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법을 범하면 범법자로서 거기 해당한 응분의 처분을 받아야만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건강의 법칙을 범함으로써 발생한 결과를 감수하는 것이 범법자로서 당연한 일인 것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었다. 범법자로서 자기의 죄를 그대로 시인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대한 처분을 호소하듯이, 건강 법칙의 창시자시요 권위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복하여 치유의 은사를 기다리는 것은 역시 건강 법칙의 범법자인 환자로서 해야 할 본분이요, 이것이 치유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마음속 깊이 깨달았다. (265.1)
 형편과 사정이 어떠했든, 건강 법칙을 범한 그 결과야말로 극히 또한 엄격하였다. 그러므로, 제 아무리 고통스럽다치더라도 통회하고 개준하는 심정과 결심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범법에 대한 대가로서 처형을 받을 때에 진실로 개과천선의 태도와 변화가 나타날 때에는 감형의 은전을 받아서 속히 자유인이 되지 않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질병 치료에 있어서 같은 생활은 병 치유가 촉진되게 마련이다. (265.2)
 3. 1 년간 돌리고 또 돌린 인공 신장
 응급실에서 2일이 지난 후에야 병실로 옮겨졌다. 매일같이 꼬박 4시간 동안은 인공 신장에 달려매서 피를 걸러내야만한다. 이것이 내 일과로구나 생각할 때 한없이 처량하기만 했다. 저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달리는 구름 산을 볼 때에, 나는 언제나 저와같이 자유롭게 달릴 수 있을까 그지없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생의 실낱같은 희망을 인공 신장에다 걸어 보았다. 너 때문에 내 병이 나을 수 있겠거니 생각하니 그지없이 귀여워지기만 했다. (265.3)
 병원에서는 갖가지 약들을 정성스럽게 주었다. 그리고, 음식이란 흰빵, 비스켓, 고기와 생선, 그리고 산 음식이란 채소와 과실이 고작이었다. 식욕은 떨어지고 밥상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 (266.1)
 신장병 환자인데 고기와 생선, 계란, 우유 등 신장에 부담을 주는 음식을 하루 세 끼 번갈아 가며 먹으라고 하니, 도대체 병을 고치려는가? 어떻게 하자는것인지 회의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물론 현대 의학이 영양과 거리가 먼 것은 이미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신장병에 있어서는 특히 신장의 부담을 가능한 한 덜어 주어야만 할텐데 이 와는 반대로 신장에 많은 부담을 주는 계란, 고기, 생선, 우유 등이 식사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나오게 마련이니,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하는 식이 아닌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266.2)
 그렇다고 30여년간 순 채소, 현미식에 의존했던 내 생활이라 고기나 생선 등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계란과 우유 등은 그래도 취해야지 영양 부족에 걸린다고 자꾸만 권하는 바람에 먹어 보았다. 그랬더니 차차로 변비가 생겨서 대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의 섬유질 없는것 등이니 장 운동이 안 될수밖에 없고, 게다가 늘 드러누워만 있으니 변비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266.3)
 변비약을 청해서 먹어도 끄덕도 없다. 뱃속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관장도 해보았다. 그래도 막무가내다. 드디어, 간호사가 손에 고무 장갑을 끼고 파내 주었다. 여간 미안한것이 아니다. 그의 투철한 봉사 정신을 찬양하면서 고맙다고하고, 봉투에 소액이나마 넣어서 감사를 표시했다. (266.4)
 이것으로 변비가 뚫리고 더 이상 고생을 안 했으면 좋으련만, 역시 그대로 계속된다. 변소에 가서 온갖 힘을 다 써 보았으나 허사다. 아무리 환자지만 체면이 있는지라, 생각 끝에 내 손가락을 넣어서 몇 덩어리씩 파내고 나니 좀 시원하다. 그 다음부터는 고무장갑을 얻어서 아침마다 파내는 것이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266.5)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대변 생각이 나서 변소 가는 도중에 와락 설사가 나와 방바닥에 냄새를 피웠다. 내 손으로 치우느라고 하였으나 냄새는 여전하다. 옆 침대의 환자에게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다. “아이 앰 쏘리”를 연발했으나, 그는 코를 쥐고 참더니 청 소부를 불러서 말끔하게 소제를 하였다. (267.1)
