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이 가까이 왔을 때에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하셨다(요 12:31). 요한계시록 12:7-12과 더불어 이 구절들은 사탄을 “쫓아냄”이 점진적이며 단계적으로 발생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절정을 이루며 최종적이며 완결된 사탄의 결박으로 끝난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가 “결박되어” 무저갱이 닫히고 “그 위에 봉인”됨으로 사탄은 1,000년이 끝날 때까지 이 혼돈하고 공허한 지구에 머물러야 한다. 그의 최후의 멸망 전에 “그 후[천년 후] 그가 잠시 놓여”야한다(계 20:3, 7). (1052.6)
 마귀는 무저갱에 던져졌다. “구덩이”(개정표준역, RSV), “무저갱”(제임스왕역, KJV), “심연”(abyss, 새미국표준성경, NASB, 새국제역, NIV)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뷔소스는 신약의 다른 곳에서 악령들의 장소(눅 8:31), 죽은 자들의 거처를(롬 10:7) 가리키는 말로 등장한다. 중간사 시대의 유대 문헌에서 형벌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에녹 1서 10:4-6; 희년서 5:6-10). 요한계시록 11:717:8에서 짐승은 아뷔소스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70인역〉의 창세기 1:2이 창조 시 지구의 혼돈한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와 동일하다. 그때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지구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1천년기의 시작에 다시 혼돈의 상태로 돌아간다. (1052.7)
 c. 지구의 황폐
 재림 시 악인의 멸망과 더불어 천연계는 뒤죽박죽되어 지구는 혼돈의 상태로 들어간다. 천사가 일곱째 대접을 부을 때에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다고 할 정도의 지진이 있을 것이며(계 16:18)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없”게 된다(계 16:20). 이사야의 묵시는 이와 유사한 상태를 묘사한다.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 같이 흔들리며”(사 24:19, 20). 이 예언의 다른 국면들은 요한계시록과 병행을 이룬다. “그날에 야훼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 같이 모음을 입고 옥에 갇혔다가”(사 21, 22; 참조 계 19:19-21). 세상은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갇힐 “구멍” 혹은 “무저갱”이 된다. 사탄은 세상 위에 군림할 창의적이거나 조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은 천년동안 혼돈의 상태 속에 남아있게 된다. (1052.8)
 동시에 지구는 사람이 없어진다. 예수님은 재림을 위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 노아와 롯의 때처럼 멸망할 것이라고 확언하셨다(눅 17:26-30). 바울은 재림 때에 있을 악인의 멸망을 확인하였다(살후 1:7, 8). 악인이 멸당 당하는 동안 의인은 지구에서 옮겨진다. 바울은 재림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있는 성도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항상 있게 하리라”(요 14:2, 3). 악인이나 의인이나 아무도 지구에 남이 있지 않으므로 마귀가 미혹하거나 괴롭힐 수 없게 된다. (1053.1)
 2. 천년기 동안에 있을 사건들
 요한계시록 20:1-3이 천년기 시작의 사건들을 묘사하지만 4-6절은 1, 000년 동안에 일어날 일을 묘사한다. 4절에서 요한은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1, 000년간 다스리는 심판의 장면을 묘사한다. 이 심판의 장소와 이 심판 자체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1053.2)
 a. 장소
 하늘에서 일어나는 장면이다. 4-6절에는 땅에 관한 말이 하나도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좌”라는 단어가 47회 사용되었다. 그 모든 경우 중 3개만을 제외하고(2:13; 13:2; 16:10) 보좌는 하늘에 있다. 마찬가지로 이 구절도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와 성도가 땅에서 다스리는 대신 하늘에서 다스리는 장면을 우리는 본다. (1053.3)
 요한계시록의 다른 구절들이 의인들은 어디서 천년기를 보낼 것인가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 이 구절들은 1, 000년을 언급하지 않지만, 의인들이 재림 직후에 어디에 있을지를 말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7장 전반부에 성도는 인을 받았고, 후반부에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 그들은 거기서 곧 그분의 성전 안에서 밤낮 섬긴다(15절). 거기서 하나님은 친히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땅에서 겪었던 핍절이나 핍박을 당하지 않는다(16-17절). 그 동일한 하나님의 보좌가 생물들과 장로들과 유리 바다와 함께 요한계시록 4:1-6에 등장한다. 이 장면이 하늘에서 펼쳐지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요한계시록 21:22에 의하면 새땅에는 성전이 없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4장7장의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는 것이다. (1053.4)
 요한계시록 14:1-5은 144, 000이 어린 양과함께 시온산에 있다. “땅에서”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로서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3절). 그들은 7장에서 인을 받은 사람들이며, 요한계시록 13, 14장에서 짐승을 이긴 사람들이다. 6-13절에서 이어져 나오는 것이 흰 구름에 앉으신 인자의 나타남이 있기 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가리키는 곳이 땅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온산”은 요한계시록을 통틀어 이곳에만 나온다. 어쩌면 히브리서 12:22의 도성,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시온산 하늘 예루살렘”과 병행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구절의 장면은 사건들이 그 결과로 진행되기 전에 먼저 그 결과를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에서 지상의 예루살렘 도성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분명 이 책이 기록되기 전에 그 도성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요한은 “많은 물소리” 같은 그들의 노래를 하늘로부터 듣는다(2절). 요한계시록 14장에 언급된 시온은 하늘 시온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1053.5)
 요한계시록 15:2-4에서 승리한 성도는 손에 수금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서서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른다. 즉시 하나님의 성전이 열려(5-7절) 이 장면이 하늘에서 진행됨을 보여 주고 있다. (1054.1)
 요한계시록 4장, 요한계시록 7:9-17, 14:1-5, 15:2-5은 동일한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이 모든 구절들은 하늘의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속량 받은 사람들에 관한 묘사다. 각 구절이 전체 그림의 한 부분씩을 제공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4장은 보좌와 그 주위를 강조한다. 요한계시록 7장은 구속받은 사람의 무리를 보좌 앞에 둔다. 요한계시록 14장은 속량 받은 사람들 곧 흠 없는 사람들의 기쁨을 묘사한다. 그들은 수금을 타며 새 노래를 부른다. 요한계시록 15장에서 우리는 새 노래의 노랫말을 들을 수 있다. (1054.2)
 동일한 장면이 요한계시록 20:4에서 보인다. 승리한 자들,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다. 거기서 그들은 어린 양과 함께 다스리며 심판한다. (1054.3)
 b. 심판하는 사람들
 요한계시록 20:4에 따르면 심판은 보좌에 앉은 이들, 즉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으나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곧 이어, 이 사람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며 그들에게 복이 선언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듣는다. 그리고 세 번이나,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의 필수 조건은 첫째 부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1054.4)
 “목 베임을 당한 영혼들”이라는 표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프쉬케“영혼”이라는 단어는 의미의 폭이 넓다.

