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7장8장이 이루는 평행에 근거하여 보면, 다니엘 8:14에 나오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성소를 “옹호”하는 일은 7:9, 10에 나오는 천상의 심판 장면과 상응한다. 이 심판이 시작되도록 정해진 때는 예언적으로는 2,300일, 연-일 원칙을 따라서 실제로는 2,300년 기간이 끝나는 때이다 천사가 친히 다니엘 8장의 이상을 더 자세히 설명해 준 바에 따르면 이 기간은 BC 457년에 시작된다(단 9:24-27). 실제의 2,300년 기간은 AD 1844년에 종료된다(참조 성소 III. C. 2. a. [2]). 이 해는 하늘 성소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개정되는 해이다(단 7:9, 10; 8:14, 17, 19). 바로 그 사실을 첫째 천사가 공포(公布)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다. 그러한 지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에게] 경배하라.”(계 14:7)라는 기별의 긴급성과 통합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서는 성화시키는 가치가 없다. (992.6)
 이러한 하늘의 호소는 전형적인 구약의 용어로 표현되는데, 따라서 반드시 고대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이라는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사역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에서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는 것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라는 동사를 자주 사용하였다(신 5:29; 6:2; 8:6; 13:4).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히브리 어구는 사랑의 순종으로 표현 되는, 하나님에 대한 떨리는 경외심을 가리킨다( 참조 신 10:12, 13; 전 12:13). 하나님이 은혜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에 근거하여 모세는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호소한다.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신 10:20). “그런즉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11:1). (992.7)
 이에 비추어 볼 때,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명령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사랑의 순종을 바치라고 하는 호소이기도 하다. 그분을 경배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심을 천사가 강조하는 것은(7절), 하나님의 율법에서 간과되고 있던 넷째 계명, 즉 제칠일 안식일 계명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출 20:8-11). 천사가 참된 경배의 회복을 촉구하는 목적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땅의 주민들을 준비시키는 데 있다(참조 안식일 III E.). (993.1)
 C. 둘째 천사의 기별(계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 14:8). “바벨론”과 그것의 몰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고대 바벨론과 마지막 때 바벨론 사이의 표상적 연관성을 분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 천사가 하는 말은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고대 바벨론의 파멸에 대하여 선포한 아래의 두 신탁을 결합한 것이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사 21:9).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긱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야훼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바벨론은 야훼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렘 51:6, 7). (993.2)
 요한계시록 14:8(그리고 18:2-5)과 구약 예언 사이의 문학적.주제별 대응은 그리스도교 표상학의 기본 구조를 갖추고 있다(LaRondelle 1983, 35-59). 구약에서 고대 바벨론의 신학적 특성은 명백하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 그리고 그와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대(大)원수였다. 그 나라는 느부갓네살에서 벨사살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그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았다. 그리하여 바벨론은 이중의 전선(戰線)에서 싸우게 되었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와의 싸움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싸우는 전쟁이었다. 하나님의 보복 판결은 바벨론이 시온(렘 51:24)과 하나님의 성전(11절)에 대하여 저지른 죄악의 결과였다. 그렇게 바벨론은 시온과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반대가 된다. 고대의 이스라엘과 마지막 때의 하나님 백성 사이의 신학적 관계를 고려 할 때, 마지막 남은 무리는 이스라엘 구원 역사의 완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영적 바벨론과 새 언약의 남은무리 사이에는동일한 적대 관계가 존재한다. (993.3)
