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성경적 기별을 분명히 이해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워했다. 교부들을 살펴보면 어떤 혼란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1059.9)
 바나바의 서신(AD 100년경)에서 지구가 6일간 창조된 것처럼 역사가 6천 년에 마칠 것이라는 생각을 볼 수 있다. 창조 후 제7일의 쉼은 재림과 악인의 멸망을 나타내는 것이다(15절). 이런 이론은 후기의 저술가들 즉 힙폴뤼투스와 히에로뉘무스(342-420년경; 퀴프리아누스에게 보낸 편지 140)에 의해 반복되었다. 그 중에 힙폴뤼투스(236년경 사망)가 있는데 그는 세계의 끝날을 예측하였다(다니엘 2:4-7 주석). (1059.10)
 2세기 초의 파피아스의 단편이 전해졌는데, 천년기 신앙에 대한 최고의 증언 중 하나이다. 그는 천년 왕국을 세상적이며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260-339년경)는 천년기에 관한 그의 “이상한 가르침”을 언급하였다. 부활 후에 그리스도께서 물질적인 왕국을 이 땅 위에 세우실 것이다(교회사 3:39, 11, 12). (1059.11)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165년경 사망)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문자적 부활을 열렬히 믿던 사람이었다. 부활후에 “예루살렘에서 천년기가 있을 것인데 그때에 그 성은 건축되고 확장되고 꾸며질 것이다”(트뤼폰과의 대화, 80). 그는 이사야 65:17-25“천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유스티노스는 요한의 예언을특별히 언급한다 성도가 “예루살렘에서 천년을 살”것이다. 그 후에 “심판의 부활”이 따를 것이다(위의 책, 81). (1060.1)
 이레나이우스(130년경-200년경)는 재림 시에 있을 문자적 재림을 강조하면서 천년 전 재림설의 입장을 증거하였다. 이것 후에 “왕국의 때”가 뒤이을 것이다. 그는 그 왕국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 일 후에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이단 반박문 5. 35. 2). 이레나이우스 뒤에 올림포스의 메토디우스(Methodius of Olympus)는 부활 후에 성도가 “쉼의 천년기를 그리스도와 함께 경축”할 것이라고 하였다. 천년이 지나면 그들은 “더 크고 더 좋은 것들로 나아갈 것이다”(열 처녀의 잔치 9.5). (1060.2)
 에우세비우스는 이설 저술가 케린투스(2세기)가 부활 후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위에 설 것이며 모든 육체는 다시 욕정과 쾌락을 섬길 것이라고 가르쳤다고 하였다. 1,000년간 사람들은 잔치와 부도덕으로 살 것이다 동시에 동물 제사가 있을 것이다(교회사 3. 28. 2-5). (1060.3)
 테르툴리아누스(160년경-230년경)느 카르타고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위대한 힘을 발휘하였다. 그는 세상 끝,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부활이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On the Resurrection of the Flesh 22). 그리고 또한 재림 후 1,000년 동안 성도는 이 땅에 살며, “하나님이 지으신 예루살렘 성에서” 거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 쉼의 시기 후에 성도는 순간적으로 변화하여 하늘의 왕국으로 옮겨질 것이다(Against Marcion 3. 25). (1060.4)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의 종교 교육을 위해 글을 썼던 락탄티우스는 1,000년을 악인의 멸망과 성도의 부활 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천년기 동안 성도는 “무한대로 번성”할 것이며 “산 자들 위에 재판관으로서 지도하며” “나머지 나라들을 노예로 복속시킬 것이다.” 그 시기의 평화에 관한 그의 기술은 성경의 사상과 시빌의 신탁과 라틴 시가의 내용을 섞은 것이다(Divine Institutes 24). (1060.5)
 역사에서 드러난 대로, 성경적 천년기 교리는 곧 망가졌다. 그 결과 이 개념은 논란을 불러왔다 제롬은 자신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성도는 결코 지상의 왕국을 갖지 않을 것이고 하늘 왕국을 가질것이다. 그러므로 천년의 이야기를 그만 하자.”(다니엘 주석 7:17). (1060.6)
 3. 아우구스티누스
 초기교회가 핍박받는 소수였을 때에, 천년기의 희망은 위로와 안위를 주었다. 그러나 교회가 인정을 받고, 우세하고 막강해지면서 당시의 시대를 복음이 꽃피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세대로 여기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저서 〈하나님의 도성〉에서 교회의 역할에 관한 이성적 해설을 할 길이 준비되었다(AD 413년). (1060.7)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계시록 해석을 하면서 4세기의 도나투스파 신자 튀코니우스의 “7 규칙”과 여러 가정들에 크게 의존하였다. 자신이 만든 규칙들을 따라 튀코니우스는 첫째 부활을 영적인 것(회심할 때 일어난다)으로, 둘째 부활을 문자적인 것(재림 때에 일어난다)으로 해석하였다. 천년기는 성도가 지상에서 다스리는 1,000년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튀코니우스는 1,000년을 350(세 때 반)으로 축소시키고 교회는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하였다. (1060.8)
