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구약의 난해 문제 질문 16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법들은 아직도 적실(適實)한가?
 음식 규정을 다루는 신약의 본문들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헬라어를 잘 구분해야 한다. 아카싸르토스(“부정한”)는 구약의 가르침을 반영하지만, 코이노스(“속된, 오염된”)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접촉으로 인한 오염”으로 알려진 랍비들의 특정 개념과 관련된다. 정한 것이, 잠재적으로 부정한 것일지라도 부정한 어떤 것과 접촉하면 코이노스(“오염된”)하게 된다. (87.6)
 이러한 관점에서, 마가복음 7:18, 192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더럽혀진 손으로 먹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로들의 유전과 성경의 법을 대조하고, 영적인 더럽힘과 육적인 더럽힘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음과 정신의 순결이 배로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88.1)
 사도행전 10:14에서 베드로는 정한 짐승이라도 부정한 짐승과의 접촉을 통해 오염될 수 있으므로(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라 랍비들의 가르침) 그 짐승들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정한 짐승들을 코이노스하다(부정한 짐승과 접촉을 통해 더럽힘)고 여기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베드로(유대인)가 이방인과 접촉함으로써 자신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하지 말아이: 함을 의미했다(참조 행 10:28; 11:12). (88.2)
 모세의 식사법의 유효성에 대한 확증은 피를 먹는 것을 금한 데서 찾을 수 있다(행 15장).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된 네 가지 쟁점(행 15:20, 29)이 레위기 17~18장에 같은 순서로 나오는데, 이것들 모두가 “우거하는 타국인”에게 적용되었다는 것(17:8, 10, 12, 13, 15; 18:26)은 매우 의미있다:

   (1)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17:3~9).

   (2) 피를 먹는 것을 금함(17:10~14).

   (3) 목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 것(17:15, 16).

   (4) 성적 부도덕을 금함(18:1~30).

 레위기 17:10~14에 비추어 볼 때, 사도들의 이 네 가지 판결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법을 내포하고 있다(특히 레 17:13을 참조하라). (88.3)
 로마서 14장고린도후서 8:10에서 바울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는 우상과의 접촉으로 오염되진 않는다고 설명한다. 음식이 우상과 접촉되어도 음식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음식도 그 자체가 더럽혀지진(코이노스) 않는다고 바울은 천명한다(롬 14:14). 바울이 아카싸르토스(“부정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라. (88.4)
“역사적인 관점에서, 예수께서 토라의 식사법에 반하는 것을 가르쳤다고 보는 것은 수많은 신약 학자들에게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David J. Rudolph, “Jesus and the Food Law:A Reassessment of Mark 7:19b,” The Evangelical Quarterly 74.4 [2002]:293). “예수께서 가져오신 단절은 구약의 근본적인 교리들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와의 대조에서 드러난다”(René Péter-Contesse, Levitique 1~16, Commentaire de l’Ancien Testament, 3a [Geneva:Editions Labor & Fides, 1993], 178).
(89.1)
 결론
 부정한 음식에 관한 문제는 의식법들과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중요하게 취급한다고 하여 독단적인 것은 아니다. 신약의 어떤 본문도 그것들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규정이 폐지되었다는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폐지되었다고 보는 것은 지지될 수도 입증될 수도 없는 주장이다. (89.2)
 그리스도인들은 식사법을 지켰다는 이유로 구원을 얻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의 표현이다. 우리 주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섭취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식탁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무언의 증거자가 된다. 그분의 계시를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을 칭송하는 것이다. (89.3)
 Jiří Moskala (89.4)
 미주
 1.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보려면 Jiří Moskala, The Laws of Clean and Unclean Animals in Leviticus 11:Their Nature, Theology, and Rationale:An Intertextual Study, Adventist Theological Society Dissertation Series, vol.4 (Berrien Springs, MI:Adventist Theological Society 2000);Gerhard E Hasel, “Clean and Unclean Meats in Leviticus 11:Still Relevant?” Journal of the Adventist Theological Society 2.2(1991):91~125을 참조하라.

 2. 본서에 있는 마가복음 7:19에 관한 해설을 참고하라. (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