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5세기) 이래 종말론적 기대는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거두는 승리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실패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릇된 논지는 종교개혁을 불러왔다. 루터는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먼저 있을 것이며, 그것은 이미 교황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징조”라는 견지에서, 루터는 재림이 멀지 않았다고 1522년에 진술하였고(Weimar Ausgabe 10/1, 2:95), 1532년에 있었던 좌담(Table Talk)에서는 재림이
“문 앞에 이르렀다.”라고 단언하였다(Tischreden 1291). 이러한 기대는 그의 신앙에 깊이 깃들인 확신 때문이었다. 루터는 재림을 하나님의 진노의 현현으로 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그것을 행복한 날로 간주했으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가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그날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날이 속히 와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서 벗어나고 육신적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기도하였다(WA 41:37). 1537년에 한
마태복음 25장에 관한 그의 설교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여 주었다
“그분은 마지막 날에 천사의 무리와 함께 큰 권능과 영광과 위엄으로 오실 것이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심판일 것이며 모든 천사들의 옹위 속에 그분이 계신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이 장엄한광경일 것이다.”(위의 책, 4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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