럼 반사하는 물질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요한은 지중해 바다가 불타는 유리 바다로 변하는 지중해의 일몰 광경을 자주 보았었다. (150.8)
 하늘에 있는 유리 바다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벽옥과 홍보석 같”은 광채와 보좌를 두루고 있는 무지개의 녹보석 같은 광채와 보좌의 주변을 오락가락 하는 천사들의 섬광 같은 모습들을 아직도 반사하고 있다. 필자는 언젠가 그 바닷가에 서 보는 것이 소망이다. (150.9)
 여러분들도 그 곳에 서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그 기회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셨다(계 17:9; 15:2). (151.1)
 이십 사 장로
 요한이 보니 하나님의 보좌 가까운 유리 바다 위에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이십 사란 수자를 보니 구약 시대에 다윗 왕이 제사장들을 조직화한 이십 사 반차(班次)를 생각하게 된다(대상 24장 19절). 요한이 본 하늘 성소의 이십 사 장로들은 유대의 제사장들처럼 향이 가득한 금대접(향로)를 들고 있었는데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 했다(계 5:8). (151.2)
 영어 흠정역 성경을 보면 이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노래하여 말하기를 “각∙∙∙나라 가운데서 우리들을 당신의 피로 구속하시고∙∙∙우리로 제사장을 삼으셨다”고 했다. 이 번역은 매력적인 결론에 이르고 있다. 즉 이십 사 장로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시키실 때 죽음에서 부활시킨 사람들 중에서 뽑힌 인간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부활의 일요일에 상당수의 신실한 사람들이 부활했으며 예수님께서 그들을 하늘로 데려가셨다(마 27:51~53; 엡 4:8). (151.3)
 그러나, 성서 학자들이 한가지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바는 이십 사 장로들이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피로 샀다고 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이 아니라 저희를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을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의 희랍어 원어도 학자들의 입장과 일치하며 현대의 여러 번역들도 희랍어 원어의 뜻을 따르고 있다. (151.4)
 그러나, 비록 이십 사 장로들이 반드시 인간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친구들인 것은 틀림없다. 그들은 기도로 우리를 지원하고 있다. 요한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들이 상징 적으로 향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고마운 존재들임이 분명하다. (151.5)
 네 생물
 보좌의 사면에, 그리고 이십 사 장로들이 둘러싸고 있는 안쪽에 “네 생물”이 있었다. 이들은 요한이 일찌기 본 어떤 존재들과도 같지 않았다. (151.6)
 그러나, 그는 전에 그들에 관해 읽은 일이 있었다. 그들은 이사야가 보았던 천사들 즉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라고 노래하던 스랍 천사들이 었다. 스랍들은 각기 여섯 개의 날개를 갖고 있었다(사 6장 seraphim은 히브리어 seraph의 복수형이다).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