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칠대 손으로서 가인 계보에 속하는 라멕은 에녹의 기별을 무력화하는데 앞장 선 인물이다. 그는 자기를 상해한 한 청년을 살해한 후에 피의 복수를 전통으로 세우는 노래를 작사하여 전파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4). 창세기 4:15은 하나님의 말씀인 반면에 창세기 4:24는 라멕의 오만한 주장이다. 그는 하나님의 자리에 스스로 앉아서 무력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를 세웠다. 안식일 속의 생명 존중 사상은 그의 발 아래에서 무참하게 짓밟히고 ‘네피림’, 곧 ‘타락자들’이 명성을 떨치는 사악한 시대가 이 땅에 도래했다(창 6:4). (277.2)
하나님과 라멕의 대조는 창세기 2:2-3과 창세기 4:24 속에서도 발견이 된다. 두 성경절은 ‘칠’을 의미하는 ‘쉬비이’(שׁבִיעִי, šübî`î, ‘제 칠의’)와 ‘쉐바으’(שֵׁבַע, šeba`, ‘칠’)를 세 번씩 사용하고 있다. 안식의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오직 믿음으로 안식과 평화에 참여하라고 초청하신다(비고, 히 4:3-4, 9-11). 라멕은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안식과 평화를 창조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자신의 힘을 믿고, 자기를 우상화하며 살았던 세상은 대홍수에 삼켜진바 되었다. (278.1)
또 다른 라멕인 노아의 아버지는 매우 진귀한 기록을 가졌다. 그는 아들을 낳고 ‘안위’라는 뜻을 가진 노아로 이름을 지었으며,(창 5:29),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다(창 5:31). 777은 하나님의 원 창조 시에 사용된 숫자 칠이 세번 중복되어 있다. 죄 때문에 고통의 땅으로 변한 세계가 그 아들을 통해 참 안식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갈망했던 그의 꿈은 새 아담이 된 노아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278.2)
대홍수 기사 속에는 칠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노아는 정결한 짐승과 새는 암수 일곱씩 방주 속에서 생명을 보존 시켰고(창 7:2, 3),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지 칠일이 지나서 홍수가 났다(창 7:4, 10). 대홍수 후에 방주는 칠월 십칠일에 아라랏 산에 정박했고(창 8:4), 노아는 물이 감한 여부를 알기 위하여 칠 일씩을 기다려 비둘기들을 밖으로 내어보냈다(창 8:12, 14). (278.3)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믿음과 순종의 인물이다(창 6:22; 7:5, 9, 16). 창조의 기념일로 안식일을 제정하여 만민이 지키도록 하신 하나님은 대홍수 기사 속에서 주일 제도가 드러나도록 하셨다. 야우베르트 (Jaubert )는 일년을 364일로 계산한 주전 2세기경의 희년서를 근거로 대홍수 속의 날자와 요일을 계산한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항상 날자와 요일이 일치한다. 신년은 창조의 후반부 첫 날에 해당하는 수요일에 항상 해당한다. 주일의 첫 날인 일요일에 창조가 시작된 것처럼 창세기 7:11의 대홍수도 일요일에 시작했다. 금요일에 천지창조가 마친 것처럼 또 다른 안식일을 맞이하기 위하여 다섯 달 동안 물 위를 떠다니던 방주가 금요일에 운행을 중단하였다! 새로운 시작이 발생하는 창조주일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수요일에 산이 나타나고(창 8:5), 물이 마르고(창 8:13), 방주 밖으로 나왔다(창 8:14).9(279.1)
웬함은 야우베르트의 가설에 의거하여 창세기 7-8장에서 다른 중요한 요점을 발견했다. 대홍수의 파괴적인 국면은 금요일에 끝이 났고(창 7:12), 노아도 하나님처럼 매 일요일마다 새로운 활동을 전개함으로(창 8:6, 10, 12; 참조, 창 7:10, 11) 안식일을 준수하는 의인이었음을 보여준다.10(279.2)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을 목격하고 평화 조약을 체결하되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고 했다(창 21:23). 이 언약의 표로 아브라함은 일곱 암양을 따로 구별하였다(창 28-30). 히브리어로 숫자 ‘칠’(שֶׁבַע, šeba`)과 ‘맹세’(שָׁבַע, šäba`)는 어원이 동일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는 언약의 숫자로 일곱을 선택했다. (280.1)
‘천지의 주재’(창 14:22)이시며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창 18:25)께 대한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일곱이란 숫자는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과 무관하지 않다. 이 언약에 대한 기념명으로 그곳을 ‘브엘세바’(בְּאֵר שֶׁבַע, Bü´ër šeba`, ‘맹세의 우물’)라고 이름지었다(31절). (280.2)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는 길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한 후에 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의 제 칠일 신앙은 라헬을 사모하여 칠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라반을 섬긴 일 속에 표현되었다(창 29:18, 20). 야곱이 말하기 쉬운 삼년이나 오년 대신에 칠년을 섬기겠다고 제안한 것은 그의 안식일 신앙이 반영된 것이다. 라반이 레아를 위해 베푼 결혼식의 기간 칠일을 채우도록 한 것은 그 시대에 주일 제도가 있었음을 암시하며, 그 기간 후에 야곱은 다시 라헬을 위해 칠년을 채웠다(창 29:27, 30). 사랑하기 때문에 칠년을 수일처럼 여긴 야곱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안식일 준수를 통해서 드러내야 한다. (280.3)
