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문학적 구조적 분석
 때때로 어떤 책의 문학적 구조는 그것의 신학적 기별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거나 그 책의 중심이 되는 신학적 요지를 결정하는 열쇠가 된다(참조 III. C. 3). 한 예로, 신명기는 그 시대의 국제적인 종주권 조약의 양식에 따라서 구성 되었다는 것을 많은 구약 학자들이 분석하였다.

   (a) 전문 또는 종주 소개(신 1:1-5)

   (b) 역사적 서언 또는 과거에 종주가 봉신에게 베푼 혜택들에 관한 진술(신 1:6-4:49)

   (c) 일반적인 조항(신5-11 장)

   (d) 세부 조항(신12-26장)

   (e) 축복과 저주(신 27; 28장)

   (f)증인들(신 30:19; 31:19; 32:1-43). (110.4)
 이 책의 문학적인 조약 구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 관계에 대한 필수적인 신학적 요점들을 강조한다. 햇 언약들 속에서 순종에 대한 요구는 종주가 이미 봉신을 위해 행한 것에 대한 감사의 동기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은 그가 어떻게 출애굽 때 이스라엘을 구속 하셨는가를 검토한 후에 주어졌다. 따라서 백성은 구속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미 구속을 받았고 이제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에 대하여 감사로 응답하는 차원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이렇게 신명기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구속적 은총이 우선됨을 지지한다. (110.5)
 둘째 예로, 오경의 교차대구법적 구조는 하나님의 계시의 정점으로 레위기를 지적한다. 레위기 안에서 레위기 16장에 기술된 속죄일은 교차대구법 구조의 정점이다. 유대력에서 가장 거룩한 날에 땅 위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대제사장)이 1년 중 가장 거룩한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땅 위에서 가장 거룩한장소(지성소)로 들어가는 날, 이 날이 토라의 중심 장으로 보존되어 있다. 레위기 안에서 그것의 위치는 속죄일에 관한 균형 잡힌 신학적 조망을 제공하는데, 한쪽 측면(레 1-15장)은 지속적으로 피와 제사를 언급하고 있고, 다른 측면(레 17-23장)은 거듭거듭 성결[거룩함]로 요청한다. (110.6)
 2.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구절들
 명백하게 문제가 되는 신학적인 구절들을 취급할 때,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문제나 진리의 왜곡처럼 보이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음 질문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110.7)
 a. 성경에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 특별히 갈보리에 나타난 것은 어떤 것인가?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품성을 가졌고(요 14:9),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요 8:58). 대단히 중요한 대쟁투의 맥락 속에서 올바로 이해하면, 성경의 모든 구절들은 일관되고 한결같은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낼 것이다(참조 대쟁투 I-V). (111.1)
 b. 성경의 다른 곳에서 혹은 성경 밖의 자료에서 문제가 되는 구절에 타당한 부가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주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때때로 난해하게 보이는 성경의 문제는 성경의 모든 사실들을 고려할 때 명확해진다. 그 한 예가 웃사의 죽음이다. 얼핏 그는 법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위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손을 뻗은 것처럼 보이지만(삼하 6:3-7), 법궤가 웃사의 아버지인 아비나답의 보호 아래 웃사의 집에 20년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삼상 7:1, 2; 삼하 6:3). 이 시기 동안 웃사는 거룩한 법궤의 신성성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친숙하기 때문에 불경건하게 되었다. 거룩에 대한 이와 같은 무시는 법궤 운반에 관한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어긴 것 속에 나타나 있다. 오직 제사장들만 법궤를 만져야 했고(민 4:15), 마차가 아니라 제사장들이 그들의 어깨로 법궤를 운반해야 했다(민 7:9).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불경건의 죄를 심각하게 취급하신다(참조 왕하 2:23, 24; 레 10:1-3). 왜냐하면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 기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111.2)
 좀 더 많은 성경적 자료가 신학적 문제에 대해 조명해 주는 다른 예를 시편의 ‘저주 시(imprecatory psalms)’에서 발견할 수 있다(시 35; 58; 69; 109; 139편).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대표자인 다윗은 단순히 인간적 진노를 터뜨린 것이 아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신명기 28장레위기 26장의 언약적 저주를 선포한다. 그는 하나님이 그분에게 반역한 자들에 대해서 약속하신 저주들을 가져옴으로 그분의 언약에 충실하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111.3)
