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고달픈 세상을 힘겹게 사는 동안 피곤해진 몸을 푸근히 쉴 수 있고 연약해진 마음을 기대어 힘을 얻을 수 있는 아늑한 피난처에 자신을 숨기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 시편 46편(145.1)
 「내주는 강한 성」—루터의 시편
 반세기 짧은 인생의 태반을 전쟁의 북새통에서 살아온 느낌이다. 어렸을 때 겪은 대동아 전쟁, 삼팔선을 넘은 월남 피난, 또다시 치른 동족 상잔의 6 • 25사변, 빨치산에게 쫓긴 마석 피난, 잇달아 몰아친 엄동 설한의 1 • 4 후퇴 등 전란(戰亂)을 치를 때마다 살아보려고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안타까운 회상이 “견고한 피난처”로 알려진 시편 46편에 대한 감격을 새삼스럽게 한다. 전란 때만 필요한 피난처가 아니다. 불안하고 고달픈 세상을 힘겹게 사는 동안 피곤해진 몸을 푸근히 쉴 수 있고, 연약해진 마음을 기대어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러한 아늑한 피난처에 자신을 숨기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모든 것이 불안하고, 아무것에도 의욕이 없는 지친 마음들이 찾는 곳은 모두 삶의 피난처인 것이다. 방금 펼쳐지는 시편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피난처를 만난다. (145.2)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편 46편 1~3절). (146.1)
 “루터의 시편”(Luther´s Psalm)이라고도 불리우는 시편 46편은 세상의 역사를 바꾼 16세기 종교 개혁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개혁 직전까지 대학에서 시편을 강의한 루터는 다윗의 경험을 통하여, 죄인이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선행의 공적(功績)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과 은혜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95개 논제에 드러났고 그는 즉시 이단으로 규정되어 제국의 국회에 소환되어 생사가 걸린 심문을 받게 된다. 화형장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것이다. 감히 황제와 교황의 세력에 맞서 심문에 나간 일개 수도승 루터의 운명은 풍전 등화와 같았으나 이상하게도 루터는 요동하지 않았다. 이미 시편 46편“견고한 피난처”인 하나님 안에 자신을 피신시킨 까닭이었다. (146.2)
 그 때를 돌이켜보며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이렇게 썼다. “1521년 4월 16일 보름스 국회는 이 대담한 새 전가(戰歌)로 진동했고 악마들은 놀라서 저희 갈 곳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시편 46편에 기초하여 루터가 작사 작곡하고 처음에는 “시편 제46편”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오늘날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찬송가 371장, 찬미가 624장)는 종교 개혁을 승리로 이끌어 간 승전가(勝戰歌)가 된 동시에 역경에 처하여 불안과 두려움으로 떨던 역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승리의 확신으로 격려한 응원가(應援歌)가 되기도 하였다. (146.3)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또 나의 방패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늘 구원하여 주시리

