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문학적 유형(비유, 예언, 묵시)은 아래의 신학적 맥락과 분석 부분에서 다루게 될 확장된 의미나 성취를 포함한다(참조 III. E. 3). (106.2)
 3. 문학적 구조
 단락이나 더 큰문학적 틀의 문학적 구조는분석에 중요하다. 그것은 때때로 생각의 흐름이나 신학적 중심 주제를 파악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106.3)
 신약의 편지서와 같은 성경의 산문 부분에서 그것은 주제와 부(副)주제 아래 정보의 주요 단위들을 조직화하여 구절의 개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개요로부터 의미 있는 사고 패턴들이 드러난다 구절의 한계를 확립하기 위해 사용한 많은 동일한 과정들은(참조 III. C. 1) 단락 안에서 작은 패턴들을 밝혀내는데 유용하다. (106.4)
 성경 자료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면 성경 기자들이 기술적 패턴 안에 절, 장 책들 혹은 책들의 부분들을 세심하게 구조화했음이 나타난다. 때때로 문학적 구조는 단락의 문학 형태의 기초적 요소들을 따른다. 예를 들면 선지자의 언약 소송(히브리어 리브)은 특정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미가서 6장(선지자가 리브라고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음. 1, 2절)은 이 기본적 소송 패턴을 따르고 있다. (106.5)
 시의 대구법에 기초한 두 종류의 문학적 구조에 대해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통적인 문학적 구조를 형성하는 한 가지 장치는 “블록 대구법” 또는 “패널 글쓰기”인데, 그것은 시의 개별 구절이 동의어적 대구법을 따른다. 여호수아서와 요나서 같은 성경의 책은 체계를 잡는 기법으로 “블록 대구법” 혹은 “패널 글쓰기”를사용하고 있음을발견할수 있다. 책의 첫 절반이 나머지 절반에서 반복되는 순서이다. 성경에서 또 다른 공통적인 문학적 체계화의 장치는 반전대구법(또는 헬라어의 X자 모양을 닮은 글자인 키에서 이름을 딴 카이애즘[chiasm], “교차대구법”)이다. 이것은 시의 연속적인 두 행이 반의어적 대구법의 패턴을 따른다. 개별 절 중에서 교차대구법의 ABCB1A1의 패턴을 가진 예는 아모스 5:5에서 도시들에 대한 “거울 이미지” 언급에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106.6)
 A 벧엘을 찾지말며

   B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C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B1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A1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106.7)
 이 구절은 아모스 5:1-17을 포함하는 좀 더 큰 교차대구법의 부분으로 분석되어 왔다. 아모스 5:1-17은 더 큰 교차대구법을 형성하는 아모스 전체의 일부분이다. 교차대구법 구조를 가진 시편은 50개가조금 넘으며, 그것은 성경의 다른 여러 장에서도 발견된다(창세기 6-9장의 홍수 이야기;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설교와 히브리서 6-10장). 최근 연구들은 성경의 다양한 블록에 속한 전체 성경책들이 교차대구법적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106.8)
 성경 기자들이 대구법을 사용해서 배열한 것은 영감 받은 기자의 주요 강조점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자주 대구법적 강조는 교차대구법의 중간 혹은 심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시편 92편(안식일을 위한 시)은 가운데 구절의 양편으로 일곱 절씩 있고, 각각은 시적 대구법으로 짝을 이룬다. 그러나 시의 중심을 이루는 확언, “야훼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나이다”(8절)는 시에서 상응하는 평행절 없이 대구법의 중심에 홀로 위치한다. 따라서 문학적 구조와 신학적 의미 모두에 있어서 시의 절정이 강조되고 있다. (106.9)
 성경의 대구법적 구조는 구조에 대응하거나 반복되는 부분 때문에 자주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구조의 전반부에서 분명한 것이 후반부의 상응하는 구조적 요소를 조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예를 들면, 스가랴서의 교차대구법적 배열은 핵심적인 구절의 메시아적 성격을 인정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왜냐하면 상응하는 구조적 요소는 명백하게 메시아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히브리서 6:17-20에서 예수께서 “휘장 안에” 들어가신 것에 대한 언급은 히브리서 10:19, 20에 있는 예수께서 “휘장 가운데로” 들어가신 것에 대한 상응하는 구조적 요소와 비교함으로 분명하게 된다. 두문단의 배경은하늘성소의 취임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107.1)