 튀코니우스를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1,000년을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으로 만들었다 사탄이 쫓겨났기 때문에(계 12장)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의 영역에서 승리로 나아가고 있다. 요한계시록 20:6의 첫 부활은 재림시에 있을 문자적 부활이 아니라 회심 시에 있는 영혼의 영적 부활이 되었다.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기는 이 땅에서 일어난다. 사탄은 결박되어 교회를 유혹하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재림 후에 천년기가 있을 것을 믿었다가 그의 마음을 바꾸었다고 인정하였다. 그가 입장을 바꾼 부분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천년기를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입장을 취했다. “살아난 사람들은 부절제한 육적인 잔치를 즐기며 절제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로 술과 고기를 차려 먹으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런 주장들은 육적인 사람들만 믿을 수 있다.”(하나님의 도성, 20.7). (1061.1)
 그리스도교 시대가 천년기라고 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은 우세한 이론이 되어 중세를 통하여 군림하였다. 이것은 개신교 개혁자들의 신학적 얼개 속에 깊이 숨어 있으며 오늘날 많은 성경 해석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1061.2)
 4. 플로리스의 요아힘과 종교개혁
 개신교종교개혁 이전 사람으로 플로리스의 요아힘은(1130-1202년) 예언 해석에 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책 〈묵시록 해설(Exposition of the Apocalypsel)〉은 천년기 주제에 특별한 관심을 주었다. 그 책에서 요아힘은 풍미하던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철학적 얼개에 도전장을 내놓았다. 그 얼개는 교회를 우세한 주체로 보았고 역사적 실재에 관하여는 미미한 관심을 표하였으나 그는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강조점을 두었다. (1061.3)
 요아힘은 요한계시록 20장을 세계 역사의 일곱째 기간 또는 성령의 셋째 시대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 기간은 적그리스도를 넘어뜨린 때부터 시작하여 매우 짧게 끝나는 것으로 보았다. 요아힘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천년기를 1,000이라는 역사적 기간과 동일하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몰락과 마지막 왕국 사이의 중간 기간을 만들었지만 미래에 있을 1,000년간의 천년 왕국이라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중간 기간에 사탄은 최종적으로 묶이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마귀를 이미 부분적으로 묶으셨다. 그리고 그날 성령께서 그를 더 단단히 결박하실 것이다. ···1,000년이라는 기간으로 알려진 때가 차기까지, 그때는 주님의 부활의 시간으로부터 그의[마귀] 놓임의 시간까지다.”(묵시록 해설, fol. 211 V). (1061.4)
 아우구스티누스 식으로 1,000년을 이해하면서 요아힘은 미래에 있을 사탄의 결박에 관하여 말하였고, 전통적 입장에 도전장을 내는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그는 개신교 종교개혁에서 절정에 이르게 될 예언적 성취를 역사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의 발전에 관하여 운을 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천년 전 재림설에 관한 새로운 관심을 예시하였다. (1061.5)
 로마가톨릭 학자들을 포함한 다른 학자들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천년기 개념을 문제로 삼았다 16세기후반에 스페인의 예수회 학자인 프란시스코 리베라는 천년기를 그리스도의 죽음의 시점에 사탄이 결박된 것과 적그리스도의 나타남 사이에 두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세상을 다스린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개념을 거절하고 그 기간 동안에 성도들이 하늘에서 다스린다고 여겼다. 게다가 1,000년은 “탄력적이며 상징적”이라고 보았고, 적어도 “불확정적”으로 보았다(PF0F 2:492). (1061.6)
 천년 전 재림론자였던 하인리히 불링어를 제외하고 16세기의 대부분의 개신교 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천년기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사탄의 결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7세기에 와서야 개신교 사람들이 천년기를 미래에 놓기 시작하였다. 조셉 미드(1586-1638년)는 〈묵시록의 열쇠(Key of Revelation)〉에서 천년기는 적그리스도의 심판과 더불어 시작되어 1,000 동안 계속된다고 하였다. 적그리스도는 분명히 로마 교회라고 이해하였다. 새 예루살렘은 세계적 부활과 악인의 심판 때까지 이 땅에 있을 것이다. 뉴 잉글랜드의 청교도 목사 존 코튼(1584-1652년)은 1,000년은 적그리스도와 로마의 멸망으로 더불어 시작하며 콘스탄티누스나 테오도시우스와 더불어 시작하지 않는다고 확증했다. 동시에 코튼은 첫째 부활은 영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후에 몇몇 영국과 독일의 저술가들이 천년기가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요한 벵엘(1687-1752년)처럼 사탄이 결박된 지상에 하나, 성도가 다스리는 하늘에 하나 그래서 두 천년기가 있다는 잘못된 입장을 취하였다. (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