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끝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에서 심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심판이 필요한가? (932.1)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지 못하는가? (932.2)
 A.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성경은 처음부터 죄와 심판과 은혜 사이에 심오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상호관계는 창세기 뿐 아니라, 구약의 역사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선지서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932.3)
 1. 죄, 타락,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은혜
 유혹자는 죄를 세상에 들여오고 인류와 세상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즉시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고 아담과 하와를 부르심으로 개입을 시작하셨다. 이 부르심은 그들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탄과 사탄이 세상에 들여놓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초청으로 이해해야 한다. 창조주께서는 은혜의 부르심을 통해 자신을 구원자로 나타내신다. 은혜가 충만하신 창조주는 또한 재판장이 되신다. 그의 심판은 뱀에 대한 저주를 포함한다(창 3:14). 이 저주의 행위에서 심판이 선포되고 집행된다. 하나님은 하와(16절)와 아담(17-19절)을 또한 심판하신다. (932.4)
 인간 역사의 초기부터 죄와 심판과 은혜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나타나 있으며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계속된다. 메시아의 약속을 처음으로 주신 하나님은 뱀과 여자 사이에 상호 증오심을 넣어주시고,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포 하신 다음(창 3:15), 여자에게 심판을 선포하신다. 그 심판은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이 있을 것이고 남편에게 집착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16절). 그 목적은 치유적이고 억제적인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었다. 그 심판은 단절된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고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안전하게 지켜주며 또한 창조주요 구주인 분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죄와 악이 퍼져나가는 것을 억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932.5)
 아담에게 내려진 심판 역시 치유적이며 억제적인 것이었다. 아담은 땀을 흘려 수고함으로써 땅의 소산을 얻어야 했다(19절). 이것 역시 죄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하나님의 더 큰 구속의 계획의 일부였다. 노동은 일한 대가에 대한 즐거움과 행복을 제공할 뿐 아니라 쓸데없는 게으름에 대한 유용한 해결책이 될 것이었다. (932.6)
 심판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에는 여러 기본적인 유형들이 있다.

   1. 심판은 본질적으로 치유적이며 억제적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질서를 세우시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죄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죄를 다루신다.

   2. 죄는 하나님의 특정한 계명에 대한 불순종이다. 그 것은 인류의 첫 부부가 계속해서 잘못을 행하는 것을 막아주고, 그들 자신과 세상에 불행을 가져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주어졌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에 명시된 것처럼 심판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결과이다.

   3. 심판의 치유적인 양상은 갱신과 회복을 가져오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것은 죄를 억제하고 인류가 창조주—구속주에게 충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932.7)
 2. 가인에 대한 죄,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은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퍼져가는 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죄는 합당한 예배 문제를가지고 형제살인이 일어나게 하였다(창 4:1-16). 가인은 두 가지 질문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냐”(6절).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9절). 가인은 심판을 받고(10-12절), “야훼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정착한다(16절). (932.8)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다 인간의 죄(3-8절), 심판을 통한 하나님의 개입(9-12절), 보호를 위한 용서하시는 은혜(13-15절), 처벌을 경험함(16절). 심판하고 처벌하는 일 뿐 아니라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은혜로운 보호를 제공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933.1)
 심판은 본질적으로 징벌적이고 치유적인 것처럼 보인다. 심판은 죄를 통제하고 처벌의 결과들을 억제시키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복수법적인 처우로부터 가인을 보호한다(출 21:23). (933.2)
 3. 세상에 대한 죄,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은혜
 창세기 6:1-4에 나오는 “사람의 딸들”(가인의 자손들)과 결혼한 “하나님의 아들들”(셋의 자손들)의 이야기는 인간본성이 어떻게 타락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인간본성의 타락으로 전 세계에 홍수를 초래하였고 결국 홍수 이전의 세상은 멸망하게 되었다(창 6-9장). (933.3)
 노아 시대에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창 6:5). 지구는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11절).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였다(12절). 세상에 만연한 이 타락의 모습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파괴적인 홍수의 형태로 가혹한 심판을 내리게 하는 도덕적인 동인(動因)이 되었다. (933.4)
 성경에 나타나는 이러한 도덕적인 동기는 고대 세계에서는 독특한 것이다. 고대근동 지역의 여러 홍수 이야기들, 예를 들어 수메르인 또는 아카디아인의 홍수 이야기에서는 하늘의 심판에 대한 어떤 도덕적인 동기도 없다. 성경 밖의 홍수 이야기들에서는 신들이 마음대로 홍수를 내려서 땅을 휩쓸어 버리지만 그러한 가혹한 징벌을 정당화 시키는 어떤 도덕적인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아트라하시스 서사시(Atrahasis Epic)에서는 인간이 밤을 새워 축제를 하면서 만들어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잠자는 신들을 귀찮게 했기때문에 신들이 홍수를 내렸다고 나온다. (933.5)
 반면 성경은 인류의 명백한 도덕적 부패로 인한 죄의 급격한 확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을 내렸다고 기술한다. 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죄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그들의 절망적인 사악한 행위에 대해 죄인들에게 합당한 보응을 내리신다. 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억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지면에서 생명을 도말하겠다고 선포하시는 한편(7, 13절), 그분께 돌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구원하시겠다는 그분의 은혜의 계획을 드러내신다(14-22절).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은 무차별적이거나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다. (933.6)
 하나님의 은혜도 역시 작용하고 있었다. 홍수 전120년이라는 유예의 기간이 공표되었고 이 기간 동안 죄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초청받았다. 멸망당할 운명에 처한 세상으로부터 피할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를 나타내셨다. 충성된 남은 자들에 의해 방주가 지어지고 준비될 것이었다(17, 18절). (933.7)
 대홍수의 기록에는 또 다시 일련의 순서가 있다.

   (1)죄의 확산[1-5, 11, 12절]

   (2) 죄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6, 7, 13절]

   (3) 구원을 위한 용서의 은혜[14-22; 7:1-5]

   (4) 처벌의 집행과 구원받은 신실한 남은자[7:1-8:22]. (9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