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5 장 재림소망의 절정
 그러나 재림의 구름은 신자들에게 소망이 될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는 어두운 운명을 뜻한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보복의 큰 날을 “구름과 흑암의 날”(습 1:15; 욜 2:2)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뜻을 조롱한 자들에게는 그 재림의 구름은 형벌과 죽음의 전조가 된다. 출 애굽의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속에 있는 구름은 신실한 자들을 위한 보호의 약속과 불신자들을 위한 형벌의 경고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297.3)
 기쁨의 재회(再會).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모든 시대의 신자들이 기쁨으로 다시 만나는 것도 가리킨다. 바울은 부활한 성도들과 변화한 성도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라고 설명한다(살전 4:16, 17). 이 구절에서 구름은 주님과 모든 시대의 신자들이 재결합하는 항구적인 장소로 보여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 아래”를 지나고, “구름 속에서” 침례를 받으므로(고전 10:1~5)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을 경험한 것과 똑같이, 구속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날에 구름 속에서 장엄한 재회를 하는 날에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있는 재림의 구름은 모든 신자들을 위한 변화의 장소가 되며 또한 신자들이 영원한 우정을 시작하는 장소가 된다. (297.4)
 결론. 앞에서 고찰한 빛 가운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이고 가시적이며, 갑작스럽고, 영광스러운, 승리의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모습에 대한 이런 특성들은 인간이 보게 될 가장 엄숙한 사건을 묘사하기 위한 지극히 미약한 시도로 간주되어야 한다. (297.5)
 제 2 부 그리스도의 강림의 목적
 구속의 완성. 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필요가 있는가? 기본적인 대답은 자신의 성육신에서 시작된 구속 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정복하시는 것은 두 큰 사건 또는 방문인, 성육신과 재림을 통해서 달성된다.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이 두 단계의 승리를 나치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에서 유추하므로 예증하고 있다.7 그 승리의 두 단계는 디—데이(D—Day:작전 개시일)와 브이—데이(V—Day:승전의 날)로 알려져 있다. 디—데이는 전세(戰勢)를 돌려놓은 노르망디 교두보에 연합군이 성공적으로 상륙한 날이다. 비록 치열한 전투는 여전히 독일군이 최종적으로 항복하기 전에 있었지만 그 결정적인 전투가 큰 상처를 입히고 전세는 역전되었다. 브이—데이는 독일군이 공식적인 항복과 함께 승리의 잔치가 따르는 것을 나타냈다. (297.6)
 두 단계의 승리.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과 부활의 승리의 생애를 통해서 사단의 영역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여 상처를 입히셨다(D—Day). 바울은 그것을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골 2:15)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순절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은 세계 도처에 전파되었으며 사단의 영역에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이 계속 증가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의 시민이 되었다. 비록 사단이 결정적인 패배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는 완전히 파멸된 것은 아니다. 그의 악의 세력은 여전히 강하게 우리와 함께 있다. 증오, 폭력, 범죄, 박해 그리고 전쟁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매일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모든 원수를 그의 발아래 두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필요가 있다(V—Day).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고전 15:25, 26)이다. (298.1)
 우주적 통치권. 하나님 나라의 원수들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영적인 원수들이다. 이 사단의 세력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서 얻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그분의 감추어 두었던 능력을 나타내어 모든 형태의 악과 행악자들을 멸망시키고 평화와 의의 영원한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다. (298.2)
 그리스도는 현재 영적인 왕국을 통치하신다. 자신의 통치권은 신자들에 의해 고백되고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오늘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할 때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우주의 왕국이 자신의 재림 때에 이 지상에 건설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그 때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빌 2:10, 11) 된다. (298.3)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원한 왕국을 재강림 때에 설립하실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재림과 관련되어 나타날 아래의 네 사건들을 간단히 고려해 보고자 한다.

 1. 구속받은 자들을 모음

 2.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부활

 3. 마지막 심판

 4. 이 세상의 회복 (298.4)
 1. 구속받은 자들을 모음
 우주적인 모음. 자신의 봉사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당신의 재림의 근본적인 목적은 모든 구속받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에게 모으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으며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동료들이 돌아오시기를 바라며 염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그분과 함께 있을 것을 생각하는 우리의 심령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한다. 그리스도의 재강림은 너무나도 밀접하게 구속받은 자들을 모으는 것과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일”(살후 2:1) 것에 관하여 단순히 말할 수 있었다. (298.5)
 신자는 버림을 당치 않음. 모든 세대에 구속받은 자들이 구세주의 주위에 함께 모이게 될 때 그 웅대한 모임을 상상하기란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땅끝까지”(행 1:8)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신의 제자들을 보내신 것같이 그분께서는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막 13:27)을 것이다. 신자는 결코 버림을 당치 않을 것이다. 정부의 수뇌가 방문할 때 단지 몇 사람만이 환영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신자들, 곧 젊은이나 늙은이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흑인이나 백인들 모두가 그 장엄한 재림 잔치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299.1)
 2.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부활
 신자들의 부활. 모든 신자들을 우주적으로 모으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강림 때에 두 주요 사건, 즉 잠자는 성도들의 부활과 산 성도들의 변화의 결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후자는 일반적으로 “변화”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용례는 잠자는 성도들이나 살아 있는 성도들이 모두 변화되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이 지상에서 하늘로 옮겨지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받아들여진 신학적 용례 즉 산 성도들의 변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화”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299.2)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과 변화는 성경에서 분명히, 종종 “마지막 날”(요 6:39, 40, 44, 54)이라고 불리워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놓고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 23; 빌 3:20, 21; 살전 4:16 참조)라고 설명한다. (299.3)
 바울은 잠자던 모든 성도들의 부활과 모든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는 모두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동시에 있을 것이라고 명백하게 설명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 17). (299.4)
 신자들의 한 번의 부활. 어떤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는 구절을, 먼저 마지막 7년 환란 전에 비밀 휴거(携去)를 당할 신약 신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고 그다음 환난이 지난 후에 환란당한 성도들과 불신자들인 구약 신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8 이 해석은 분명히 바울의 구절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비록 이 구절을 대충 읽는다 해도 바울은 구약 신자들의 부활을 신약 신자들의 부활과 대조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살아 있는 신자들의 휴거와 대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단순히 여기서 “먼저”라는 말은 잠자던 성도들이 먼저, 즉 살아 있는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끌어올려 가기 전에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99.5)
 똑같은 맥락이 고린도전서 15장 52절에서 바울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두 구절에서 바울의 관심은 그리스도께서 재강림하실 때 살아 있는 신자들은 잠자고 있던 신자들보다 우선권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독자들에게 재확신시키는 것에 있다. 그 이유는 변화한 산 성도들이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살전 4:17)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신자들, 곧 모든 시대의 부활한 성도들과 변화한 산 성도들이 거대한 재림의 모임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300.1)
 불신자들의 부활.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들도 부활할 것인가? 부활한다면 언제인가? 바울은 비록 그가 사도행전 24장 15절에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고 말하고 있으나 자신의 편지서에는 불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바울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불신자들의 부활은 자신의 서신에서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점에 있어서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신자들과 불신자들 모두의 부활에 대한 가장 명백한 구약의 언급은 다니엘 12장 2절에서 발견된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00.2)
 신약에는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부활이 악을 행하는 자를 의로운 자로부터 최종적으로 분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어떤 천국의 비유들 가운데 예시되어 있다(마 13:41~43, 49, 50, 25:31~46). 가장 분명한 진술은 요한복음에서 발견된다. 그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고 말씀하신다. (300.3)