   (1) 살아 있는 생명체

   (2) 사람, 인물

   (3) 사람의 목숨

   (4) 사람의 내적 삶 등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일정하게 히브리 단어 네페쉬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 단어는 유사한 의미의 폭을 갖고 있다. 성경에서 그 단어는 한 번도 몸을 떠난 영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 프쉬케란 단어는 신약에서 103회 사용되었다. 〈제임스왕역(KJV)〉은 그것을 “영혼(soul)”이라고 58회 번역하였고, “생명(life)이라고 40회 번역하였고, “마음(mind)”이라고 세번 번역하였다. 〈개정표준역(RSV)〉은 프쉬케“영혼”이라고 40회만 번역하였고, 〈새국제역(NIV)〉은 25회만,〈새영어성경(NEB)〉은 19회만 “영혼”으로 번역하였다. 근자의 번역본들은 “영혼” 대신에 인칭대명사나 “생명”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참조 인간론 I. E; 죽음 I. A. 4) (1054.5)
 만일 요한계시록 20:4프쉬케“생명” 혹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면 요한은 하늘에 있는 사람들, 곧 죽었다가 재림 때에 부활에 참여하여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1,000년 동안 다스리는 자들을 본 것이다. 이들은 온전한 사람들이며, 몸이 없는 영들이 아니며, 부활의 삶을 충만히 누리고 있다. (1054.6)
 〈개정표준역(RSV)〉의 요한계시록 20:4 번역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모든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으나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처럼 보이게 하지만, 헬라어는 두 무리를 암시한다. 둘째 무리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사람들로 되어 있다. (1054.7)
 c.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