 옛 원수 마귀는 이 때에 힘을 써 궤휼과 권세로

 제 무기 삼으나 주 권능 당치 못하리.”
(147.1)
 “교황의 새끼 손가락이 전(全) 독일보다 더 힘이 세다. 네까짓 벌레 같은 것이 그런 교황을 대적하고도 살 수 있을 줄 아는가? 그렇게 되면 네가 어디에 가게 되는지 알고나 있는가.” 교황 사절의 위협을 받은 루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난 여기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렇다. 거기가 루터의 피난처였다. 1650년 시편 46편은 새로운 운율로 장식되어 “스코틀랜드 시편” (Scottish Psalter)에 등장했고, 후에 영국 국가(國家)의 곡이기도 한 헨리 캐리(Henry Carey)의 곡에 실려져 오늘날 “피난처 있으니”의 찬송가로 애창되고 있다(찬송가 468장, 찬미가 501장). (147.2)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의 간담은 녹아 내렸고, 죽음의 공포는 밀물처럼 휩쓸려 오고 있었다. 그러나 성 안에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고요히 흘러나와 평안을 약속하고 있었다.
(147.3)
 피난처에서 찾은 참 피난처
 당장 피해야 하는 피난의 급박함처럼 첫 구절은 우리를 황급히 피난처로 인도한다. 피난처는 가까이에 있어서 즉시 피할 수 있어야 한다. 1 • 4 후퇴 때 폭격을 피하기 위해 파 놓았던 산 속의 방공호는 너무 멀어서 가다가 폭격을 맞기 십상이었다. 불안해서 다시 판 앞뜰의 대피소는 당장에 피할 수 있어서 언제나 안심이 되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당장에 피신할 수 있는 즉석 피난처이시다. 피하는 사람은 당할 힘이 없기 때문에 도움을 얻기 위하여 숨는 것인데, 우리가 피하는 그 하나님께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그 힘이 있는 것이다. 얼마나 큰 도움인가. (148.1)
 땅이 꺼지고 산이 무너져 바다에 빠지고 바닷물이 넘쳐 땅을 뒤덮는 등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천재 지변도 겁날 것 없다. 정치적인 혼란, 사회적인 불안, 경제 공황, 전쟁의 소용돌이 등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누가복음 21장 26절)게 된다고 하셨다. 이 구절의 “무서움”은 헬라어로 “포보스”(phobia)라고 하는데 일종의 신경 질환인 “공포증”“포피아”(phobia)가 바로 이 말에서 나왔다. 현실의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현대인의 정신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148.2)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제2부로 들어서면 갑자기 장면이 바뀐다. 제1부의 요동하던 바다와 들끓던 세상이 갑자기 고요해지고 안정이 깃든다. 그렇다. 바깥 세상은 온갖 소요로 출렁거려도 하나님께 피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평화가 있어야 한다. 마치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예루살렘 성 안에 이름 그대로 솰롬(Shalom)이 깃들어야 하는 것처럼. (148.3)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46편 4~7절). (149.1)
수천번의 전쟁을 치르고도 아직껏 끝나지 않은 전쟁과 수만번의 평화 회담을 열고서도 여전히 요원한 평화가 마침내 하나님의 개입으로 졸지에 이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
(149.2)
 실제로 예루살렘 성은 이상에 기록된 대사변을 겪었다. 기원전 722년 북방 이스라엘을 비참하게 멸망시킨 대제국 앗시리아는 다음 차례인 남방 유다를 공략하기 위해 기원전 701년 산헤립이 친히 거느린 대군으로 물밀듯이 쳐내려왔다(열왕기하 18장 13절~19장 36절 참조). 라기스 성을 비롯한 지방의 모든 요새들은 유린되었고 예루살렘은 인산 인해를 이룬 앗시리아 대군에 의해 철통같이 포위된 채 운명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통곡했으며, 성 안에 있는 백성의 간담은 녹아 내렸고, 죽음의 공포는 밀물처럼 휩쓸려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성 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성전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거기에 철석같이 언약을 지키시는 야곱의 하나님이 좌정하고 계셨다. 시끄럽게 소리내며 흐르는 나일강이나 유프라테스강과는 달리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이사야 8장 6절)이, 바닷물이 넘치듯 소란스러운, 성 밖의 형편에 아랑곳없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고요히 흘러나와 평안을 약속하고 있었다.

  (149.3)
 이 때 성 안에 있던 이사야 선지자는 왕과 백성들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안정시키고 구원의 기별을 전달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 성 밖에는 죽음의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이사야 37장 36절). (150.1)
 참으로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 것이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시편 30편 5절) 찾아온 것이다. 모두 야곱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한 결과였다. 유다 정벌(征伐)에 관한 성경의 기사는 산헤립 자신의 기념비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며 고대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앗시리아 대군이 들쥐가 옮긴 흑사병으로 치명적 피해를 입었다고 써 놓았다. (150.2)
 환난을 당한자 이리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