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 나타난 구속 받은 자들의 상급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대체로 바로 위에서 연구한 구약의가르침에 자연스럽게 연속되고 있다. 하지만 복음서 기자들은 “천국[하늘나라]”(마태복음에 32회, 누가복음에는 없음) 또는 “하나님의 나라”(누가복음에 32회, 마태복음에 4회)로 불리는 그 “왕국[나라]”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 용어들이 동일한 의미라는 사실은 서로 평행하여 사용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마 13:11눅 8:10; 마 10:7눅 9:2). 이 왕국은 때때로 영적 영역인 것처럼 보이지만(참조 마 13장 천국 비유),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살게 될 물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 왕국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마 5:20; 18:3; 19:23; 막 9:47; 눅 18:25).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다시 먹고 마실 실제적인 장소이다(막 14:25; 눅 22:16, 18). (1077.6)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하늘”이 단지 하나님께서 계신 곳(마 6:9)이거나 자신이 떠나오신장소(요 6:51)일 뿐만 아니라, 의로운 자들이 상급으로 받을 장소라고 말씀하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눅 6:23). 이 상급에 관해 설명하시면 예수께서는 하늘 잔치를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거기에는 구원 받은 이방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아서 먹는다고 하셨다(마 8:11; 참조 눅 13:28; 14:15). “메시아의 잔치”는 중간사시대의 문헌(에녹3서 48:10)에 나오는 구약의 상징이며(사 25:6), 이방인을 포함한 구속 받은 자들이 맛보게 될 충만한 만족을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또한 “온유한 자”“땅을 기업으로 받을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 5:5). (1078.1)
 영원한 저주와 반대되는 “영생”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마 25:46). 예수 때문에 가족이 희생된 사람들은 “내세에 영생을 받”을 것이다(막 10:30; 눅 18:30).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구절에도 나타나있다. 사람들은 현세에서(여기서 지금)“영원한 생명”이 시작된다고 주장하지만, 예수께서 사용하신 이 용어는구원 받은 자가하늘 왕국의 영광에 참여할 때인 “내세”를가리킨다. (1078.2)
 요한복음 14:2, 3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을 제자들이 환영 받아 들어갈 곳과 동일한 곳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그분 자신이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그들의 거할 곳을 준비하실 것이다. (1078.3)
 2. 편지서
 바울 편지서에는 구속 받은 자들이 살 장소에 대해 정확한 묘사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받을 상급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 선을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롬 2:7)을 주시리라고 하였다. 사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 8:18). 더욱이 영광스러운 상급은 영원하다(롬 6:23; 고후 4:18; 딤후 2:10). 이 영원한 영광은 “하늘에 쌓아 둔 소망”(골 1:5)이요 “영원한 기업의 약속”(히 9:15)이다. (1078.4)
 고린도전서 2:9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위대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는 영원한 영광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바울 자신은 구원 받아서 이 “천국”(딤후 4:18)에 거하게 될 것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1078.5)
 베드로는 믿는 자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벧전 1:4)에 있다고 함으로써 바울의 확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독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봐야 했다(13절). 두 번째 서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지막 날에 있을 불의 심판을 묘사하면서 사도는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1-13), 곧 의로운 사람들이 거할곳이 있음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1078.6)
 3. 요한계시록
 요한의 예언서에는 새 땅에 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또한 천년기와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1078.7)
 a. 천년기
 천년기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별도의 기사에서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이 1,000년의 시간 동안 죽었던 의인들과 재림 때에 살아 있던 자들이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살전 4:16, 17).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기 위해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신다(마 24:31). 그분은 자기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아버지의 집”(요 14:2, 3)으로 구속 받은 자들을 데려가신다. 첫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하늘 왕국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된다(계 20:4, 6). (1079.1)
 b. 새 땅에 들어갈 자격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새롭게 된 땅에서 살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거기서 제외된 사람들의 특성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1079.2)
 그곳의 주민들은 극복한 자들, 승리자들, 정복자들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이기는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11절), 새 이름을 얻는다(17절). 승리자들은 흰 옷을 입고서 그리스도와 동행할 뿐만 아니라(계 3:5) 그분과 함께 보좌에 앉는다(21절). 짐승과 그 우상을 이기는 자들은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를 부른다(계 15:2, 3). 요한은 새로운 땅의 분위기를 묘사한 후 그곳에 거하는 자들의 신분에 관한 그리스도의 선언을 기록한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7). (1079.3)
 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어린양의 생명책”(계 21:27) 기록되어 있다. “생명책”은 바울 편지서에 1회(빌 4:3), 요한계시록에 6회 나타난다. 그것은 심판의 근거가 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계 20:12). 거기에는 짐승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계 13:8; 17:8). 이긴 자의 이름은 이 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계 3:5). 생명책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사상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이 요한계시록 22:14에도 제시되어 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요한계시록 7:14에는 옷을 빠는 것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이 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신약의 다른 곳에서 믿는 자들은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며(롬 5:9), “속량”되었으며(엡 1:7),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고(엡 2:13), “십자가의 피로∙∙∙화목하게 되”었다(골 1:20).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었고(히 9:14), 용서함을 받았다고 제시한다(22절).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것은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격이다(마 22:1-14에 기록된 혼인 예복에 대한 예수의 비유 참조). (1079.4)
 〈제임스왕역(KJV)〉과 몇몇 번역들은 고대의 여러 문헌을 참고하여 요한계시록 22:14“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다르게 번역하였다. 문헌적 증거로 볼 때, “자기 두루마기를 빤다”는 번역이 더 적절해 보이고, 헬라어 본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두루마기를 빠는 것”“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 할 수 있지만, 이 두 개념(“두루마기를 빠는 것”“계명을 지키는 것”-역자 주)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그 주인을 알고 따르며(요일 2:3-6) 사랑한다는 것의 표징이다(요 14:15). (1079.5)
 새 땅에서 스스로 제외되고 불 못에 자기 자신을 빠뜨린 사람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이다(계 21:8). 요한계시록 22:15은 이 목록에 “개”(사악하고 뻔뻔한 사람들)와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자”를 추가한다. 그들이 제외되는 이유는 요한계시록 21:27에 기록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한다. (1079.6)
 요한계시록의 기록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거나 못하는 것에 대해 기록된 성경의 다른 부분의 내용과 일치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사람을 이렇게 묘사한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는 자이다(시 15:2, 3). 이사야도 “높은 곳”에 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라고 밝히 말하고 있다(사 33:15). 그는 영광스러운 새 땅에서 성취될 이스라엘의 영광에 대한 조건적 예언에서 그곳에는 “깨끗하지 못한 자”는 없을 것이라고 확언하였다사 35:8). (1080.1)
 c. 새 땅에 대한 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