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하나님은 무기력과 죄로부터 그의 백성을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조치처럼 보이는 것들을 사용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것으로 바벨론 포로 전 최후의 기간 동안에 있었던 에스겔의 여러 가지 징조적인 행동이 있다(겔 4; 5장). 하나님은 북왕국의 유예기간의 최후시기에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고 호세아에게 명령하셨다(호 1:2). (112.3)
 이 원칙은 아마 모든 백성을 공포 속에 떨게 만든 시내산에서 극적으로 나타나심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출 19:16-19). 출애굽기 20:20에서 모세는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언어유희로써 사용하는데, 그것은 이중 의미를 갖고 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동시에 시내산에서 보인 능력과 위엄은 하나님의 품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소멸하는 불이시다(신 4:24; 히 12:29). 시내산의 신적 현현은 그의 놀라운 거룩성에 대한 희미한 반사에 불과하다. (112.4)
 g. 아직 충분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점이 여전히 있지 않는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을 하나님이 왜 그런 식으로 처리하시는지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 무죄한 이들의 고난과 어린이와 순교자의 죽음, 이 세상에서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악인들의 잔인한 행동과 같은 문제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때까지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어떤 문제들과 신적 행동들은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분이 왜 그렇게 행동하셨는지 또는 왜 행동을 하지 않으셨는지에 대해 대쟁투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이 친히 나타내실 때까지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 속에 충분한 증거와 대답이 제공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반향(反響)할 수 있다.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3). (112.5)
 3. 성경 자체 너머를 가리키는 성경
 이 부분에서는 예언과 표상학처럼 그것들 자체를 넘어서는 성취를 가리키는 성경의 부분들을 살펴보고, 상징과 비유처럼 그것들 자체를 넘어서는 확장된 의미를 지닌 성경의 부분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13.1)
 a. 예언
 성경의 자기 증거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일반적 관찰이 예언적 자료들의 기초가 된다. 첫째, 성경은 특별히 하나님이 가깝고 먼 미래를 예고하실 수 있다고 주장한다(사 46:10; 단 2:45; 8:17-19; 계 1:19). 해석자는 미래 예고와 신적 예지를 거부하는 현대적 사상에 거절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둘째, 예고적인 예언은 단순히 미래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확립하고(요 14:29)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개인적인 거룩을 증진시키는 도덕적 목적을 위해서(마 24:44; 계 22:7, 10, 11) 주어졌다. 셋째, 예고적 예언의 해석을 위한 통제는 성경 자체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예언의 성취는 정확한 것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예언적 자료와 철저하게 일치해야한다. (113.2)
 넷째, 예언서들의 문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보강 자료들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은 교차대구법적 배열에 비추어 보면 대쟁투의 역사적인 전개와 종말론적인 전개를 보여 주는 두 부분을 포함한다. 더 나아가 요한계시록의 책 전체의 구조 역할을 하는 도입부의 성전 장면들은 역사의 흐름 중 어디에서 각 부분이 시작하는지를 드러낸다. 또 다른 예로, 아모스의 문학 구조 안에서 교차대구법의 정점은 5장이다. 여기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열렬하게 촉구하는데, 그것은 명백하게 아모스 예언의 조건적 성격을 보여 준다. (113.3)
 다섯째, 성취되지 않은 예언과 관련해서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모든 예언의 일차적인 도덕적 목적과 관련된 예수의 권면은 적절하다. 예언이 주어진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요 14:29)함이다.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비록 사건의 기초적인 윤곽과 문제가 명백하다고 할지라도 예고된 것들의 모든 상세한 사항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113.4)
 성경에는 예언의 두 가지 장르, 즉 “고전적 예언”“묵시적 예언”이 있다. 이 장르들을 위한 해석학적 규칙은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의 구별법에 대해서는 성경의 묵시문헌에 관한 논문에서 논의되었다(참조 묵시문학 II. A-F). (113.5)
 b. 표상학
 성경 표상학의 기초적인 특성은 신약 기자들이 그들의 구약 해석에 대해 튀포스(“표상”) 혹은 신약의 성취를 안티튀포스(“실체”)라고 표시한 성경 구절들 안에 나타난다(참조 롬 5:14; 고전 10:6, 11; 히 8:5; 9:24; 벧전 3:21). 성경 표상학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원형의 종말론적 성취과 그리스도에 의해 도래한 복음의 실체를 예고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구원 역사 안의 인물, 사건 혹은 제도를 연구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113.6)
 성경 표상학은 성경에 대한 다른 연구법들과 비교함으로 더욱 분명하게 될 수 있다. 표상학의 다섯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113.7)
 (1) 표상학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표상학은 그것이 다루는 인물, 사건, 제도의 실제적인 역사적 성격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표상학은 풍유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풍유는 명백한 역사적 의미를 폄하하거나 거절하기까지 한다. (114.1)
 (2) 표상[예표]은 앞을 가리키거나 예고적으로 예시한다.
 이것은 상징과 대조되며, 상징은 그 자체가 무시간적인 진리를 대표한다. 그러나 상징도 특정한 표상학적 맥락에서 사용된다면 표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양은 온유와 무죄를 상징한다. 성소와 관련해서 양은 하나님의 어린양 곧 메시아에 대한 상징적 표상이 된다. (114.2)
 (3) 표상은 예표하지만, 명시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예표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예고적인 예언과 차이가 있다. 표상과 예고적 예언은 모두 미래를 가리킨다. 그러나 표상은 무언의 것이고(인물, 사건 혹은 제도로서) 예고는 언어적인 것이다. 표상학과 언어적 예고는 함께 손을 맞잡고 간다. 왜냐하면 각각의 표상은 성경의 어떤 언어적 지시자에 의해서 식별되기 때문이다.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