 해석자는 본문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구조를 본문 안으로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성경 연구자가 인위적으로 성경 자료 위에 어떤 개요나 구조를 억지로 만들 것이 아니라 본문 자체 안에서 활발한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내적 통제는 비슷한 대웅 주제, 개념, 모티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으로는 대응하는 키 워드와 단어 군(群)들을 포함한다. 언어적이고 구조적인 평행이 더욱 분명할수록 구조가 문단 안에 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기자가 의도적으로 구조를 짜냈는지 혹은 그들의 문학적 접근법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구조가 자발적으로 나왔는지 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감동하심으로 나왔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진 않다. (107.2)
 D. 절별 분석
 성경 연구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명백하고 직설적인 성경의 의미에 도달하는 것이다. 성경의 명확성이라는 원칙에 기초하여(참조 II. C. 3) 성경 기자가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으면 본문 그대로의 의미로 취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1:7에서 요한은 예수에 대해서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라고 했는데, 문맥은“환난”혹은다른상징적 의미를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인 구름을 말한다(상징을 분별하고 해석하는 법에 대해서는 III. E. 3. 3를 참조하라). (107.3)
 성경 구절의 자연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석자가 각 절을 주의 깊게 분석해야 한다. 문법과 구문의 중요한 요점들을 주목하고 문맥 속에서 키워드의 의미를살펴야한다. (107.4)
 1. 문법과 구문
 신약 기자들은 구약 원문의 문법적—구문론적 구조를 충실하게 제시하여 신약의 독자들에게 구약 본문의 명백한 의미를 제시하려는 저들의 관심에 대한 예들을 남겨놓았다. 신약 기자가 갖고 있는 문법적—구문론적 예민함의 생생한 본보기는 히브리서 1:8, 9시편 45:6, 7을 인용한 점이다. 사도는 히브리어 원문이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자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 신성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기름을 주께 부어”). 다른 예는 예수와 신약 기자들이 시편 110:1을 인용한 것이다(마 22:44과 공관복음의 평행절들; 행 2:34, 35; 히 1:13). 영감 받은 해석자들은 다윗의 말의 구문을 통해서 메시아적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하였다. “주께서[아버지] 내 주께[메시아] 이르시되∙∙∙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107.5)
 앞서 있는 성경의 예를 따라서 현대 해석자는 의도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문단의 문법과 구문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형식적(단어 대[對] 단어) 번역본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장의 구조에 관한 느낌을 얻을 수 있고, 문법이나 구문의 이상하거나 어려운 요소들을 발견 할 수 있다. (107.6)
 히브리어/아람어와 헬라어의 문법과 구문에 관한 철저한 지식은 물론 이상적이지만, 현재 준비되어 있는 여러 가지 학습 도구도 해석자에게 히브리어와 아람어의 언어 체계와 각 언어가 가진 독특한 문법적 특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함으로 구약과 신약 전체를 단어 대(對) 단어로 문법적 및 사전적 정보와 영어 번역 등의 면에서 분석할수 있도록한다. 원어나 현대 번역본에 기초하여 문법 도해 혹은 구문론적 표시를 준비하면 문단의 생각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와 같은 기계적인 정리는 예를 들면 문장 구조가 때때로 매우 복잡한 신약의 편지서 연구에 특히 유익할 것이다. (108.1)
 2. 단어 연구
 성경의 다양한 예들은 신약의 기자들이 구약의 문단의 중요한 의미들을 성실하게 대표하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였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 예를들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합4:17을 인용하고 있음), 이사야 7:14의 히브리어 알마를 가장 잘 대표하기 위해서 〈70인역〉의 파르쎄노스(“처녀”)를 마태가 선택한 것 그리고 그리스도가 “신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요 10:13, 시 82:6을 인용함). (1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