 교회 시대에 이스라엘(또는 시온)과 바벨론 사이의 마지막 충돌을 통한 새 언약의 성취에는 민족적 ·지리적 제한이 없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바벨론은 반드시 신학적으로 그리고 기독론적으로, 다시 말해서 메시아 예수와 관련하여 정의되어야 한다. 구약에서 특정 민족과 관련하여 쓰인 표현들이 요한계시록에서는 보편적인 차원에서, 전 세계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와관련하여 적용된다 고대 바벨론이 이스라엘 땅을 침략하여 그 성전을 파괴하고 백성을 포로로 삼았듯이, 마지막 때의 바벨론은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교회를 공격하여 종으로 삼고, 하늘에 있는 새 언약의 성전을 모독하며, 그리스도의 신성한 간구(intercession, 중보)를 위조된 중보와 경배의 체계로 대체한다(계 13, 17장). 바벨론은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는 자들의 대원수이다(계 17:6). (993.4)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바벨론을 큰 “음녀”라고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은 구약의 선지서에서 빌려온 언약적 표현이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배도한 언약 백성을 그 당시 땅의 큰 “음녀”가 되었던 야훼의“아내”로 반복해서 묘사했다(사 1:21; 렘 3:1-3, 8, 9; 겔 16:15-34; 호 2:2, 4).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진노인 그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었다. 특히 구약에 나오는 왕후 이세벨과 그녀의 북방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잔인한 종교적 통치의 이야기는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교회 안에 발달할 배도의 선택된 모델이나 표상으로 쓰인다. 이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예언한 것과 동일한 배교이다. 특별히 두아디라 교회는 “여자 이세벨”과 그녀의 거짓 가르침과 거짓 숭배를 용납한 것으로 정죄를 받는다(계 2:20-23). 요한계시록 17장은 사람을 죽이는 음녀 여왕으로 새로운 바벨론을 묘사하는데(3-6절), 이는 아이들이 박해받고 죽임을 당하는 하나님의 순결한 여자(계 12장)와는 정반대가 된다. 그러므로 묵시록에서 그리스도는 바벨론을 로마제국이 아니라 불신실하고 타락한 교회와 연관 짓는다. (994.1)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인이 구출되는 반면에, 17장의 여인은 그녀의 이전 연인들에 의하여 파멸을 당한다(16절). 요한계시록 12장17장에 나오는 예언의 드라마는 하나님의 새 언약백성을 위해 이세벨의 역사가 기본적으로 반복됨을 암시한다(참조 LaRondelle 1992, 157-163). 음녀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과 싸우는 전쟁에서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다고 했으므로(계 17:3, 6), 넓은 의미에서 바벨론은 세계적인 과모로 교회와 국가를 다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땅의 임금들도 그[큰 음녀 바벨론]와 더불어 음행하였”다고 말한다(1, 2절). 배도한 그리스도교로서 묵시론적 바벨론은 “공공 정책에 대한 종교적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7BC 851) 교회와 시민-정치 세력의 동맹을 이루면서 절정에 도달한다. 결과는 많은 성도들의 죽음이 될 것이다(계 17:6). (994.2)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 메시지에서, 첫째 천사는 순결한 사도적 경배의 회복을 요구한다(계 14:6, 7). 이 호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새로운 마지막 때의 영적 이스라엘이 창조된다. 가짜 복음과 종교적 교리를 선포함으로써 영원한 복음의 부흥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둘째 천사는 멸망당하는 바벨론이라고 부른다(8절). 따라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이러한 선고는 마지막 때의 참 이스라엘을 만들어낸 천사의 선포를 뒤따르는 것이다. (994.3)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8절)라는 천사의 선고는 하나님의 법정의 판결을 선언하는 것이며, 따라서 바벨론의 도덕적 타락과 일차적으로 관련이 있다. 이 평결은 고대 바벨론의 궁전 벽에 천사가 쓴, 다니엘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글과 비교할 수 있다. 벨사살에게 해준 그의 설명은 이러하였다.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함이요∙∙∙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단 5:27, 28). (994.4)
 역사상 바벨론의 몰락은 그 도덕적 타락이 발표된 직후에 일어났다(단 5:30, 31).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도 바벨론의 타락에 대한 마지막 때의 평결(계 14:8; 18:2-8)과 그 유예 기간이 끝났을 때 일곱 번째 재앙 아래 일어나는 바벨론의 실제 파멸(계 16:17-21; 18:20; 19:2)을 구분한다. 둘째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한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이 그 범죄와 심판에 참여하지 말고 벗어나라고 한다(계 18:1-5). (994.5)