 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조명하는 성경 밖의 한 예로, 정복 시대의 아모리 족속의 악함에 대한 그 시대의 증거들을 본다(창 15:16; 출 13:5). 라스 샴라(우가리트) 점토판들은 가나안 종교 의식 속에 있는 엄청난 부도덕성과 제어되지 않은 폭력에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들의 방탕함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의 호소에 반응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와 마찬가지로 자비하심 속에서도 심판을 집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선언하셨다. (111.4)
 c. 하나님이 온 몸을 구원하기 위하여 감염된 부분을 잘라 버리는 신적 외과의사로 활동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자녀들이 전적으로 불경하고 반역적인 때에 사형하는 이유로서 특별히 이 원칙을 주셨다.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 21:21). 고라, 다단, 아비람의 반역도 마찬가지였다(민 16장). 이 원칙은 앞의 원칙 아래에 언급된 이들과 아간(수 7장),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장)와 같은 다른 인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마찬가지로 설명한다.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사람을 처벌함으로 다른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처벌해야 할 필요를 방지하였다. (111.5)
 d. 히브리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해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가?
 구약 기자들은 근동의 인접 지역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신화적이고 다신교적인 신학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주 명백하게 그것에 대응했다. 마찬가지로 신약 기자들의 신학적 사고 양식은 헬라어로 표현되었지만 성경적 히브리 사상의 궤도 안에 머물렀고 영지주의와 플라톤적인 이원론 같은, 당시 지배적인 주변 문화의 이교적인 사고방식을 흡수하지 않았다. 해석자의 연구 목적은 고대 근동 헬라, 또는 현대적 사고를 성경의 히브리적인 사상 안에 읽어 들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히브리적인 사고방식을 인식하면 본문 안에 있는 수많은 명백한 문제가 해결된다. 예를 들면, 히브리적인 사고는 때때로 인과관계와 기능을 구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력하게 인정하면서 성경 기자는 때때로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행하시지 않고 단지 발생하도록 허락하신 것에 대해 그분께 행동의 책임을 돌린다. 따라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출 9:12)고 기술하고 있는 구절은 동일한 맥락에서 “바로가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다”(출 8:15, 32; 9:34)라고 한 구절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한 반복적인 호소에 반응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되도록 허용하였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결정(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을 내릴 수 있는 환경들(호소와 재앙들)을 가져다 주셨다. 또 다른 예로, 사무엘하 24:1은 하나님이 다윗을 격동시켜 이스라엘을 계수했다고 말한다. 역대상 21:1은 사탄이 그를 격동시켰다고 진술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욥의 불행과 고난을 직접적으로 초래하지 않았고, 사탄이 특정한 범위 안에서 행동하도록 허용하셨다(욥 1:6-12; 2:6). 그러나 야훼께서 직접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다”(욥 2:3). 히브리적인 사고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즉 하나님은 그의 절대주권 안에서 그가 허락하시는 것을 일어나게 하신다고 한 것이다. (111.6)
 e. 기술되고 있는 상황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400년간 회개할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주셨다(창 15:16).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손으로 저들을 멸망시킬 필요가 없도록 벌과 천사로 내쫓을 것을 의도하셨다(출 23:23, 28).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믿음 부족에 양보하여 덜 이상적인 조건 아래에서 일하셨으며, 언제나 그들을 이상 가운데로 돌아오게 하려고 애쓰셨다(참조 출 14; 15장; 왕하 19장; 대하 32장; 사 37장,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이상적인 방법을 살펴볼 수 있음). (112.1)
 동일한 원칙은 모세의 율법에서 하나님이 이혼을 허락하신 것을 설명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예수는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이 이혼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지적했지만,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셨다(마 19:8; 창 2:24). (112.2)
 f. 하나님의 행동은 그의 백성들이 그의 말씀을 듣도록 깨우기 위한 주의를 끄는 장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