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4장 그리스도교가 이교화되어 가는 과정 제4절 성경에 최초로 나타난 태양신 부활절 축제 행사
“일곱 교회의 이름들은 교회가 창설된 시대 이후부터 각기 다른 기간 시대의 교회를 상징한다.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함을 가르치는 동시에, 세계 역사에 있어서 시대적으로 종말까지 있을 그 긴 시대의 기별들 속에 드러난 실상을 상징하며, 또 각기 다른 기간 시대의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데 사용한 상징이다.”14)
(364.4)
 따라서 ① 에베소 교회는 사도 시대 교회로서 일명 순결 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100년경까지를, ② 서머나 교회는 핍박 시대 교회로서 일명 순교 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313년경까지를, ③ 버가모 교회는 세속화 시대 교회로서 일명 정‧교 야합 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538년경까지를, ④ 두아디라 교회는 부패 시대 교회로서 일명 암흑 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1560년경까지를, ⑤ 사데 교회는 종교 개혁 시대 교회로서 A.D. 1790년경까지를, ⑥ 빌라델비아 교회는 재림 운동 시대로서 A.D. 1840년경까지를, ⑦ 라오디게아 교회는 조사 심판 시대로서 그리스도 재림시 까지를 상징한다. (365.1)
 여기서, 버가모 교회 시대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박해 중지령 곧 “밀라노 칙령”이 내려진 A.D. 313년부터 시작된다. 이 시점으로부터 그리스도교는 이교의 각종 풍습과 미신과 점성술, 그리고 철학사상으로 더렵혀졌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의 교부 철학(또는 교부신학)은 그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는 성경에 나타난 복음 기별을 헬라의 철학, 특히 플라톤의 사상으로 설명한 것으로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설이 이 기간에 그리스도교에 도입되어 일요일 예배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교의(Dogma)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365.2)
 b. “발람의 교훈”
 맥스웰(Maxwell)은 그의 대작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365.3)
“일곱 교회를 상징적으로 이해한다면 니골라당과 발람의 무리의 죄도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시대의 이방 나라들과 종교와 정치적인 동맹을 맺는 악행을 저질렀을 때 ‘간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겔 16, 23장).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순결을 주변 민족의 철학과 부도덕과 위압적인 수법을 빌어 욕되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포기했다.... ‘니골라당’이니 ‘발람’이니 ... 하는 낱말들은 모두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독교의 배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들이다.”15)
(365.4)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366.1)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게 된 경로는 현대 이스라엘인 그리스도교의 타락 경로와 그 양상이 비슷했다. 구약 민수기 22장-25장에 나타난 모압 나라 군주 발락과 “불의의 삯”을 탐했던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의 야합은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세속적 명예욕이 강했던 교회사가 유세비우스 감독과의 사이에 진행된 야합과 비슷했다. (366.2)
 영국의 신학자 뉴만(John Henry Newman, A.D. 1801-1890)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366.3)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 종교를 이방인들에게 추천하기 위하여 그들과 친숙한 예배용 장식들을 교회 내에 이끌어들인 사실을 여러 가지로 말해준다.... 특정한 성자들에게 바쳐진 신전들을 사용할 것, 나무 가지를 장식하는 것, 향, 등잔, 촛대, 병 치료를 위하여 봉헌한 물, 거룩한 물, 보호소, 성일들 절기들 역법의 사용, 행렬기도, 성의와 체발과 결혼반지에 강복을 기원하는 일, 동방경배, 후일의 우상숭배, 교회의 송가 등은 다 이교적 기원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이를 채용함으로써 성별되었다.”16)
(366.4)
 버가모 교회 시대(A.D. 313-538)의 현대판 “발람의 교훈”을 재연한 것들을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66.5)
  a.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재위 A.D. 270-274)가 A.D. 273년에 페르시아 사람들의 태양신 미트라의 탄신 경축일인 양력 12월 25일을 로마 제국의 공식 국경일로 제정 공포했다.17) (366.6)
  b. 황제 콘스탄티누스(재위 A.D. 306-337)가 A.D. 321년에 태양신 예배일인 “태양의 날”을 로마 시민의 공공 휴업일로 제정 공포했다.18) (367.1)
 c.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재위 A.D. 379-395)가 A.D. 392년에 「제3의 새 종교」로 변신된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승격시킴으로써 교회가 완전히 부패하기 시작하였다.19) (367.2)
 d. 이 모든 이교의 제도와 교의가 그리스도교화 되면서 로마 법왕은 로마 역대 황제의 대 사제직 공식 칭호인 최고 사제장인 “폰티펙크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를 사용했다.20) (367.3)
 ① 로마 교회 법왕 실베스테르(Sylvester)는 A.D. 325년에 교서를 통해 일요일을 “태양의 날”이라고 하지 말고 “주의 날”이라고 호칭할 것을 명령했다.21) (367.4)
 ②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주재로 열린 A.D. 325년의 니케아 총회에서 반드시 일요일에 부활절을 지키도록 명령, 공포했다.22) (367.5)
 ③ A.D. 336년 또는 A.D. 354년에 태양신 미트라의 탄신일인 양력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신일이라 하여 크리스마스(Χ-mass)로 경축할 것을 명했다.23) (367.6)
 ④ A.D. 425년 에베소 회의에서 여신 이시스(바빌로니아의 이쉬타르,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가나안의 아스다롯, 프리기아의 키벨레, 로마의 비너스, 시리아의 아스타르테) 등 이교의 여신을 마리아로 통합 개칭, 성모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추앙, 숭배키로 했다.24) (367.7)
 그 외에 이교의 우상을 사도의 이름으로 개칭하고, 제일을 모두 성자의 제일로 고쳤다. 감독과 사제의 화려한 복장들은 모두 이교의 사제들이 착용했던 것이다. (3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