야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자기를 맞으러 나오는 에서에게 일곱 번 땅에 굽혀 절했다(창 33:3). 주전 14세기에 팔레스틴 왕들이 애굽 왕에게 보낸 아마르나 서신에 의하면 봉신국의 왕은 종주국 왕의 발 앞에 일곱 번 절하였다. 시리바사니 (Siribašani )의 통치자인 ‘아르타마냐’(Artamanya )는 ‘내가 내 주 왕의 발 앞에 일곱 번 더하기 일곱 번을 엎드립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개와 같은 존재라고 비하하였다(EA 201).11 일곱은 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호의를 구하는 특별한 숫자로 고대 시대에 통용되었다. 야곱은 에서를 ‘내 주’라고 부르며 은혜를 간구하면서 에서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창 34:5, 8, 10, 11). 안식일 신앙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과 용서의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한다. (280.4)
안식일 신앙은 야곱에게 온 세계에 진정한 안식을 가져 올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이스라엘 칠십인 공동체를 형성케 하였고(창 46:27) 일백 사십칠 세(3×7×7)를 향수하고 죽었다(창 46:27). 그 후 야곱의 시신은 칠십 일간의 애곡 기간을 거쳐 가나안으로 옮겨진 후 요셉이 야곱을 위해 칠 일간을 애곡한 후에 막벨라 밭 굴에 장사되었다(창 50:3, 10). (281.1)
칠은 요셉의 운명을 바꾸었다. 요셉은 애굽의 바로가 꾼 꿈, 살찐 일곱 암소와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과 세약(細弱)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에 대한 꿈을 해석하여 미래에 임할 칠년의 풍년과 칠년의 흉년을 대비하도록 했다. 창세기 41장은 칠을 무려 29회나 사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무대는 꿈 때문에 번민하고 있는 바로의 궁전이다.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은 전혀 바로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썩은 지팡이와 같았다. 시위대 감옥에서 요셉이 불려나와 그 꿈을 해석해 주었다. 그는 앞으로 칠년 간 풍년이 있고 이어서 세상을 기근으로 망하게 할 칠년의 흉년이 있을 것임을 말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창 41:32). 요셉은 천연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 하였으며, 요셉이 해결책을 제시하였을 때 바로의 궁전은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통해 온 땅은 큰 기근 속에서도 살아남게 되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안식일 신앙가를 통해 온 땅에 구원이 이르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바로를 신으로 섬기는 이방 땅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분의 존재와 능력을 나타내는 숫자 칠을 현저하게 드러내심으로 이방 땅에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 (281.2)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가뭄 속에서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는데,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 명이었더라’(창 46:27). 칠십 명은 일곱의 열 배이다. 오경에서 숫자 십이 사용된 매우 중요한 예로는 십계명(출 20:2-17; 신 5:6-21)과 십일조(창 14:20; 민 18:21, 26; 신 26:12)가 있으며, 성막이나 성소의 기구도 십이나 그 배수로 고안이 되었다(출 26:1, 16; 27:12; 36:8, 21, 12). 창세기에서 대홍수 전후에 각각 열 명의 부조들이 있었으며(창 5; 11:10-30) 아브라함과 야곱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고(창 14:20; 28:22) 의인 열 명이 있었더라면 소돔과 고모라는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창 18:32). 생명과 구원과 관련된 십의 배수가 칠과 합하여 온 세계를 구원하여 진정한 안식으로 인도할 하나님의 남은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사용이 되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의 어두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올 생명 공동체를 곤고의 땅 가나안으로부터 구출하여 온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선교적 사명을 위임하셔서 문명의 중심지인 애굽으로 보내셨다. (2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