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은 새 땅에 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다른 부분에서도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수 있다(계 3:5.12, 21; 14:3; 15:2-4). (1080.2)
 요한에 따르면, 새 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지구가 불로 정화되고 그 후에 이어지는 천년기가 지난 후에 존재한다(계 21:1). 그때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 이곳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인 하나님 나라의 수도가 되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새 예루살렘이 이 땅에 내려온 후에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자들과 함께 새 땅에 거하신다(2, 3, 9절). (1080.3)
 “하나님의 성”(계 3:12)과 “거룩한 성”(계 21:2, 10)이라고 불리는 “새 예루살렘”(계 3:12; 21:2)은 히브리서 12:22에 언급된 “시온 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NIV)이다(〈개역개정판〉에는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기록됨-역자 주). 이 도시는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계 21:2)처럼 아름답다.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11절) 빛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이해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1080.4)
 이 성은 정사각형이며 매우 크다. 그 성을 측량하니 12, 000스다디온이다. 그것이 한 쪽의 길이인지 전체의 둘레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1스다디온이 185미터(202야드)라고 할 때 한 쪽의 길이는 2, 220킬로미터(약 1, 380마일)가 된다. 그것이 둘레라고 하더라도 고대 세계의 경우에서 종종 보듯이 2, 220킬로미터(1, 380마일)는 매우 큰 도시임에 틀림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이 도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다(계 21:16).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천사의 측량”(17절)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이것으로 퍼즐이 풀리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같다”(이소스)라는말은 “비례하다”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요한이 성벽의 바닥 둘레가 벽의 꼭대기 둘레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모든 인간적인 설명은 부족하다. I. T. 베크위드(I. T. Beckwith)가 말한 것처럼 “건축물의 실체 여부와 관계없이 요한은 새 예루살렘 광대함과 완전한 대칭 그리고 화려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760). (1080.5)
 이 도성의 성벽은 벽옥이며 144규빗이고, 한 쪽에 세 개씩 모두 열두 개의 문이 있다(계 21:13, 17, 18). 헬라어 야스피스는 의 1세기의 자연주의자 플리니우스(Pliny)가 묘사한 것처럼 반투명의 녹색 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투명한 돌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예루살렘 성경[JB]에는 “다이아몬드”로 번역됨). 어쨌든 요한계시록 4:3에서와 같이 “벽옥”은 빛나는 광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1규빗이 0.45미터(18인치)라고 할 때, 144규빗은 65미터(213피트)에 해당된다. 이것은 벽의 높이나 두께를 나타낼 수 있다(〈개역개정판〉에는 “성곽” 곧 성벽의 두께로 번역됨-역자 주). 열두 개의 문은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계 21:21), 밤이 없기 때문에 항상 열려 있다(25절). 어떤 사람들은 진주가 “고통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처럼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겪으신 고뇌와 죽음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한번 이 도성에 대한 측량과 묘사들은 인간의 이해를 훨씬 초월한다. (1080.6)
 이 도성은 정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기초는 보석들이다. 금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계 21:21)으로 묘사되었다. 이것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이해하기 힘든 조합이지만, 분명한 것은 광채와 빛이 났음을 의미한다. 열두 개의 기초석들은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수정(19, 20절)으로 열거되어 있다. 헬라어로 된 이 보석의 이름들 중에서 일곱 개는 〈70인역〉(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B.C. 3-2세기에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역자 주)에 기록된 제사장의 판결흉패에 있던 보석들의 이름(출 28:17-20; 39:10-13)과 일치한다. 이 동일한 목록들을 영어로 번역한〈개정표준역(RSV)〉에서는 출애굽기와 요한계시록의 보석들 중에서 아홉 개가 같은 단어로 되어 있다. 두 곳에서 언급된 보석들 사이의 상징적인 관계가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요한의 기술은 그가 계시에서 본 도성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묘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1081.1)
 그 도성의 “길 가운데로”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계 22:1).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한다(2절). 생명수는 구속 받은 자의 육체적, 영적 갈증을 해소시킨다(계 21:6). 나무의 열매에는 “아담과 하외가 에덴동산을 떠날수밖에 없게 된 이래로 갖지 못한 채 지내온 생명의 요소, 곧 노쇠와 정력 손실과 단순한 피로를 없애는 해독제가 들어 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8, 377; 참조 창 3:22). (1081.2)
 요한은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성전을 분명히 보았다는 요한계시록 15:5의 기록과 대조를 이룬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인간과 하나님을 하나가 되게 하는 의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성소가 필요한 때는 지나갔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모두에게 열려 있다(계 22:3). (1081.3)
 하늘에 대한 묘사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중요한 특징은 빛에 대한 것이다. 그 도성 자체는 “하나님의 영광”(계 21:11)을 지닌 화려한 금과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 생명수의 강은 “수정같이 맑”다(계 22:1). “거기에는 밤이 없”다(계 21:25; 22:5). 해와 달도 필요 없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아버지께서 필요한 모든 조명을 제공하시기 때문이다(계 21:23). (1081.4)
 d. 새 땅에서 행해지는 활동
 이사야는 새로워진 땅에서 농업과 심지어 상업적 활동이 있을 것을 강조하는 반면에(사 60:4-7), 요한은 예배와 교제 활동이 있을 것을 기록하고 있다. 양쪽 중 어느 하나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 (1081.5)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구속 받은 자들의 주요 활동은 어린양을 경배하는 것이다. 자신들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계 21:3) 저주와(계 22:3) 사망에서(계 21:4) 벗어난 구속 받은 무리들이 자신을 하늘에 이르게 하신 분께 즐거운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한다. 이것은 이사야 66:22, 23에서 예언된 예배와 일치한다. 요한계시록 22:3에서 “예배”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라트류오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행해지는 예식이나 예배와 관련하여 사용된다(참조 마 4:10; 눅 2:37; 빌 3:3; 딤후 1:3; 히 8:5; 9:14; 13:10). 요한계시록 7:15에서도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14절) 한 사람들의 예배와 예식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081.6)
 찬양은 하늘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44,000명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는데, 이 노래는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수 없는 경험의 노래이다(계 14:3). 이긴 자들은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찬송한다(계 15:2-4). (1082.1)
 하늘에서 있을 천년기와 그 후에 있을 새 땅에서 의인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계 20:4)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다(계 22:5). 그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주장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한다. (1082.2)
 새 땅은 구속 받은 자들과 하늘의 존재들과의 궁극적인 친교의 장소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것이며, 그들은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계 22:3, 4). 친밀하고 감미로운 교제 가운데 속량된 죄인들은 과거에 있었던 장벽 없이 하나님에 대해 배운다. 이런 관계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도(道)”(미 4:1, 2)와 창조와 재창조에 나타난 그분의 능력에 대해 배울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라는 노래를 24장로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찬양할 것이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계 5:9, 10). (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