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과 기독교 신앙 ― 왜 하필 제칠일 안식일인가? 제 3 부 바울과 안식일 제 2장 골로새서 2장 16절의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겉모양과 참된 본질 사이의 대립 개념은 골로새교회에서 처음으로 논의되었던 주제가 아니다. 정작 이 개념은 플라톤 철학의 핵심적 가르침으로서 헬레니즘 시대에 자주 강조되던 주제였다. 참된 존재는 이데아이며 따라서 그 참된 존재가 이 세상에 던진 그림자를 참된 존재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림자는 우리의 육체로 인식되는 것들이다. 이 본질과 그림자의 대조를 묘사하기 위하여 가장 빈번히 사용된 개념이 그림자(akia)와 형상(eikon)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 대신에 몸(soma)과 형상(eikon) 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컨데 필로(Philo)는 알레고리적 해석을 논의하면서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을 “몸의 그림자”와 같다고 설명하였다. (322.4)
 아마도 이 모형과 원형 사이의 관계가 골로새 “철학”의 가르침의 핵심적인 사항이었던 것 같다. 골로새 철학의 주창자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했을 것이다. “천사의 숭배”와 의문(regulations)의 준수는 모형이고 충만(2:9,10)은 원형이다. 그리고 인간은 세상의 “초등학문”(elements of the universe)에의 복종을 뜻하는 모형(그림자)를 통해서만 충만(the pleroma)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323.1)
 골로새서 2장 16절에 대한 근래의 강력한 주장들
 율법(law, nomos)이란 단어가 로마서에만 70회나 등장하고 갈라디아서에서는 30회나 등장하는데, 골로새서에는 율법이란 단어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다. 골로새서에서는 구약의 어떤 명령과의 관련 속에서도 계명이란 낱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사도 바울의 핵심적 논점은 “철학”의 계율들과 천사 숭배의 세상 초등학문에 대한 경고일 뿐 율법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바울은 특정한 절기들이나 날 등 거룩한 시간들을 엄수하기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을 금욕주의적으로 규제하는 따위의 여러 가지 “헛된 속임수”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323.2)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골로새 이단들의 명령은 골로새서의 문맥에서 볼 때, 안식일을 하나님의 선민의 표로 강조하는 토라(Torah)에 근거한 명령이 아니다. 골로새 이단들은 히브리 성경의 원칙에서 이 성일들의 준수를 주장했던 것이 아니라 별들의 운행을 지도하고 달력의 순서를 규정하는 우주의 요소들(초등학문)을 경배하기 위해 지켜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323.3)
 골로새서 2장 16절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구절의 문맥이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하는 2장 4절의 경고의 말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 경고는 다시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쫓음이요 그리스도를 쫓음이 아니니라”고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골로새서에서는 “사람의 유전”들이 논쟁의 핵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은 시내산의 십계명도 아니고 모세의 율법도 아니다. (324.1)
 우리는 아래와 같이 열쇠가 되는 성경절이나 관련 개념들이 골로새서 2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4절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8절 “아무도 너희를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라”, 16절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치 못하게 하라”, 18절 “너희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8절 “사람의 유전”, 22절 “사람의 명과 가르침”, 8절 “세상의 초등학문”, 15절 “정사와 권세”, 18절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20절 “세상의 초등학문”, 16절 “먹고 마시는 것”, 21절 “맛보지도 말고”, 23절 “몸을 괴롭게 하는데”, 9절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쫓음이요 그리스도를 쫓음이 아니니라”, 9절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7절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 18절 “천사 숭배”, 19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324.2)
 이상과 같이 병행 절들을 배치해 놓고 보면 16절이 다른 관련 절들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16절을 시작하는 “그러므로”“우리를 다스리는” “모든 의문들”(규칙들, 법률들)이 그리스도가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렸을 때”(무장해제 시켰을 때) 무효화 되었다는 14절15절의 주장이나 심지어는 “천사 숭배”와 관련하여 “먹고 마시는” 문제와 성일들을 지키는 문제와도 연결되고 있다.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16절)는 충고는 4, 8, 18절과 평행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구절들에서는 “누구든지 . . . 못하게 하라”고 반복되고 있다. 16절에 들어 있는 일련의 문제들은 “조금도 유익이 없는”(23절) “사람의 명과 가르침”(22절)인 “의문규칙들에 순종(굴복)하는 것”(20절)과 같은 문제들이었다. “세상에 사는”(아직도 세상에 속한, 20절)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문제들이었다. (325.1)
 간단히 말해서 골로새서의 쟁점은 그리스도인은 천사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날들과 관련하여 금욕주의적인 인간의 계명을 실천함으로써 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바울은 인간의 그와같은 계명들을 마땅히 무시하여야 하며 먹고 마시는 것과 날들을 지키는 것과 관련하여 사람이 만든 이 규칙들을 무시한 까닭으로는 어느 누구도 편벽되게 판단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325.2)
 골로새서 2장 16절의 첫째 부분이 모든 형태의 먹고 마시는 일을 정죄하지 않고 있는 것과 똑같이 2장 16절의 마지막 부분도 모든 형태의 안식일 준수를 결코 정죄하고 있지 않다. 바울은 오직 먹고 마시는 일과 성일을 준수하는 일이 금욕주의와 천사 숭배를 위한 규정들과 연관되고 있을 때만, 그리고 지나간 시대의 유대교와 연관되고 있을 때만 그러한 일들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325.3)
 골로새서 2장 16절을 이해하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그것은 이 규칙들(규정들)과 의문들을 유대교적인 규칙들과 이교적인 규칙들이 다 포함된 것으로 보는 방식이다. 골로새서 2장 14-16절 전체의 관점은 우리의 양심을 고소하는 범죄는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피로 도말되었으며 따라서 계율적인 정신으로 꼼꼼하게 규칙들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은총을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326.1)
 유대교의 규칙들이나 골로새 이단의 규칙들에는 다같이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채무관계에 있다는 정신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 대한 부채의 증서를 다 취소시켰다. 첫째로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에 기초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채권자이고 우리가 채무자라는 관념 위에 세우지 않았음을 예수 안에서 보여주셨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주의 권능들과 정사들”(15절)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그 권세들의 편에 서기 위하여 지키는 규칙들은 헛된 일이다. (326.2)
 골로새서 2장 16절에 대한 어떠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넷째 계명은 손상되고 있지 않다. 안식일은 유대교의 제의적인 부가 규칙이나 사람의 계율적인 전통으로부터 자유한 것이다.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기쁨으로 끼치는 하나님의 선물과 요구로 남아 있다. (3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