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Ⅴ 부 다윗: 상처난 왕의 몰락 (삼하 13-24) 제 10 장 강간과 복수, 반란과 귀환-제1편 (삼하 13-17)
 다윗은 죄를 지었고 여호와께서는 그를 용서하셨다. 그의 죄의 결과는 무섭게 계속되었다. 그 결과에 대한 기록이 13-20장의 이야기이다. (267.1)
 다윗의 이야기의 이 대목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음모가 거의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먹칠한다. 오직 주변 인물들만이 우리의 호감을 산다—충성된 블레셋 사람 깃 사람 잇대(15:18-22); 너그러운 바르실래(17:27-29; 19:31-39). 다른 한 편으로는 오직 나쁜 소식이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다윗의 딸 다말을 강간하였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그의 형 암논을 암살하였다. 그리고 왕국을 취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몰래 계획을 세웠다. (267.2)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도피하였다. 요단 건너 다른 방향으로 “유배”를 떠났다. 고집이 센 요압은 전쟁에서는 살상하고 평화시에는 암살하고, 왕의 소원에는 반대하고, 왕도 모르게 행동하였다. 가끔 기분 나쁜 듯이 불평할 뿐이지 다윗은 결코 상관하지 않는다. (267.3)
 20장 끝에서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지낸다. 그러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것이다. 그의 귀환은 유다 지파와 북방 지파들(이스라엘)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 긴장은 다윗의 손자 르호보암 때에 드디어 왕국을 갈라놓는다. 20장의 마지막 삽화 속에서 요압은 베냐민 지파의 반역자 시바의 머리를 놓고 협상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왕”에게 돌아온다(22절). (267.4)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여호와에 대하여 어디서 들을 수 있는가? 대부분 역적들과, 거짓말쟁이들과, 이방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 속에서만 들을 수 있다.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 이외에는(14:11) 다윗이 여호와의 임재를 인식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도망 나온 동안에 발생한 세 사건에 치중되어 있다. 단 한 번 그는 여호와께 말하였다. 그것은 밧세바의 조부를 꼼짝 못하게 해달라고 하는 처절한 기도였다.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도모를 어리석게 하옵소서!”(15:31). 그리고 그것은 비록 작기는 하지만 그의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다. (267.5)
 겨우 두 번 그는 여호와께 관하여 말한다. 두 경우 다 고민과 싸우는 장면을 드러낸다. 사독을 언약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는 말한다: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저가 말하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15:25, 26). (268.1)
 여호와에 대한 그의 두 번째 이야기는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다윗 왕을 저주하자 왕이 시므이의 목을 베려 하는 아비새를 만류할 때(16:9)였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11, 12절). (268.2)
 마지막으로, 저자는 단 한 번 우리를 위한 여호와의 뜻을 분명히 해석한다: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17:14). (268.3)
 사무엘하의 첫 독자들이 이 이야기의 전개를 어떤 느낌으로 들었는지 우리가 상상할 때에, 우리는 그들이 다윗 성, 그의 보좌, 그의 아들이 지은 성전의 운명에 대하여 뼈저리게 느꼈을 것을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두 “약속들” 중의 하나는 긍정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것인데, 이 둘의 의미를 그들이 곱씹었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내 은총을 ...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7:15, 16). “칼이 네 집에서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12:10). (268.4)
 한편으로는, 사무엘하에 관한 한, 다윗의 부상과 낙하의 이야기는 20장으로 결론이 난다. 21-24장은 열왕기상의 첫 두 장에서 “계승”의 이야기가 계속되기 전의 간주곡처럼 들린다. 거기서, 솔로몬은 사무엘상․하에서 잃었던 옛 점수를 만회한다. 그가 자기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한 번 더 다윗의 집을 향해 칼을 뺀다. (269.1)
 솔로몬은 왕위를 노렸다는 죄목으로 형 아도니야를 참살한다(왕상 2:25). 그는 다윗의 조카 요압을 또한 처형한다(28-35절). 그리고 제사장 아비아달을 음모 가담 혐의로 자리에서 쫓아낸다. 사무엘하의 저자는 아비아달의 추방을 여호와께서 엘리의 집에 내린 저주가 응한 것으로 본다(삼상 2:27-36; 왕상 2:26, 27). (269.2)
 다윗이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나쁘게 소문난 “스루야의 아들”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태평 시대에” 죽였으므로 요압의 피가 자기 머리로 돌아가게 그 피를 흘리라고 명하였다(왕상 2:5, 6). 아도니아의 음모는 처형받을 일이었으나, 다윗의 명령에 따라 그것을 정당화하였다(28-35절). 이와 유사하게 다윗은 저주하는 베냐민 사람 시므이에 관하여 명하였다: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로 내려가게 하라”(9절).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렀다. 예루살렘으로 이사하여 거기서 살라고 하였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왕상 2:37). 시므이는 동의하였고, 그 약속을 3년간 지켰다. 그러나 그가 도망간 두 노예를 찾으러 가드에 갔을 때에, 솔로몬이 소문을 들었고, 그는 불려왔다. 그러나 처형하기 전에 그는 시므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44절). (269.3)
 열왕기상 2장 마지막의 시므이의 죽음의 이야기에 이어 저자는 이렇게 진술한다: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46절). (269.4)
 그러나 이 모든 무자비한 피흘림은 사무엘하에 기술된 대로 단지 다윗의 죄와 연약함의 결과였다. 다윗에게 준 약속에서 분명히 나타났듯이 여호와의 이상은 매우 다른 것이었다.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삼하 7:10-11). (269.5)
 이것이 하나님의 이상이었다. 만일 다윗이 하나님과 관계를 계속 유지했더라면,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요압을 장악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나라의 왕으로서 그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다윗은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다. 솔로몬도 그리하고자 할 것이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다른 모든 왕들도 그 길을 갈 것이다—여호와께서 그것을 끝내실 때까지. (270.1)
 사무엘하 13-20장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다윗의 생애에 관한 “복음적” 이야기인 역대기에는 이 내용 중 단 한 줄도 비취지 않는다. 그리고 솔로몬이 권좌에 오르는 열왕기상 1, 2장의 속편도 역대기의 기자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윗 이야기의 이 부분은 기쁨과 복음의 재료가 못 된다. (270.2)
 어느 날 갑자기 다윗의 한 아들이 기쁨과 복음의 소식을 예루살렘의 거리에 가져올 것이다. 비록 그것이 그의 목숨을 앗아갈지라도. 그의 기별은 전혀 다른 것일 것이다. 이 기별은 우리 저자의 영혼의 심금을 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나라는 에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아니하였으리라”(요 18:36). 그 나라에서는 왕이 그를 지지하는 자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부를 것이다(요 15:15).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동료로서 서로 도울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한 주, 한 선생만 있을 것이며(마 23:8-10),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11절). 그 왕은 먼지 덮인 발들을 씻는 모본으로 그들을 가르치실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놀라게 하고 경악케 할 것이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 15). (270.3)
 그것은 다윗과 솔로몬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한 내용이 다윗에게 준 나단의 약속 중에서 언뜻언뜻 비친다.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인간의 육신은 약하다. 그리고 마음에 원이 없을 때에는 지옥의 모든 세력이 임할 것이다. 아니면,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것처럼, “칼이 영영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271.1)
 13-20장에서 우리는 멈추지 않는 칼에 대하여 읽게 된다. (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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