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Ⅴ 부 다윗: 상처난 왕의 몰락 (삼하 13-24) 제 10 장 강간과 복수, 반란과 귀환-제1편 (삼하 13-17)
 전통적 정의의 관념에서 본다면 압살롬은 유죄다. 첫째로, 그는 다말에 대한 암논의 강간을 복수할 고엘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고엘의 기능은 대가족의 원수들을 반대하는 것이지, 대가족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로, 압살롬은 피 흘린 죄를 얻었다. 왜냐하면 강간을 살인으로 처벌하는 것은 “눈은 눈으로”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신 19:21). (279.3)
 비록 그 여인의 이야기가 전통적 법률을 전적으로 따른 것은 아닐지라도, 특히 고엘에 관한 내용에 있어서, 그것은 이 땅에서 무죄한 피를 제거하고자 압살롬을 심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를 심판한다면, 비유가 암시하는 대로 위태롭게는 하지 않을 망정 왕위 계승 문제가 꼬일 것이다. 결국, 다윗에게는 압살롬 외에도 다른 아들들이 있었던 것이다. (279.4)
 그러나 그 여인은 다윗에게 그 계승의 문제를 강조하였다. 그것이 피 흘린 죄에 대하여 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상위의 개념이라는 논지였다. 만일 다윗이 그녀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는 그것을 정상적인 법률적 정의에서 왕가를 면책하라는 대단한 요구였다는 것으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결국 그것은 과거지사를 그냥 받아들이라고 다윗에게 요구하는 요압의 요구였을 수도 있다. (279.5)
 다윗이 자신을 선언에 포함시키려는 순간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여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아직도 본색을 감추면서, 그녀는 그녀의 남은 아들(압살롬을 뜻함)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원래 다윗은 아무런 결정 없이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었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삼하 14:8). (280.1)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 죄는 나와 내 아비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라고 그녀가 말했다(9절). (280.2)
 그래서 다윗은 결정으로 더 가까이 나아갔다: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 데려오라. 저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 못하리라”(10절). (280.3)
 거의 다 되었다—그러나 아직도 확실치 않다: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생각하사 원수 갚는 자로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하나이다”(11절)라고 여인이 말하였다. (280.4)
 그에 대하여 왕이 확언하였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1절). (280.5)
 이제, 여인은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왕은 추방당한 아들 압살롬을 데려와야 한다. 왕은 동의하였다—그러나 퉁명스럽게 요압이 이 일을 조종하였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 일 후에, 이 결정이 자기에 대한 다윗의 개인적 호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고, 요압이 즉시 나타나 왕의 결정에 감사하였다(22절). (280.6)
 그러나 전체적인 인상은 요압이 다윗과 그 집안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 여인이 “나와 내 아들을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서 끊으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에 이 “스루야의 아들”은 그 사람이 곧 자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다윗이 알기를 원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폴친은 제안한다(16절; David, 142). (280.7)
 그러나 저자는 17:14에서 압살롬에게 재난을 내리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다윗의 역적 아들을 돕거나 지지하는 사람은 여호와를 대항하는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것은 우선 요압을 고소하고 있고, 그를 지지하는 다윗을 또한 고소하고 있다. 다윗은 요압의 상대가 못된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그는 자기와 자기 나라에 불리한 결정을 짓는다. 이 경우에도, 그는 압살롬의 파괴적인 반란의 기초를 닦아주고 있다. (280.8)
 우선 요압을, 그리고 다윗을 몰아간 불투명한 동기를 고려할 때에, 다윗의 지혜를 극구 칭찬한 여인의 꾸밈 많은 말은 풍자적이다. 그녀는 두 번이나 그를 “하나님의 사자”와 비교하였다: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컨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14:17). 그리고 또 다시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20절)라는 말이 이어 나온다. (281.1)
 폴친(David, 141)은 이 따스한 칭찬의 말은 다윗의 하나님 같은 자질을 칭찬하는 다른 두 말에 의해 둘려 있도록 저자가 구성했다고 본다. 이전에, 아기스는 다윗의 고결함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삼상 29:9, 「새개정표준역」). 후에, 므비보셋이 경탄했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삼하 19:27, 「새개정표준역」). 다윗의 고결성에 대하여 아기스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는 사무엘상 27:8-12에 나타난다. 그리고 므비보셋의 진술은 사울의 소유에 관한 추측할 수 없는 다윗의 변덕스런 결정들의 맥락에서 나타난다: 므비보셋에게 다 주었다가(삼하 9) 충동적으로 시바에게 넘겼다가(삼하 16), 순식간에 다시 그 반을 므비보셋에게 주었다(삼하 19). 그리고 슬기로운 여인의 다윗의 지혜에 대한 언급은 11-12장에서의 다윗의 죄와 여호와의 약속하신 형벌 뒤에 바로 따라 나온 것이다. (281.2)
 요컨대, 이 세 경우에 있어서, 칭찬처럼 들리는 것이 모욕하는 것으로 변하는 풍자가 되었다.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좋은 것들을 말하였지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아기스, 드고아의 슬기로운 여인, 므비보셋은 모두 다윗을 높이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은 정직히 그런 말들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세 경우를 잘 배열하여 죄많은 인간들을 칭찬하는 많은 언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보게 하였다. (281.3)
 이 장은 압살롬과 그의 귀환에 관한 간단한 진술들로 결론을 내린다. 귀환한 유배자가 왕을 알현하지 못하도록 금지된 상황 속에서 저자는 그에 관한 잘 알려진 이야기를 기록한다: “온 이스라엘 중에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14:25). 우리는 그가 멋진 머리칼을 갖고 있으며, 그의 가족에는 아들 셋(이름이 안 나옴)과 “아름다운” 딸 다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27절). (281.4)
 그러나 2년 후에, 압살롬은 아직도 왕을 알현하지 못한 사실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요압은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압살롬이 요압의 보리밭에 고의로 불을 놓을 때까지(30, 31절). (282.1)
 두 사람이 만났을 때에, 압살롬은 자기가 그술에 유배되어 있는 게 더 나을 뻔했다고 선언하였다. “이제는 네가 나로 왕의 얼굴을 보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가하니라”(32절). 이 심한 말은 적중했다. 요압은 다윗을 만나도록 주선하였다. 압살롬은 절하였다. 다윗은 입을 맞추었다—그 입맞춤은 자기 아버지를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생각을 하는 데 필요한 계기(momentum)를 압살롬에게 주었다. (282.2)
 반란(15:1-12)
 15장은 압살롬의 오만함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시작한다.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1절). 성경의 침묵이 의미가 있다면, 심지어 다윗 왕도 말이 끄는 병거가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한 방법이었다(6절). 그는 그 일에 매우 힘을 기울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성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누구든지 불평이 있으면 압살롬은 그 불평이 “옳고 바른” 것이라고 인정해 주었다(3절). 왕은 정의를 베풀 관리를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이 땅의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4절). (282.3)
 압살롬은 왕이 되려고 운동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관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전부다. 아마도 그는 어린아이들에게 입맞추는 정치인들의 원조였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러 오는 누구에게나 인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5절). (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