 그 다음 날, 주치의에게 병원 음식은 먹을 수 없으니 현미밥을 먹게 해달라 간청을 해서 쾌히 승락을 받았다. 현미밥에 미역국, 그리고 김을 먹어 보니 살 것만 같다. 뱃속도 편해지고, 그렇게 괴롭히던 변비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267.2)
 매일매일 원기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원칙적으로 카운티 병원이라 1개월 이상 입원이 안 되는 것이나, 이 박사의 배려로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핏줄을 연결하고 있는 인공 신장은 서로 피가 통하느니 만큼 말 못하는 기계지만 참으로 정다와졌다. 매일 돌리던 것이 하루 건너, 그 다음에는 3 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되었다. (267.3)
 이 병원에는 기계는 있으나 특수 훈련을 받은 간호사가 없어서 외부에서 와서 꼬박 4시간을 지켜 있는 것이다. 직업적이긴 하나 어찌나 미안스러운지, 드디어 떠날 날이 되어 두툼하게 사례를 했다.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267.4)
 이제는 퇴원하고 집 근처 병원에 가서 치료를 계속하라는 것이다 매일마다 1시간 반이나 걸려 식사를 날라다 주는 큰딸에게 미안한 생각도 적지 않은 터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같은 교회 계통 병원으로 가려고 글렌데일병원에 이박사의 주선으로 연락했다. (267.5)
 그 동안의 챠트를 보내 달라고 해서 보낸 지 1주일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다. 하는 수 없이 병원 “소샬워커”에게 부탁을 했다. 그 다음 날, 성 요셉병원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268.1)
 먼저 병원도 다들 친절하였으나 여기 오니 병원 직원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환자들에게 따뜻하게 대해 줄 수가 없다. 나는 특등실 독방에다 특히 간호원실 가까운 곳에 입원시켜 주었다. 먼저 병원에서는 목 있는 곳의 혈관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서는 왼쪽 손목의 혈관과 연결시켜서 인공 신장을 가동시켰다. 먼저 병원에서 처음에 매우 위험시했던 것은 심장 밖에(외막) 물까지 고여서였다. 그런 병력 때문인지 매우 세밀하게 종합 검사를 다시 받았다. (268.2)
 입원한 지 한 달 동안은 입원실에서 인공 신장을 돌렸다. 전립선 비대증이 있다고해서 수술을 했다. 난생 처음으로 척추 마취를 받아 보았다. 수술이 다 끝난 후 다리에 제 감각이 돌아오기까지는 무려 8시간이 나 걸렸다. 두 다리가 마비되니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268.3)
 수술한 지 하루가 지나자, 갑자기 소변으로 피가 쏟아져나 오기 시작했다. 수술하면 의례 그런 것이 라고 예사로 생각하더니, 나중에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의식이 없어졌다. 제정신으로 돌아섰을 때는 계속적으로 수혈과 산소 호흡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다섯 병이나 수혈을 하였다는 것이다. 수혈해 본 것도 처음이려니와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해서 의식이 회복되었으니 피라는 것이 생명이란것을 실감했다. (268.4)
 한 달이 지난 후부터는 인공 신장을 병실에서 돌리는 대신에 인공 신장실로 가곤 했다. 수많은 같은 환자들이 오가고 하였다. “이렇게도 이 병이 많구나! ” 후일에 들은 일이지만 미국에서만 만성 신부전 환자가 1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268.5)
 하루는 인공 신장을 돌리는데, 눈앞이 멀어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구역이 나기 시작했다. 링겔을 꽂아서 의식은 회복되었으나,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링겔은 다시 말해서 소금물이다. 신장에는 소금이 해로운 것은 당연한데, 몸에서 물을 많이 빼내서 부작용이 생기면 소금물을 넣어 준다. 물론, 혈압이 올라가서 증세가 회복은 될지언정 그 역시 신장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공 신장을 돌리고 나서 기운이 없으면 의례 치킨숩 한 컵을 준다. 이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2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