 D. 셋째 천사의 기별(계 14:9-11)
 셋째 천사는 앞의 두 천사를 “따른다”고 한다. 동시에 그의 메시지는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과 불가분의 단위를 형성한다. 뒤바꿀 수 없게 분명히 순서가 정해져 있지만, 세 기별 모두는 하나로 통일된 삼중 기별로서 계속해서 날아간다(참조 V. A). (995.1)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9-11). (995.2)
 요한계시록 14장의 셋째 천사의 엄숙한 경고는 마지막 시대 교회의 특별한 임무를 나타낸다. 그것은교회가 적그리스도(계 13장“짐승”)의 전체주의적인 주장에 맞서서, 땅의 모든 거민들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도록 해 준다. 그 경고의 기별은 참된 신자들에게 바벨론의 “포도주”를 마심으로 말미암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경계하게 한다. 누구든지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계 14:10)라고 한다. 하나님의 “섞인 것이 없”는 진노에 관한 경고(10절)는 하나님의 심판에 더 이상 과거처럼 그것을 완화시키는 자비가 포함되지 않을 것임을 임시한다(합 3:2; 단 9:11, 12, 16-18). 셋째 천사는 마지막 일곱 재앙의 심판이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부으심이라고 선포한다(계 15:1; 16장). (995.3)
 셋째 천사는 지금까지 인간들이 들어온 중에서 가장 두려운 위협을 발한다. 공고히 결합된 기별로서, 요한계시록 14:6-12의 삼중 경고의 명확한 목적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땅의 거민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참조 14-20절). 기별의 중심 주제는 요한계시록 14:12에 나타나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 본문은 삼중경고 기별(6-11절)의 결과를 설명한다. 짐승과 그의 우상으로 대표되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도들은 “야훼를 경외하며” 참고 견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7절)는 하나님의 호소는 전 세계적으로 참경배자들의 신실한 남은 무리가 인내하고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것이다(12절).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하나님의 뜻과 품성에 대한 계시를 제시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지키는 것을 상기시킨다(신 5:29; 8:6; 10:12, 13; 전 12:13). (995.4)
 하늘과 땅의 창조자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천사의 호소(계 14:7)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기념인 것(창 2:1-3)을 직접 가리킨다.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언약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계 14:12). 그러한 믿음은 율법주의 또는 행위의 의와 같은 태도를 배제한다. 신약에서 이 “예수의 믿음”은 예수와 그분의 가르침을 대상으로 삼는 믿음을 의미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로 믿는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요 6:29; 약 2:1).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순교의 순간까지 그의 이름과 가르침에 대한 신앙을 지킨 버가모 교회를 칭찬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995.5)
 요한계시록 14:13에서는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가 “지금 이후로[즉, 짐승이 지배하는 마지막 싸움 동안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뒤따랐음”이라고 확인을 받는데, 이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충실함과 최후의 박해에서 예수를 믿는 산 믿음이 심판 때에 성도들과 동반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상으로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운명은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의 마지막 싸움, 예수에 대한 믿음의 마지막 큰 시험에 달려있다. (995.6)
 요한계시록 14:12의 신실한 자들은 12:17에 나오는 여자의 자손의 “남은 자”와 동일한 신자 집단이다. 두 성경 구절은 모두 마지막 때의 예수의 백성이 예수를 믿는 산믿음과 그들에 대한 그분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계 19:10). 그들은 심판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성품의 표준으로 결합시키는 사도 적 복음의 기별을 붙잡고 유지한다(롬 2:12-16). 거룩한 예수의 증거, 즉 “예언의 영”을 위해 사도들과 그 계승자들은 박해를 당했다(계 1:9; 6:9; 19:10). 그리스도의 마지막 때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에 모두 충성을 다할 것이다(계 12:17). (9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