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표상학은 고조된 상응점들과 관련된다.
 원형은 표상보다 크다(예수께서 자기를 성전이나 선지자나 왕“보다 더 큰 이”[마 12:6, 41, 42]라고 선포하신 것을 참조하라). 이것은 베드로가 여성들에게 사라처럼 깨어 있고 단정하라고 격려했던 것과 같은 영적 예증이나 비교와 구별되어야 한다(벧전 3:1-6). 사라는 모본, 행위의 모델이지만 표상은 아니다. (114.4)
 (5) 표상은 실체의 예표로 기능하도록 하나님이 지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많은 비평 학자들이 표상학이라고 부르는 자연적인 유비와는 차이가 있다. 성경에 유사하고 비슷한 환경이 많이 있지만, 신약 기자들은 하나님이 그것들의 실체적인 성취를 미리 보여 주도록 고안하신 역사적 실체들을 가리키는 말로 “표상”이라는 용어를 지정해 두었다. (114.5)
 구약의 인물, 사건, 제도의 표상학적 성취를 탐색 할 때 신약 기자들은 구약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약 속으로 거꾸로 읽어 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구약에 충실하게 남았고, 그것은 이미 사람, 사건, 제도들이 표상으로 기능하도록 하나님이 고안하셨음을 지시하였다. 신약 기자들은 이미 구약 선지자들에 의해 이미 지시된 것의 실체적인 성취를 단순히 선포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요한은 예수가 모세의 실체라고 선포하고 메시아가 새 모세일 것이라고 예고한 신명기 18:15-19을 인용한다(참조 요 1:21; 6:14). 또한 히브리서 8:5는 땅과 하늘의 성소 사이의 표상학적 관계를 선언하고, 구약에 있는 성소 표상학의 지시자인 출애굽기 25:40을 인용함으로 요점을 입증한다. (114.6)
 신약 기자들은 구약 표상학의 목록을 모두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약의 지시자에 의하여 통제되는 성경적 표상을 확인하는 절차의 해석학적인 과정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예수와 신약의 기자들은 영감 아래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에서 후기의 사건들의 표상이 되도록 지정하신 신약의 사건들을 지적한다(예를 들면, 세계 종말의 표상이 되는 예루살렘의 멸망[마 24장]). (114.7)
 신약의 모든 기자들은 표상학적 성취의 성격을 선포할 때 동일한 종말론적 체계 안에서 일하였다. 구약 표상들의 한 가지 종말론적 성취는 세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1) 초림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 기본적 성취,

   (2)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교회 안에서 파생된 측면의 성취,

   (3)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후의 최종적이고 영광스러운 성취.

 따라서 예를 들면, 예수는 실체적인 이스라엘이다(마 2:15).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갈 6:16); 종말 시대의 십사만사천은 실체로서의 이스라엘의 12지파이다(계 7장; 14:1-5; 15:1-4). (114.8)
 역사적(또는 수평적) 표상의 참된 것은 마찬가지로 수직적인 차원, 다시 말해 성소 표상학을 수반하는 표상학의 참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실체적 성전이다(요 1:14; 2:21; 마 12:6). 그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17; 고후 6:16).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인간과 함께 계시는 묵시적인 “하나님의 거처”를 묘사한다(계 21:3). 그러나 성소 표상학 안에는 하나의 부가적 측면이 있다. 하늘 성소는 땅의 성소가 있기 전에 존재했다(출 25:40; 히 8:5).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통하여 대단히 중요한 수직적 차원이 있다. 구약의 땅의 성전은 위를 향하여 하늘의 실체를 가리키고, 마찬가지로 앞을 향하여 그리스도, 교회 그리고 묵시적 성전을 가리킨다. (115.1)
 표상의 모든 세세한 부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표상학적으로 하늘 성소에 상응하는 세 종류의 지상 성소/성전이 구약에 있다(모세의 성막, 솔로몬 성전, 에스겔 40-48장의 종말론적 성전). 각각의 것은 다르나(사용된 재료, 기구의 수효, 차원 등) 기본적인 윤곽에는 변함이 없다(칸의 수효, 기구의 종류, 공간 비율, 의식과 참여자, 거룩한 시간 등). 이 공통적 요소들은 성소 표상 표상학의 기본 윤곽을 가리키며, 이것은 히브리서 9:1-7에 요약되어 있다. (115.2)
 c. 상징
 상징은 본질적으로 무시간적인 진리를 대표한다. 따라서 어린양은 무죄, 뿔은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상징들은 자주 예언과 표상학을 건축하는 벽돌이다. 따라서 성소의 어린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 1:29). 다니엘서의 네 뿔과 작은 뿔은 특정한 정치적 혹은 종교·정치적 세력들을 대표한다(참조 묵시문학 II. E). (115.3)
 성경의 상징들을 해석할 때, 기본 원리들이 성경 자체의 용법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다. (115.4)
 d. 비유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기록된 대로는 예수의 교훈 가운데 3분의 1이 비유 형태이다(약 40개의 비유). 우리는 구약에서도 비유들을 발견하는데, 나단의 작은 암양의 비유(삼하 12:1-4)와 이사야의 포도원 비유(사 5:1-7) 같은 것들이 있다. “비유”를 가리키는 구약의 용어인 마샬은 잠언에서 보통 “잠언”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따라서 예수의 비유의 배경이 되는 지혜를 나타낸다. “비유”를 가리키는 신약의 단어는 파라볼레인데, 그것은 비교할 목적으로 “나란히 놓음”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지닌다. (115.5)
 비유 장르에는 다양한 형식이 있다. 잠언(“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눅 4:23]), 은유(식물의 뿌리를 뽑음[마 15:13]), 비유적인 말씀(포도주 부대의 비유[눅 5:36-38]), 비유 혹은 직유(겨자씨의 비유[막 4:30-32]), 이야기 비유(열 처녀[마 25:1-13], 선한 사마리아인[눅 10:29-37]), 풍유적 비유(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 4:1-9, 13-20]) 등이 있다. 예수가 사용한 모든 형식들은 한가지 공통적 요소를 지닌다. 그의 왕국의 진리들에 대한 비교를 끌어내기 위해 일상 경험을 사용한다. (115.6)
 예수의 많은 비유들은 오직 한 가지 요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예수에 의해 혹은 복음 기자들에 의해 진술되었다(마 18:35; 20:16; 눅 15:7, 10; 16:31). 그러나 여러 가지 요점을 가진 것들도 있다(예컨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 13:1-23). 이야기 부분들에 대한 의미 부여는 이 경우에는 분명하게 정당화 된다. 왜냐하면 예수는 좀 더 깊은 차원의 의미를 의도하였고 그것의 해석을 통해 지적하였다. 이것은 풍유로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풍유는 해석자가 원래의 기자가 결코 의도하거나 가리키지도 않은 좀 더 깊은 차원의 의미를 본문 속에 읽어 들이는 것이다. (115.7)
 F. 각 시대를 위한 적용
 1.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는 성경
 예수와 신약 기자들에게 그 시대적 적용은 구약 구절들에 대한 그들의 신학적 해석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115.8)
 성경 기자들은 성경의 신학적 기별이 문화에 묶여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어떤 특정 민족과 특정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베드로는 이사야 40:6-8을 인용하면서 이 진리를 강력하게 진술하였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1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